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치게 화려한 불전함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인천 ㅂ사찰
세모(歲暮)가 되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온정의 손길이 있어 마음이 훈훈해진다. 자선냄비에 조그마한 정성이라도 보태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들 마음속에는 나보다 살기 각박한 사람들의 삶을 걱정하는 자비로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불교에서의 보시는 부처님이 살아계시던 때부터 있어왔다. 죽림정사를 지어 공양한 빔비사라왕이나 기원정사를 보시한 수닷따 장자는 보시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렇게 큰 재물을 보시하여 부처님이 안락하게 수행할 수 있고, 많은 제자들에게 법을 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드린 부자들도 있었지만 가난한 이들은 자기의 분수에 맞게 부처님께 보시를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머리카락을 팔아 부처님께 아주 작은 촛불을 공양함으로써 부처님을 기쁘게 해드린 가난한 여인의 마음이 아름다운 보시의 표상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사찰에 가면 이곳저곳에 보시함이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보시를 원하는 이들이 쉽게 그 마음을 실천할 수 있도록 설치해놓은 것이다. 야외에 설치한 보시함은 돌로 만든 것이 많고, 법당내부에 설치한 보시함은 대부분 나무로 만든다. 보시함이 언제부터 우리 사찰에 도입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단지 스님들께 직접 보시금을 드리던 것을 아무도 모르게 부처님께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보시함을 만들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보시의 마음을 주변이 알지 못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든 보시함은 사찰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여러 절에서 이 보시함을 지나치게 많이 설치하거나, 보시함을 너무 크게 만들어 보는 사람들을 민망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크기도 그렇지만 ‘보시함’이라는 글자를 너무 크게 새기고, 커다란 자물쇠를 보이게 달아놓아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물론 부처님을 모신 곳에 일일이 보시함을 놓고, 보시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크게 만들고, 그것이 보시함인지를 알 수 있도록 글자를 크게 쓰고, 보시함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자물쇠를 달아 놓는 것이 굳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보시함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자비의 마음을 담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계사년 새해에는 보시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행하여지듯이 보시함도 꼭 있어야 할 곳에 작고 아름답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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