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선해를 마치며

선문답, 초기 비유 설화에서 채택
<전심법요><완능록><임제록><조주록>
순서로 읽어 선의 묘리 체득하길
 


선불교의 특징은 선사들의 독특한 선문답에 있다. 선문답의 시원(始原)은 부처님 초기 설법인 아함경류에서 나오는 비유설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부처님은 아함경류에서 사람들이 재미있게 들으면서 유익한 진리를 배울 수 있도록 비유와 설화를 많이 채택하여 설법했다.

이것을 이어받아 선사들의 선문답 역시 비유가 많이 들어 있다. 선문답은 처음 들어 보면 엉뚱한 말같이 들린다. 이것은 선문답이 몇 단계를 생략한 언어, 비유, 지시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마치 암호와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불교의 핵심 사상은 “존재하는 것은 모두 공이고[色卽是空], 공은 곧 존재이다[空卽是色]”라는 구절 속에 들어있다. 존재는 여러 요소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실체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는 곧 빔이고 빔은 곧 존재인 것이다. 불교는 이것을 깨닫고 사람들이 세워놓은 각종 가치나 개념에 흔들리지 말기를 바라고 있다.

선불교 역시 각종 가치와 개념을 부정해 들어간다. 이들 가치와 개념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만 그렇게 생각하고 명칭 붙여진 것에 불과하다. 언어나 명칭은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이다. 도구는 쓰다보면 망가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필요 없으면 버린다. 영원한 것이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에 크게 집착할 일이 아니다. 진실은 언어와 문자를 떠나서 있다.

선불교에서 깨달음을 중시하는 것은, 아는 것으로서는 인습의 벽을 무너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깊은 각성이고, 깨달음의 순간 습성은 버려지게 된다. 깨달음을 통해 비로소 인생이 뒤바꿔진다. 중생에서 부처로, 어리석음에서 현명함으로, 습관의 세계에서 무습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보는 세상은 보통 사람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습관과, 가치와 문자의 개념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말과 생각도 보통 사람하고 다르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는 사람도 말을 해야 하고 질문에 답변도 해야 한다. 문자의 개념과 습관과 가치를 떠나서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때에는 비유로 대답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엉뚱한 듯한 말을 하는 것이다. 이들 선어(禪語)들은 보통 사람의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서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게 되어있다. 어찌 보면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의 대화가 선어(禪語)인 셈이다.

선(禪)을 이해하려면, 우선 황벽 스님의 〈전심법요〉, 〈완능록〉을 먼저 읽어보고, 다음으로 〈임제록〉〈조주록〉을 읽는다면 이들 선서에서 한결 같이 흐르는 선의 묘리를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중에서 〈임제록〉은 임제 스님의 당찬 선의 기상을 통해 바로 들어가는 길을 체험할 수 있고, 〈조주록〉에서는 조주 스님이 비유와 재치로써 사람을 깨닫게 하려했던 지시가 많이 들어있어 선사들의 정신과 다양한 선의 표현법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또 〈조주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선사들이 수많은 납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때는 납자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방문한 납자가 선적 해석이나 선적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서 질문한 것이 있고, 어느 때는 조사가 서쪽에서 온 도리를 직접 물어서 선사의 대답을 들어보려고 한 것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대담이 이루어진 것을 보면, 당시에 선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조주록〉의 대담을 통해 오늘날 한국의 선불교에도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고 생각된다.
지난 2년간 수많은 선문답을 올리고 그때마다 본 납자가 사족을 달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단 한 곳도 조주 선사의 진의를 전달한 곳이 없으니 독자들에게 죄송하고, 공연히 붓을 놀리어 역대 선사들에도 누를 끼쳤다. 이 어찌 진흙 소가 철봉(鐵棒)을 먹고 금강(金剛)이 출혈을 보이는 일이 아니겠는가. 구업이 무거울 것이라 생각한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묵묵히 선(禪)을 알리는 일에 자리를 내주었던 현대불교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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