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다 산다를 떠난다면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어요
죽는다 산다를 떠난다면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어요
  • 대행 스님
  • 승인 2012.12.22 0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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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끌고 가는 장본인인 참자기를 왜 못 믿습니까 [920호 12월 26일자]

▲ 그림 최주현
 (지난 호에 이어서)
큰스님: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기 자신의 그 맛을 못 본다면 정말 억울한 것입니다.
질문자1(남): 근데 왜 맛이 그렇게 안 봐집니까?
큰스님: 그래서 노력을 하시라는 겁니다. 어떻게 노력을 하느냐? 모든 사람이 육신으로써 노력을 하려고 그럽니다. 선방에 들어가서 육신이 견딜 수 없는데도 억지로 하다하다 나중에는 병들어서 약탕관이 떠날 사이가 없는 그런 분들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엊그저께도 어느 비구니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큰스님이란 큰스님을 다 찾아다니면서 화두를 받아 가지고 공부를 해도 안되고 그래서 선방으로 들어갔는데, 선방에 가서 공부를 하다 보니까 몸이 망가져서 인제는 병이 들었습니다.” 이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기에 와서 스님한테 듣고 가서 그렇게 노력을 해 봤다는 얘깁니다. ‘그저 무조건, 죽든지 살든지 먹는 거든지 일체가 다 네놈이 하는 거니까 너 알아서 해라! 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하니 감사하구나!’ 하고 놓고서 그냥 견뎠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하, 이렇구나!’ 하면서 아주 신기하게 그냥 확 트여지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너무나 좋아서 입이 이렇게 벌어지고 어깨가 쭉 펴졌답니다. 병들었던 그분이 그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게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여러분이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부처님이자 바로 중생이고 중생이자 부처님이에요. 한생각에 껍데기가 벗겨지느냐, 덮어쓰느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아까 그러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 사는 고가 고가 아니라 전부 나를 가르치는 수행 과정이라고요. 참나가 현재의 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얼마나 스스로 이렇게…. 그것을 생각해 보면 고맙기 그지없는 겁니다. 아니, 작년 콩씨를 갖다 올봄에 심었더니 콩나무가 됐는데, 화해서 콩나무가 됐으면 콩씨는 없을 거 아닙니까? 당연히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콩나무에 콩이 붙었는데도 작년 콩씨 찾느라고 바깥에서 휘적휘적한단 말입니다. 그 콩씨가 바깥 어디에 있겠습니까?

질문자1(남): 과거에 비해 어리석어진 걸까요, 사람이?

큰스님: 우리가 바깥으로만, 물질 본위로만 나가기 때문이죠. 우리가 듣고 보고 행하고 이러는 게 전부 물질 중심이고 물질적인 것에 의해서 좋고 나쁘고, 내 탓 네 탓 이렇게 돌아가니까 그렇죠.
나는 사실 조금도 거짓 안 합니다. 내 양심이 부처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내 양심에서, 즉 우주간 법계에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간 법계에 가설이 다 돼 있습니다. 천이통, 무전천체통신기로 전체를 듣고, 또 천안통, 천체망원경으로 영사기가 돌아가듯 여러분이 움죽거리고 있는 모두를 보고, 또 타심통, 탐지기가 여러분의 마음을 꿰뚫어 알고, 또 숙명통, 컴퓨터가 여러분이 지내 온 걸 다 알고, 또 누진통, 책정기가 이 다섯 가지를 다 알아서 책정을 하는 겁니다. 책정기가 이렇게 다섯 가지를 다 포함해서 지금 현실에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믿지 않는 겁니다. 빛보다도 더 빠른 게 우리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여기 앉은 채로 여러분의 집에 한번 좀 갔다 와 보세요. 일 초도 안 걸립니다. 지구 밖으로 나가 보세요, 지구가 얼마만하게 보이나. 한번 나가 보세요, 어떠신가. 밖으로 나가시는 데 걸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집에 갔다 오시는 데 걸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질문자1(남): 없어요.
큰스님: 없죠? 그런데 여러분의 마음이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고 나서 이렇게 했더랍니다. 아니, 죽었다고 하지 말고 꿈이라고 합시다. 꿈을 꾸는데 말입니다, 육체는 재워 놓고 꿈을 꾸는데 뺑 돌아서 큰불이 났더랍니다. 그래 길을 걷다가 불에 포위가 됐더랍니다. 포위가 됐으니 어떻게 나갑니까? 빠져나가려면 꼭 불에 타 죽겠더랍니다. 그래서 그 불에서 못 나가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불 가운데서 쓱 나오시더니 “야! 내 지팡이를 잡아라. 네가 지팡이가 없다면 내 지팡이를 주지 못할 것이고, 네 지팡이가 있다면 내 지팡이를 너에게 줄 것이니라.”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예,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살려 주십시오.” 하고 절을 하니까 “오! 그 살려 달라는 지팡이가 있구나.” 그러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러면 살려 달라는 지팡이를 주지.” 그러고선 지팡이를 턱 내미는데 그 지팡이에 자기가 턱 서니까 불이 전부 없어지더랍니다.

또 한 군데를 가니까 물이 아주 천야만야하더랍니다. 거길 건너가야 자기 집에 갈 수 있는데 물에 뺑 둘려 또 포위가 됐더랍니다. 그래서 배를 찾으니 배가 있나요? 그래서 그 강을 못 건너가서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는데 또 그분이 나타나셨더랍니다. 그래서 꿈에서도 ‘야! 참 이상도 하다. 나를 스님이 되라고 이러시나? 꿈에 스님이 나서서 이렇게 살려 주시니 이 고마운 거를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생각을 하니까 “음, 네 정성이 지극하니 내 지팡이를 주마.” 하고선 지팡이를 탁 내놓는 그 바람에 물이 그냥 싹 없어지더랍니다. 그래, 길이 났으니까 그냥 갔죠?

그랬는데 또, 산에 온통 구렁이니 뭐, 짐승들이 잔뜩 있어서 응응거리고 발 하나 떼 놓을 자리가 없더랍니다. 그렇게 자리가 없어서 거기를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뭐 여자 귀신 남자 귀신 애 귀신 늙은이 귀신 할 것 없이 귀신들이 그냥 몰려서 전부 자기를 좀 살려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자기도 지금 죽을 지경이라 그렇게 할 힘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냥 거기 엎드려서 빌었답니다. “스님, 스님! 좀 살려 주십시오. 아까도 살려 주셨는데 지금 또 한 번 못 살려 주시겠습니까!” 하고 빌면서 그냥 마음으로 마구 울었답니다, 꿈에. 눈물을 철철철철 흘리면서 막 울었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석 달이 걸렸다는 겁니다. 석 달 동안 먹지도 못하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냥 뼈다귀만 남은 거예요. 그런데 뼈다귀만 남아 가지고 어떻게나 그 스님을 찾고 울었는지 모르는데 스님께서 요만한 부채 하나를 주시더랍니다. 그래서 부채를 탁 내던지니까 그 영계들이 다 없어지더랍니다. 또 그 짐승들은 양산을 하나 훅 펴니까 그 속에 그 짐승들이 다 들어가도 그 자리가 모자라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걸 봤다는 겁니다. 양산을 턱 펴니까 양산에 전부 짐승들이 들어가 앉는데 하여튼 나중에는 요만한 알갱이가 돼서 다 들어가더랍니다. 그래서 고만 거기에서 그걸 보고선 탁 깼더랍니다. 깨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이 그런 꿈을 꾸었다면 어떻게 생각을 하셨을까요?

질문자1(남): 깨고 나니까 꿈이었습니까?
큰스님: 그렇죠.
질문자1(남): 꿈이었네요.

큰스님: 허허허…, 지금은요? 그런데 말입니다, 묘한 것은 여러분이 지금 살아 있을 때 물질 본위로 살기 때문에, 이 마음은 체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고 탈 것도 없고 빠질 것도 없고, 당할 것도 없고 잡아먹힐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살아가는 그 의식 때문에, 물질 본위로 살던 그 습이 있기 때문에 탈까 봐 못 들어가고 빠질까 봐 못 들어가고 먹힐까 봐 못 가고 영계에 끄달리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몸을 가지고 살면서 그것을 놔라 이겁니다.

질문자1(남):
그게 그냥 놓는다고 생각을 하면 놔지는 겁니까?

큰스님:
그건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이 자기가 자기라고 안 그러고 자기가 살 양으로 안 그런다면, 죽는다 산다를 떠난다면, 내가 없는데 나를 버렸는데 거기에 나 이외에 뭐 붙을 게 있습니까? 나는요, 죽어야 나를 본다고 그래서 내 한 몸뚱이 죽는다 산다 이런 걸 그냥 버렸더니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어요. 무서운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믐밤에 아무리 깜깜해도, 아무리 무서워도 두렵지가 않고요. 그 뭐가 두렵습니까? 죽은 영계들이 있다 하더라도 외려 친근하고 외려 친절한 거 있죠? 둘이 아닌데요. 얼마나 좋아요.
충북에 있는 광명사에 갔는데요. 여기같이 이런 고상한 탱화가 아니고 울긋불긋한 그림 열두 가지를 쭈욱 걸어 놓고, 또 한 아홉 갠가 해서 쭉 놓여져 있는 거예요. 이름 대기가 귀찮아서 그냥 이렇게 합니다. 그래 그걸 갖다가 전부 부숴 버렸어요. 내 자랑이 아니라 그 몸과 내 몸이 둘이 아닌 까닭에 그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지수화풍으로 뭉쳐졌던 게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물로 돌아가고 다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물질 본위로만 돌아가는 이 습을 놓는다면 그것은 바로 남이 아니라 나예요. 그러니까 그걸 마음대로 자유자재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나 만약에 그렇지 못할 시에는 마음들이, 그 믿고 모시던 마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흡수 못하게 된다면 죽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이 부처도 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신장도 될 수 있고 칠성도 되고 독성도 되고 지신도 되고 목신도 되고…, 여러분이 찰나찰나 바꿔지는 겁니다. (등 뒤의 탱화를 가리키시며) 그래 손이 저렇게 많지 않습니까? 찰나찰나! 그러면 여러분이 살림살이하는 데 고정된 관념이 있고 고정되게 행하는 게 있으십니까? 고정되게 만남이 있으십니까? 고정되게 듣는 것이 있으십니까? 고정되게 가고 오는 게 있으십니까? 전부 공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主人空)’이라고 한 겁니다. ‘주인’이자 ‘공’이다. 그러니 이름 그대로 내가 공했으니 공한 데서 나오는 거 공한 데다가 맡겨 놓으면 되지 않겠느냐! 그런데 왜 그런지 남들은 믿으면서도 자기는 못 믿어요.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장본인인 참자기를 못 믿어요. 자식이라면 아버지를 진짜 믿어야지 왜 못 믿습니까? 현재 자기는 자기 나기 이전의 자기 조상을 믿어야지 왜 못 믿느냐 이거예요. 자기 조상은 죽지도 않아요. 또 변하지도 않아요. 그런 건데 왜 못 믿습니까, 글쎄. 그 못 믿는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그리고 법당에 들어오면 나 따로 있고 부처님 따로 있는 줄 안단 말이에요. 어떻게 부처님 따로 있고 나 따로 있습니까? 예전에, 자손들이나 남편이나 부모가 어디 길을 떠나면 그 사람의 밥그릇을 비우지 않기 위해서 부뚜막에, 조왕에다 밥을 떠 놓고선 마음으로 항상 신경을 쓰고 있었던 아낙네들이 많았죠. 그리고 예전에는 종도 있고 양반도 있기 때문에 양반을 모시는 마음을 하시라도 게을리 하지 말아라 하는 뜻에서도 그랬구요. 한마디로 말한다면 남자 조왕신이 끌어 들여오면, 여자 조왕신은 그 물건으로 해서 먹이고 먹고 이러는 거죠. 그러니까 자식 부부가 다 조왕신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치면 이렇고 저렇게 치면 저렇습니다. 여러분이 어디 안 가는 데 있습니까? 그러니 지신도 되죠. 나무 있는 데는 안 가십니까? 그러니 목신도 되죠. 둘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이 도리를 자세히 아셔야 합니다. 먼저 나부터 알기 위해서는 ‘일체 만법은 한 구멍에서 나오는구나! 그 나오는 데다가 되맡겨 놔야 되겠구나! 이건 고가 아니라 바로 나를 성숙시키는 과정이구나! 아이구, 감사해라.’ 하고선 자기 자신을, 주인공을 그렇게 믿고 감사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당신밖에는 해결 못해!’ 하고 믿고 놓게 됩니다. ‘해 주시오’가 아닙니다. 둘이 아닌 까닭에 ‘너밖에는 해결 못해!’ 하는 겁니다. “주인공 주인공 주인공!” 입으로만 이렇게 부르고 다니면서 “주인공! 해 주시오, 해 주시오.” 이러는 게 아니에요. 주인공이 모든 것을 하고 있는데 무엇을 해 달라는 겁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을 미거하다거나 하찮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미물의 짐승도 나 아님이 없거늘 내 뱃속에 그 미생물을 그냥 끼고 있으면서도, 똥집을 내 뱃속에 끼고 있으면서도, 더러운 가래침이나 핏물 고름물 모든 것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찮은 사람을 보면 하찮다 그러거든요. “에이, 건방져!” 이러거든요. 그리고 비구가 비구니 알기를 우습게 알거나 또 비구니가 비구를 볼 때 우습게 봐서도 아니 되고요. 어머니는 모든 만물을 소생시키니 어머니요, 아버지는 공기와 태양빛을 모두 줘서 기르니 아버지요, 이것이 둘이 아니에요. 모두가 삼위일체로 다 회전이 되면서 맞아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개개인의 몸에 사생이 들어 있기 때문에, 바로 삼합이 맞아야 하니까 그걸 삼신이라고 일컬어 말합니다.

우리가 형제간으로 살다가도 나쁘게 살았으면 자기 한 것대로 딴 데 가서 소로 태어날 수도 있고…, 우연이라는 건 없어요. 자기가 한 것대로예요. 가게에 물건 사러 갔을 때에 이천 원짜리를 천 원만 가지고 가서 달라고 해 보세요, 주나? 안 줍니다. 내가 일을 해야만 일한 대가를 주지 그냥 가서 달라면 안 줍니다. 그러니 어찌 우연이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게 그대로 법이에요. 부처님 법! 그러니 내가 노력하지 않고서 누구더러 깨닫게 해 달라고 하겠습니까, 네? 누구더러 그 맛을 보여 달라고 하겠습니까? 누구더러 내 배를 부르게 해 달라고, 춥고 배고픈 거를 다 면하게 해 달라고 하겠습니까?

우연이란 것은 없어요.
자기가 한 것대로예요.
가게에 물건 사러 가서
이천 원짜리를 천 원만 가지고 달라고 해보세요,
줍니까? 안 줍니다.
내가 일을 해야만 일한 대가를 주지
그냥 달라면 안 줍니다.
그러니 어찌 우연이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게 그대로 법이에요, 부처님 법.
내가 노력하지 않고서 누구한테 해 달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아주 똑바로 해야 합니다. 근데 그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내 몸뚱이 생긴 게 바로 화두예요. 이게 화두고 내가 움죽거리는 게 그냥 행선이고 그냥 참선이죠. 와선이니 좌선이니 입선이니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그 이름이 참선은 아니니까 그것을 통틀어서 우리가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자체, 앉고 서고 하는 게 그대로 참선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마음을 내서 조용하게 앉아 있는 것도 그것을 좌선이란 말도 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내가 참선을 하는 거고, 일어서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도, 허공을 바라보는 것도 참선입니다. 물을 내려다보는 것도 참선이에요. 어느 거 하나 참선 아닌 게 있어야죠.

여러분은 일을 해 가면서도 한생각을 잘하면서 하시구요, 아침에 출근하는 분들은 급하더라도 새벽에 일어나서 그저 10분이든 5분이든 나를 성숙시킬 수 있게끔 참나에 관(觀)하고 나가세요. 또 집안일 하는 분들은 자녀와 남편을 내보내는 데 말 한마디라도 곱게 해 주고, 말 한마디라도 잘해 주어야 능률이 나거든요. 일하는 게 능률이 나요. 그렇기 때문에 무슨 주문을 외운다, 절을 한다, 뭐를 한다 뭐를 한다 하지 말고 한생각을 그냥, 절 한 번을 하더라도 한생각으로써 삼만 번을 그냥 한 번에 해 버린다든지, 오만 번을 한 번에 해 버린다든지, 아예 그냥…. 어차피 욕심을 부리려면 그냥 몽땅 다 해 버리지 그게 뭐라고 그렇게 두고두고 한 가지 한 가지 이렇게 하느냔 말입니까? 난 너무 욕심이 많아서 그런진 몰라도 그냥 죄 신청부같아요. 그러면서도 하나하나가 소중해요.

여러분이 그렇게 신청부같으면서도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어디가 아파서 왔습니다. 우리 어머님이 이렇습니다.” 이럴 땐 기특하고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어요. 자식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부모를 생각하는 저 소중한 마음! 어느 것 하나도 빼놓을 수가 없어요. 또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그 아리따운 마음, 그게 관세음의 마음이지 따로 있소? 어떠한 아픔이 있어도 그걸 용서하시는 어머니의 마음, 부모의 마음이 그게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지 어디 따로 있소? 내 자식한테만이 아니라 남들한테도 그런 마음만 가져라 이겁니다. 모두가 내 자식 아님이 없고 내 부모 아님이 없고 내 형제 아님이 없으니까요.

한번 사생의, 사륜의 굴레 바퀴가 돌아가는 걸 몽땅 본다면 여러분은 놀랄 것입니다. 모두가, 벌레 하나도 나 아님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모두가 공생(共生) 공용(共用) 공체(共體) 공식(共食) 하고 있습니다. 내 배 속에서 지금 움죽거리는 걸 볼 수 없다면, 사생이 움죽거리는 걸 볼 수 없다면 바깥 세상을 보세요. 바깥에 한 몸 한 몸이 그렇게 있으면서도, 또 사생이 외부에 있으면서도 그 한 몸 안에 또 있으니 말입니다. 그 한 몸 안에 또 사생만 있나요? 그 사생 속에 또 사생이 있으니까요.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보이지 않는 모습 없는 모습들이 한생각에 천 명도 나고 만 명도 나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영계라는 거는, 물질적이라는 거는 한계가 있지만 물질이 아닌 바로 영체라는 것은 한계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이 공부를 하시면 나라도 다스리고 건질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요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고요. 예를 들어 장을 놓았는데, 창문을 막아서 바람이 안 들어오고 환기가 안되면 장을 이쪽으로도 옮겨 놓을 수 있고 저쪽으로도 옮겨 놓을 수 있고 그래요. 이 세상 모두가 다 그래요. 그러니 이 지구도 바로 내 몸뚱이와 같은 거예요.

오늘 제가 체계 있게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부처님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의 살림살이나 하찮거나 좋은 말, 이런 것이 전부 한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설하신 그 뜻을, 법의 그 뒷면을 보세요. 학식만 배우지 말고 마음이 쓰여 있는, 글자가 쓰여 있는 그 백지도 보셔야죠. 그 백지가 아니었더라면 글씨가 어디 있을 수 있나요?
그러면 오늘은 이걸로써 점안식을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사회자: 한마음선원 합창단 보살님들의 선법가 공양이 있겠습니다.
큰스님: ‘일체제불의 마음’ 그 노래를 가만히 새겨서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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