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삼십칠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 ① 사념처(四念處)

 원시불교에서 명상수행을 나타내는 말로는, 마음을 가다듬어 정신을 집중하는 선(禪)과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흔들림이 없는 상태인 정(定), 그리고 잊지 않고 주의를 기울여 마음에 새기는 념(念; sati) 등이 있다. 이 중 념은 신념처(身念處)ㆍ수념처(受念處)ㆍ심념처(心念處)ㆍ법념처(法念處)의 네 종류로 분류돼 사념처(四念處)라 하는데 원시불교에서는 이것을 수행하면 다른 수행도는 필요 없다고 여겨 일승도(一乘道)라 부를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

사념처는 몸[身]ㆍ감수작용[受]ㆍ마음[心]ㆍ마음의 대상[法]의 네 가지가 무상ㆍ고ㆍ무아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으로서 인간과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대한 진리를 다 망라해서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몸은 부정한 것이며 감수작용은 고통을 수반하고 마음은 무상하며 법[대상]은 실체가 없는 무아임을 통찰하는 수행법이다.

원시경전에 의하면 이 사념처를 수행하는 목적은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정화하고 비애를 극복하며 번뇌를 멸하고 바른 이치를 통찰하여 열반을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번뇌를 소멸하고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수행으로 원시경전에서는 우선 신념처를 거론한다.

신념처는 인간의 몸에 대해 주의깊게 관찰하는 수행이다. <념처경(念處經)>에서는 신념처의 내용을 여섯 가지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주의깊게 들숨과 날숨을 쉬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이 움직이고 머물고 앉고 눕는 모든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며 셋째는 팔의 구부림이나 옷과 바루의 소지 등 에 대해 바르게 아는 것이다. 넷째는 신체의 각 부분이 부정하다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이 신체를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에 기반해서 관찰하는 것이며 여섯 번째는 묘에 버려진 사체의 여러 가지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섯 가지 신념처는 표현이 다를지라도 우리의 몸은 생멸하는 청정하지 못한 것이므로 이 부정한 몸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신념처는 괴로움이 의지하는 장소인 이 몸을 바르게 관찰하는 수행을 통해 그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려고 한 것이다.

수념처는 인간의 감수작용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며 무아라는 것을 주의 깊게 새기는 수행법을 말한다. 예컨대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미디어와 영상오락물이 넘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이 현란하고 화려한 세상이 사실은 무상한 것이고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감관을 통해 받아들여진 아름다운 것ㆍ좋은 것ㆍ맛있는 것 등이 실제로는 고정된 실체가 없어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하나 사려 깊게 관찰한다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탐욕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혐오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심념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심리에 대한 집착 증오 등을 극복하려는 수행법이다. 예컨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괴롭다면 그 괴로운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무상한 마음을 무상하지 않은 것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심념처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각을 마음에 새기는 순간 전 찰나의 집착하는 마음은 과거로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생멸변화하는 마음은 마음의 대상에 따라 일어난다. 법념처는 이 마음의 대상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고 무상인 법을 자각함으로써 괴로움을 없애는 수행 방법이다. 예컨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전쟁의 역사 중에 어떤 이익이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한 것 보다는 견고한 신념의 충돌로 인해 일어난 전쟁이 가장 잔인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정신적인 대상에 대한 집착은 그 대상이 자아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고 무상한 것임을 마음깊이 되새기는 법념처의 수행에 의해 영원불변의 진리라고 고집함으로써 일어나는 비극적인 괴로움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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