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밀행제일(密行第一) 라후라 존자 <하>밀행

〈거조암 영산전 라후라 나한상〉
비구에게 방 내주고 해우소서 잠자
비구계 받고 해탈 6단계 깨달아
유마에게 진정한 출가 의미 배워
“출가공덕은 이익·공덕 없는 것”


부처님의 아들, 라후라. ‘부처님의 아들’에서 비롯된 그의 어려움은 많았을 것이다. 더구나 라후라의 출가가 성숙한 자아에서 비롯된 출가는 아니었음으로 사문으로서의 삶이 어린 라후라에게는 고(苦)였을 수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아들’이 결국 라후라가 ‘라후라’를 극복할 수 있게 했고 라후라를 만들어 갔다.

 밀행
기원정사. 라후라가 아직 계를 받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많은 비구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자 기원정사를 찾아와 방이 부족하게 됐다. 승가의 질서에 의해 라후라는 자신의 방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방을 잃은 라후라는 이리저리 잠자리를 찾다가 부처님이 쓰시는 해우소에서 겨우 잠을 잤다. 이튿날, 사실을 알게 된 부처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어제 라후라는 해우소에서 눈을 붙였다. 이렇게 한다면 출가했지만 비구계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잠잘 곳이 없게 된다. 계율을 고쳐 행자들도 비구와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하되 이틀을 넘기기 전에 따로 거처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라.” 부처님의 말씀은 자신의 아들이 해우소에서 잔 것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었다. 제자들이 계율을 지키는 것에만 집착해 새로 불문에 귀의한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 것에 대한 경책이었다. 화합하며 사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건만 서로 돕지 않고 계율에 얽매여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 날 해우소에서 잠을 잔 라후라를 두고 대중이 입을 모았다.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라후라가 아버지인 부처님을 찾지 않고 스스로 잠자리를 찾은 데다, 해우소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중은 놀랐던 것이다. 일국의 왕자였고 더구나 부처님의 아들인 라후라였기에 대중의 그를 향한 시선은 특별했다. 라후라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 무겁고 어려운 시선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한 실천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훗날 밀행제일이라 부르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법의 눈을 얻다
라후라는 스무 살이 되면서 비구계를 받게 된다. 비구가 된지는 얼마 안 됐지만 라후라의 공부는 이미 깊어 있었다. 부처님은 라후라의 공부가 깊어감을 아시고 라후라를 불러 설법하셨다.
“라후라여, 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 “무상합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 “괴로움입니다.”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라후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상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눈의 의식은, 눈의 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난 느낌이든, 인식이든, 의식이든 그것들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 “괴로움입니다.”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처럼 눈에 대한 법을 설하고 이어서 귀와 코, 혀, 몸 그리고 보배에 대한 질문을 통해 무상, 고, 무아를 명료하게 설하셨다. 그리고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厭惡)하고 형색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난 느낌이든, 인식이든, 심리현상들이든, 알음알이든, 그것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또한 귀, 코, 혀, 몸, 보배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므로 탐욕이 빛바랜다.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즉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게 된다.” 위의 설법에서 나타나는 ‘육내외처로 해체해서 보기’, ‘무상ㆍ 고 ㆍ무아’, ‘염오’, ‘이욕’, ‘해탈’, ‘구경해탈지’의 정형구는 니까야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는 해탈 열반을 실현하는 여섯 단계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고, 설법을 들은 라후라 존자는 번뇌에서 해탈했다. 그리고 ‘생긴 것은 무엇이든 모두 멸하기 마련이다.’라는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을 얻었다.

유마의 출가 공덕에 관한 설법
라후라의 공부는 깊을 대로 깊어 있었다.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에게 다녀오거라. 유마가 아프다.” 라후라 역시 유마를 비켜가지 못했다. “저는 그분의 문병을 갈 수 없습니다. 기억나는 옛일로 인해 그분에게 갈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한참 라후라의 공부가 깊어가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라후라가 부처님께 고한다. “예전에 비야리 성의 여러 장자 아들들이 저의 처소에 와서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라후라여, 그대는 부처님의 아들입니다.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으니 그 출가란 것은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법대로 출가한 공덕의 이익을 설했습니다. 그 때 유마가 다가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라후라여, 그렇게 출가한 공덕의 이익을 말하지 마시십시오. 왜냐하면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는 것이 출가입니다. 조작이 있는 법이란 이익도 있고, 공덕도 있음을 이야기하지만, 출가란 것은 무위(無爲)의 법입니다. 무위의 법 가운데는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습니다. 라후라여, 대저 출가란 저것도 없고 이것도 없으며 또한 중간도 없습니다. 62종의 견해를 떠났으며 열반에 머무나니 지혜로운 이가 받아들일 바이며 성인(聖人)들이 행할 바입니다. 나의 것이 없으며 받아들이는 것도 없으며 흔들리고 어지러움도 없어 안으로는 기쁨을 머금고 다른 이의 뜻을 보호합니다. 선정을 따라서 온갖 허물을 떠남이니 만약 이와 같으면 이것이 참다운 출가입니다.’고 설했습니다. 이에 장자들의 아들들이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부모가 허락하지 아니하면 출가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어찌하면 됩니까?’라고 유마 거사에게 묻자 유마 거사는 ‘그대들이 곧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면 그것이 곧 출가며, 이것이 곧 계를 구족한 것이니라.’고 했고, 이에 장자들의 아들들이 모두 출가에 대한 마음을 내었습니다. 해서 저는 그분을 뵙기가 부끄럽습니다.”고 했다.
라후라가 출가의 공덕이 무엇이라고 설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추측컨대 세속의 부귀공명보다는 출가하여 수행하는 공덕이 몇 천배 수승하다고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유마 거사가 말하는 진정한 출가의 공덕은 아무런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출가란 유위법(有爲法)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위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고 무위법을 배우기 위해서 출가했다면 목적도 방법도 모두가 무위라는 뜻이다. 무위법에는 이익도 공덕도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후라는 이와 같은 진정한 출가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라후라는 유마 거사를 통해 출가의 진정한 공덕에 대해 깨닫게 된다. 라후라에게 쉽지 않은 삶을 던져준 ‘출가.’ 라후라가 유마를 좀 더 일찍 만났다면 라후라의 고(苦)의 시간은 좀 더 짧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삽화 김흥인
답칠보화(踏七寶華) 수기
어느 때인가 아난과 라후라 존자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도 수기를 해 주셨으면”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깊이 생각한 끝에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찾아가 발아래 엎드려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에게도 수기를 주시옵소서.” 부처님은 아난에게 먼저 수기를 하시고, 이어 라후라에게 수기를 하셨다. “라후라여, 그대는 미래세에 ‘답칠보화’라는 이름의 존경받는 여래가 될 것이며, 지혜와 덕행을 갖춘 선서시며, 세간을 잘 아시는 위없는 분이시며, 사람들을 잘 이끄시는 분이시며, 천신과 인간의 스승이시며, 불타시며 세존이 될 것이다. 즉 그대는 10계를 구성하는 미세한 먼지 수처럼 많은 바른 깨달음을 얻은 존경받는 여래들을 공경, 공양하며 찬탄해서 지금 나의 장자인 것처럼 그 부처님들의 장자가 될 것이다. 또 라후라여, 바른 깨달음을 얻은 존경받는 산해혜자재통왕여래에게 헤아릴 수 없는 수명과 모든 종류의 공덕을 갖춘 불국토의 공덕이 빛나는 것처럼, 답칠보화여래에게도 그와 같은 길이의 수명과 모든 종류의 공덕의 완성이 있을 것이다. 라후라여, 그대는 산해혜자재통왕여래의 장자도 될 것이다. 그 뒤 그대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설하셨다.
“라후라는 나의 장자로 / 내가 태자였을 때의 친아들이다. /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 이 아이는 나의 아들이며 / 가르침의 유산을 이을 위대한 성인이다. // 미래세에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수천만 억의 / 많은 부처님들을 뵐 것이다. / 그는 쉼 없이 깨달음을 구하므로 / 모든 승리자의 아들이 될 것이다. / 라후라의 이 같은 수행은 /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밀행이지만 / 보살로서 세운 그의 서원을 나는 잘 알고 있다. / 세간의 친구인 부처님을 찬미해서 / ‘나는 여래의 아들이옵니다’라고 한다. // 이 세상에서 나의 친아들인 라후라가 지닌 공덕은 / 수천만 억으로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 이렇게 그는 대승의 깨달음에 굳게 섰다.”
라후라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설한 게송에는 많은 의미들이 들어 있다. 라후라가 부처님의 아들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중생에게 인연의 깊은 뜻을 보이기 위함인데, 이 깊은 이치를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인연의 실타래를 부처님만이 깊이 헤아린다는 말씀이다. 또한 라후라의 밀행을 알고 있는 이 역시 부처님뿐임을 말하고 있다. ‘은밀한 행’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 은밀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덕으로 쌓이고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라후라의 밀행은 이 은밀함의 힘을 보여준다. 라후라의 삶이 존경받는 이유다. 모두 이 은밀한 힘에 눈 떠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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