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스님(수덕사 방장)-통도사 화엄산림법회 ‘화장세계품’ 강의

 신앙은 심성으로 시작하고

철학·과학은 지식으로 출발

“청정 무애한 길 놓아두고

왜 윤회의 길로 가려 합니까”

미루지 말고 일념 정진할 것

 

▲ 설정 스님은 … 1955년 수덕사에서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과 범어사 선방 등에서 수행했으며 30대에는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원예학과를 졸업했다. 수덕사 주지와 제11대 중앙종회 의장 등을 거쳐 현재 수덕사 방장을 역임하고 있다.

오늘 일어나는 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과거의 내가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생들은 그것을 누가 만든 줄도 모르고 나쁜 일이 일어나면 상황과 상대를 원망한다. 진리의 세계로 빠져들라고 말하는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은 12월 17일 통도사 화엄산림법회를 통해 윤회의 고리를 끊고 자유의 길로 들어설 것을 당부했다.

정리=정혜숙 기자 bwjhs@hyunbul.com

 

법문이라는 것이 하기도 어렵지만 듣기도 어렵습니다. 대충 들을 때도 자기 수준에 와 닿아야 되는데 이해도 잘 안 되고 재미도 없죠. 그래도 부처님 경전은 많은 공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대불사를 한다든가 사경을 한다든가 이렇게 하는 경우 많이 있죠. 이런 것들이 다 공덕이 되고 인연이 됩니다.

제가 여러분들이 이해 안 되는 한문으로 된 경전을 읽고 법문을 하면 불가를 성취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지 말고 그냥 경건하게 임해야 합니다. 특히 공부하는 사람들은 정성스러워야 돼요. 경건해야 돼요. 그게 도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에요.

철학하고 종교(혹은 신앙)하고 어떻게 다른지 아세요? 신앙은 심성으로 시작하고, 철학은 두뇌로부터 출발해요. 그래서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철학과 종교가 같다고 하지만 전혀 다릅니다. 철학하는 사람들은 실천도 안 해보고 점검도 안 해보고 그냥 지식을 얘기해요.

또 과학하고도 다릅니다. 과학은 의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전혀 출발점이 다릅니다. 철학은 생각하고 사고하고 모색하면 끝입니다. 심성을 찾아가는 공부는 사색하고 분별하면 그때부터 깨집니다. 그럼 제가 오늘 법문할 내용은 ‘대방광불화엄경 16권-화장세계품’입니다. 오늘 하루만에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는 없고 중요한 내용만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이 장엄한 세계는 향물이 넘쳐 흐릅니다. 프랑스제 향수를 몇 백만원 주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부처님 세계는 향수로 넘쳐흘러요. 이 화장세계는 원하는 것도 안 원하는 것도 없어요.

여러분들 이런 생각할 거예요. 그것은 상상의 세계라고. 하지만 아니에요.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데 끝이 없는 세계가 있어요. 부처님은 혜안으로 보신 겁니다. 부처님뿐만 아니고 역대 조사들 눈 밝은 이들은 혜안으로 꿰뚫어 봤어요. 여러분들도 공부해서 성취하면 다 꿰뚫어볼 수 있어요. 조금만 공부한 사람들도 혜안이 열리면 상대가 속이 컴컴한지 밝은지를 다 알아요. 공부해서 식만 맑아지면 다 알게 되는 거죠. 식만 맑아져도 이렇게 알 수 있는데, 완전히 공부해서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상황이 되면 알고 싶지 않아도 다 알게 돼요.

분명히 부처님의 세계가 있어요. 그런데 뭐 좋다고 수많은 세상 나오면서 안 좋은 습만 익혔네. 좋지 않은 습관 익혀가지고 그것이 자기 살림살이라고 끌어안고 사니 중생을 못 면하는 겁니다. 윤회의 중생 고통의 중생 면할 길이 없는 겁니다.

우리는 육근을 잘 써야 돼요. 안 좋은 쪽으로 사용하지 말고 말이에요. 중생은 안 좋은 쪽으로 자꾸 에너지를 씁니다. 불교가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게 뭘까요? 우리가 어떤 경지에 도달해야 가장 걸림이 없고 자유스럽고 행복할까요? 그걸 부처님은 열반이라고 하셨고 해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건 황홀 그 자체에요. 즐거움 그 자체죠. 그 원융의 세계고 걸림이 없는 세계고 대자유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물아가 둘이 아닌 세계에요. 대우주와 나와 혼연일체가 된 세계 그건 본래 자리에 돌아간 세계입니다.

우리가 안심이라 하는데 그것은 어떤 겁니까? 아무 걱정 근심 괴로움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상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을 일러서 생명의 귀처라 그래요. 그런 자리에 갔을 때 내 목숨은 안전한 거예요.

육근육진에 의해서 시달림을 당하고 부림을 당하고 오염되고 그런 상태에서는 그 자리를 갈 수가 없어요. 그 자리를 가려면 정진해야 돼요. 이미 부처님께서는 가는 길을 분명히 제시해 놨어요. 부처님 법은 지식이 있건 없건 관계가 없습니다. 물론 지식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런데 지식이 잘못 들면 안 돼요. 박사가 10개 되어도 생각이 잘못 들면 사기치고 나쁜 짓 합니다. 우리가 바뀌어야 할 건 의식이에요. 좋은 의식으로 변해야 돼요.

부처님 법을 통틀어서 얘기하자면 자리이타고 그 자리이타를 다시 얘기한다면 자기완성이요 자비의 실천이죠. 여러분들이 집안에서 살건 사회에서 살건 어느 장소 어느 곳에 있든 간에 그 마음이 자비스러워야 돼요.

지금 우리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의식이라 해서 오염된 마음이에요. 그동안 사용을 잘못해서 청정한 마음이 아니란 말이에요. 이 공부를 할 때에는 두뇌로 하지 말아야해요.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해요.

여러분들이 사물을 볼 때 육안으로 보는 것을 관이라 그럽니다. 그건 육안으로 보는 거예요. 자기 잣대로 자기 개념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자기 눈으로 보는 거예요.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해 나갈 때는 잔머리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으로 봐야 됩니다. 조작을 하지 말아야 해요. 참선할 때도 절할 때도 조작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리고 오근을 잘 단속해야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쓸 때 없는데 에너지를 다 뺏기고 있어요. 눈 코 입에 다 뺏겨서 에너지가 그쪽으로 다 쏟아져 나갔어요. 그러니 염불하다가도 연속극으로 마음이 다 가요. 그놈의 업이 무서운 거예요.

그러니 어느 시기에 자기 청정한 그 마음자리를 볼 수 있겠어요? 우리 일념으로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주력을 하든 일념으로 해야 돼요. 삼매에 들어야 해요. 나를 좌지우지 했던 그 생각이 다 떨어지고 염불 주력하는 한 생각, 화두 드는 한 생각으로 일념이 돼서 하루 이틀 사흘 이 경험을 해야 돼요. 그런데 자신의 마음을 몰입해서 한번도 집중을 안 하고 노력도 안 해요. 다음 시간에 하지, 내일 혹은 모레 더 나아가서는 아들 대학교 졸업하면 하지 이렇게 생각해요.

세상일이 한이 없어요. 해도해도 끝이 없어요. 세상 일을 놓을 수가 없는 거죠. 세상일을 놓지 못하는데 어떻게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나요? 날이 바뀌고 달이 바뀌고 해가 지나서 어느새 노인이 돼 버리는 겁니다. 공부도 힘 있을 때 해야지 정신 왔다갔다하는데 잘 안돼요. 집중이 안 돼요. 깨진 수레는 갈 수가 없어요. 주저앉아 못 가는 거죠. 노인이 돼 기력이 세하면 닦지 못합니다.

그리고 특히 입들 조심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놈의 입이 다 망쳐버립니다. ‘입을 저 담장 넘어 허공에다 매달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죽 입을 잘못 놀렸으면 그런 소리가 나왔을까요. 그놈의 입으로 에너지를 다 쏟아 붓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들은 인과로 돌아갑니다. 그 누구도 안 줍니다. 다 본인 것입니다. 이 결과는 여러분들 스스로 만든 겁니다.

그런데 못나 빠진 사람들은 뭐가 안 되면 주변 탓 합니다. 분노 느끼고 시비하고 그러면 점점 더 나빠집니다. 그러니 좋은 생각들 가져야 합니다. 마음의 자비심을 가져야 합니다.

공부와 자비심의 관계가 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큰 관계가 있어요. 자비심을 마음속에 담고 공부를 하면 공부가 잘됩니다. 큰 문제는 자기에 대한 오만심 분노심 이런 거 아닙니까? 자비를 갖게 되면 분노는 가라앉게 돼 있어요. 부처님이 자비 자비 하시는 그 말씀은 남을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자기 공부를 성취시키기 위해서 꼭 자비심이 필요합니다.

설사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향해서 나쁜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좋은 마음을 보내보세요. 그럼 그 사람도 변합니다. 나의 좋은 에너지가 상대에게 보이지 않게 전달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을 했을 거예요. ‘저놈 고약스럽다’라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면 그 사람도 나를 외면합니다. 그렇게 되게 돼 있어요. 이 우주 공간의 에너지는 같습니다. 인드라망처럼 모든 것이 일체가 연결돼 있습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그 연결된 에너지 그런 것을 전혀 이해를 못합니다. 혜안이 열렸어야 보이지요.

그래서 여러분들 공부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마음의 자비심을 갖고 공부를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데에 에너지를 내버리지 말라는 겁니다. 공부하는 쪽으로 에너지를 모아 보세요. 안 좋은 쪽으로 에너지를 모으지 말아요. 왜 윤회의 길로 가려고 해요. 그러지 마세요.

부처님 법을 만났으면 자유롭고 청정하고 무애하고 그런 길로 가야죠. 무엇 때문에 가지 말라고 하는 길로 가서 골병 들고 깨지고 울고불고 슬퍼하고 그럽니까? 그게 중생의 어리석음입니다. 부처님 법 만났을 때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