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ㅂ사찰에 시공해놓은 석단을 보면 배수를 위해서 설치한 검정색 플라스틱 주름관이 노출된 것을 볼 수 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과거사찰에서 볼 수 있었던 석루조라는 아름다운 배수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사찰의 불사는 과학, 기술, 예술을 총망라하는 종합적인 접근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당해 시대에 살았던 최고의 전문가들에게 불사를 맡김으로써 그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사찰은 세계 어느 나라의 사찰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작품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불사를 담당한 이들의 뛰어난 기술력과 예술성에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불사의 주관자인 스님들과 불사를 후원했던 신도들의 지극한 기도와 정성 또한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불사는 교단을 구성하는 불법승 삼보를 모시기 위한 것이므로 불자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하고 귀중한 일이다. 따라서 불사를 담당하는 기술자나 예술가들은 돌 하나 놓고 절 한번 하고, 기둥 하나 세우고 절 한번 하고, 글자 한 자 새기고 절 한번 하는 지극정성의 자세와 불사이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 몰입의 경지를 기본적인 덕목으로 갖춰야 한다. 또한 불사를 주관하는 스님들은 불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마무리되기까지 온 정성으로 불사의 원만성취를 기원하는 원력과 정재를 모으기 위해 온몸을 바치는 신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불사를 후원하는 신도들은 불사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아낌없이 내 것을 내놓는 건강한 무주상보시의 정신과 삼보에 대한 끝없는 공경의 자세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지난날에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는 끊이지 않고 이런저런 불사가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 비해서 불사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불사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필요한 실정이다.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도 불사를 진행하는 전문가들과 스님들 그리고 신도들은 지극한 정성과 신심을 가지고 불사에 매달린다. 그러나 전문성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불사를 한다든지 정성과 신심이 결여된 불사를 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규모가 큰 불사에는 지극정성을 다 기울여야 하고 작은 불사는 대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절집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불법승 삼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들이므로 어느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작은 것까지도 온 정성을 다해서 이루어내는 불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덧붙여 불교교단에서 운영하는 불사위원회를 설치하여 품격과 의미가 제대로 담긴 불사를 진행하는 것 또한 시급한 일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