<4> 개종선언 이후의 반응과 새 종교의 모색

 

▲ 마하트마 간디, “불가촉천민 이성·지성도 없어” VS 암베드카르, “카스트제도 자체가 문제의 근원”

힌두교를 버리고 새 종교로 개종을 하겠다는 암베드카르의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한 불가촉천민 단체는 암베드카르의 개종결심을 ‘위험한 움직임’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암베드카르와 같은 카스트에 속하는 한 불가촉천민 운동가도 그의 의도가 수상쩍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마하트마 간디는 매우 격렬하게 개종에 반대했다. 암베드카르와 간디는 개종선언이 있기 전에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불가촉천민들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타당한 권리를 얻고 정치적인 힘을 얻는 것이라고 보았으나 간디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종교적 박해로부터의 보호라고 주장했다. 이런 간디의 온정주의적 태도에 실망한 암베드카르는 첫만남에서 “선생님, 저는 조국이 없습니다. 우리가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고 마실 물도 구할 수 없는데 어떻게 제가 나의 조국이라고 부르고 그런 나라의 종교를 나의 종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라며 울분을 토했다.

간디는 불가촉천민들이 힌두교를 떠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했다. 암베드카르가 주장한 불가촉천민만의 분리선거구를 반대했던 것도 그렇게 되면 불가촉천민들이 힌두교에서 분리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다가 암베드카르의 개종선언까지 나오자 간디와 암베드카르 사이의 불화는 더욱 심해졌다.

암베드카르의 개종선언이 있은지 이틀 후 간디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성명에서 간디는 “종교는 의지로 바꿀 수 있는 집이나 옷이 아니다. 그것은 육체보다는 정신의 필수불가결한 한 부분이다. 세상물정도 모르고 무지한 수많은 불가촉천민들은 좋든 나쁘든 자신들의 삶이 상위 힌두들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암베드카르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개종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또한 간디는 다른 자리에서 “불쌍한 불가촉천민들은 이성도 지성도 없으며 신과 신이 아닌 것의 차이점조차 모른다. 한 개인이 모든 불가촉천민들을 다 데리고 간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들이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옮겨질 수 있는 벽돌인가?”라며 암베드카르의 집단개종을 비난했다.
개종에 대한 이런 간디의 비난은 카스트 제도에 대한 그의 견해에서 나온 것이었다. 간디는 불가촉천민제도를 ‘인류에 대한 범죄’ 또는 힌두교가 속죄해야 할 ‘죄’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결코 카스트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카스트 제도를 바탕으로 했기에 인도 사회가 지금까지 존속해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간디는 카스트 제도에 따른 계급분류는 유지하되 그 안의 계급들이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가촉천민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냉대를 몸소 겪은 암베드카르에게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힌두교와 힌두교가 만들어낸 카스트 제도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며 그 안에서는 불가촉천민들의 해방을 위한 어떤 길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종을 결심했다. 간디를 비롯한 상위 카스트 힌두들이 암베드카르의 개종계획에 반대하는 동안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은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며 암베드카르에게 접근해왔다. 그 의도는 당연히 암베드카르와 그의 지지자들을 자신들의 종교로 개종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슬림 지도자 고바는 그에게 전보를 보내 그와 불가촉천민들을 환영한다고 말하며 그들에게 종교적, 사회적 평등과 권리를 제공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암베드카르는 이슬람교에 그리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인도의 이슬람교에 힌두교와 유사한 형태의 카스트 제도와 불가촉천민제도가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 이슬람교에서 행해지던 여성차별은 힌두교의 사회악 못지않다고 생각했다.

암베드카르는 기독교에서도 같은 문제를 발견했다. 특히 남인도에서 일부 불가촉천민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사례가 있었는데 그들은 교회 안에서 불가촉천민들을 따로 앉히는 등 기존의 기독교인들에게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게다가 암베드카르는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인도 내에서 발생한 종교 중 하나인 시크교에 큰 관심을 가졌다. 시크교 측에서도 큰 환영을 표하며 불가촉천민들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약속했다. 그는 조카와 아들을 시크교 사원으로 보내 시크교를 연구하도록 하고 시크교로 개종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모색했다. 그러나 거의 확정된 것으로 보였던 시크교로의 개종도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개종절차와 새로 생길 조직의 통제권에 대한 이견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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