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삼십칠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 ④ 오근(五根)ㆍ오력(五力)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할 때, 혹은 사람을 고용해서 그 일을 시키고자 할 때에 흔히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건 자신, 혹은 피고용인이 그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자질문제일 것이다. 예컨대 유치원선생님을 고용하고자 할 경우, 고용주는 우선 지원자가 이 직업이 아이들을 교육하고 보살피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지를 먼저 볼 것이다. 그 다음 이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지, 초심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지, 매순간 집중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지, 상황에 맞게 적절한 판단력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할 것이다. 이러한 자질이야말로 훌륭한 유치원 선생님이 될 수 있는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목표인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의 자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질도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다. 깨닫기 위한 필수조건으로서의 이 자질을 원시불교에서는 오근(五根)과 오력(五力)으로 설명한다.
오근(五根)이란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의 다섯 가지 수행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근이란 이 다섯 종류의 수행을 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눈[眼]ㆍ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의 감관능력인 안(眼)등의 오근과 구분해서 신(信)등의 오근이라고도 한다. 이 중에 신근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신근이 오근의 첫 번째에 위치한 것은 불교의 모든 실천 수행도가 이 믿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정진근 또한 신근의 믿음에 기반 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염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잊지 않는 것을 말하고 정근은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매사에 집중하는 것이다. 마지막의 혜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혜로서 통찰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자질은 말하자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수행의 자질이자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를 기반으로 해서 미혹한 세간에서 깨달음의 출세간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근을 처음 입문한 수학자의 수도법이라고도 한다.

오력(五力)은 오근이 다섯 가지 수행의 능력인 것에 비해 그 능력이 구체적으로 작용하는 다섯 가지 수행의 힘을 의미한다. 오근과 동일한 종류의 수행에 근 대신 력을 붙여서 오력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력의 수행항목은 오근과 마찬가지로 신(信)ㆍ정진(精進)ㆍ염(念)ㆍ정(定)ㆍ혜(慧)의 다섯 가지이고 오근에서 더 나아간 수행도 라고도 할 수 있다. 오근과 오력의 관계는 원시경전에서 강의 상류와 하류로 비유된다. 방향에서 보면 상류와 하류는 강물의 도착지인 바다와의 거리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강물의 흐름의 입장에서 보면 상류든 하류든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동일한 강물일 뿐이다.

또한 오근이나 오력은 삼십칠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의 다른 수행항목과 마찬가지로 서로 독립적인 수행도이다. 즉 다른 수행도와 관계없이 오근만으로도 부처님의 열반, 적어도 소승불교 수행의 최고 경지인 아라한과에는 다다를 수 있다. 삼십칠보리분법의 각 항목은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독립적인 수행도이지 단계적 수행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열반이라는 목표, 혹은 이상을 향한 지향능력이자 작용하는 힘인 오근ㆍ오력은 삼십칠보리분법의 다른 수행도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오근ㆍ오력 중에 염과 혜는 마음에 되새기고 집중하는 사념처로 나아가고 정진은 사정근이라고 하는 향상하고자 하는 노력의 방법론으로 나아간다. 정은 향상하고자 하는 마음의 기반인 사신족으로 나아간다.

오근ㆍ오력이라고 하는 자질로서의 능력과 작용으로서의 힘이 사념처(四念處)ㆍ사신족(四神足)ㆍ사정근(四正勤)이라고 하는 실천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 목표가 세속적이든 종교적이든 기본자질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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