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태자와 악사 왕자 ④

‘현우경’이야기(51)


이 나라의 공주는 고집불통으로 유명했다. 성격은 천방지축에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 궁궐은 온통 시끄러웠다. 시녀들은 늘 공주를 찾아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왕 역시 공주가 왕자로 태어났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거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는 터였다.
그날부터 공주는 선사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계속 그의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옆을 지켰다. 시녀들이 아무리 처소로 돌아가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시녀들과 실랑이를 벌이니 선사의 거문고 소리도 멈추었다.


“누구십니까?”
선사가 물었다.
“나는 이 나라의 공주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선사라고 하옵니다만... 공주님. 이런 누추한 곳에 계시면 안 됩니다. 처소로 돌아가십시오.”
“너의 음악소리가 좋구나. 너는 어디서 이런 재주를 익혔느냐?”
“아주 오래전 어머니께서 이 음악을 가르쳐 주셨죠”
“어머니가 아주 훌륭한 분이셨구나”


선사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깊이 올라왔다. 선사의 눈물은 공주의 마음을 울렸다. 공주는 선사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선사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 다시 눈물이 올라왔다.
“너는 참으로 묘한 재주를 가졌구나. 나를 자꾸 울리다니”
이제 시녀들은 공주 앞에 밥상을 놓고 갔다. 그런데 밥이 한 그릇 뿐이었다.
“왜 밥이 하나밖에 없냐. 이 자의 밥은 없는 것이냐?”
“어찌 거리의 부랑자와 밥을 같이 드시려 하십니까?”
“허허 무엄하다. 부랑자라니. 앞으로 이 자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이제 선사와 공주는 매일매일 밥을 같이 먹게 되었다. 선사와 공주는 산책도 하고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태자는 공주가 걱정 되었다. 공주는 선사와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공주님! 이제 더 이상은 이곳으로 오지 마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싫어진 것이냐?”
“어찌 제가 감히..공주님 같은 분을 싫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거지입니다. 그리고 공주님은 이 나라 왕의 따님이시지요. 그런데 저 같이 미천한 놈과 가까이 하시다가 화를 입을까 두려울 뿐입니다”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너는 거지가 아니다. 너는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계속 너의 옆에 있을 것이다”
“공주님은 정말 고집불통이시군요...”


공주에 대한 선사의 마음도 깊어 갔다. 선사 역시 공주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공주에게 선사는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 왕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그리고 선사를 궁에서 쫓아낼 것을 명령했다. 문지기 두 명이 선사의 처소로 들어와 선사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공주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왕께서 이 자를 왕궁 밖으로 끌어내라고 하셨습니다”
공주가 양팔을 벌려 선사를 막아냈다.
“안 된다.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나도 같이 쫓아 내거라”
문지기들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왕이 그 앞에 나타났다. 왕은 공주의 행동에 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이놈. 거리에 떠돌던 장님을 거두어 주었더니 공주를 홀리다니! 내가 너의 목숨을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공주는 왕의 다리를 잡으며 빌고 또 빌었다.
“안 됩니다. 아버지. 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저 사람이 죽는다면 저도 함께 죽겠습니다”
왕은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키운 딸이 맞는지 의심이 갈 지경이었다. 분노가 마음속에 일었다. 하지만 차마 딸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선사를 공주와 함께 궁에 살게 할 수는 없었다. 왕은 오랫동안 고심했다. 이제 결정만이 남았다.
 

“그럼 선택을 하거라. 이 궁에 남을 것이냐. 저 자를 따라 갈 것이냐”
“저는 선사를 따라 갈 것입니다”
“그래? 그럼 공주의 신분을 버리겠느냐? 그럴 만큼 이놈이 대단하단 말이냐?”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저는 저 분이 더 소중합니다”
왕은 너무나 화가 났다.
“여봐라. 저 둘을 궁 밖으로 쫓아내거라. 저들을 도와주는 자가 있다면 내 엄벌에 처하리라”
둘은 그렇게 왕궁에서 쫓겨나 길을 나섰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