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밀행제일(密行第一) 라후라 존자

부처님의 제자이기 이전에 부처님의 유일한 아들인 라후라 존자 이야기다.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출가하게 되는 그는 승가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부처님의 수승한 가르침을 받게 되고, 자신의 부족한 행동을 계율로 극복해가며 드러내지 않는 수행을 이어가는 그를 밀행제일이라 했다.
 

부처님의 아들 최초의 사미로 출가
부처님 설법으로 대중생활 극복
인간존재의 근본인 오온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깨우쳐

라후라는 부처님이 태자 시절 출가를 결심하고 기회를 찾고 있을 때 태어난다. 출가를 결심하고 있었던 부처님으로서는 아들의 출생이 괴로움이었다. ‘라후라’, 그 이름은 부처님의 탄식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그 뜻은 ‘장애’다. 출가 목전에서 아들의 탄생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라훌라(장애)!”라고 탄식했다. 그리고 이레 째 되던 날 궁을 나섰다.

아버지의 유산
9년 만이었다. 마가다국에서 전법을 펴고 계시던 부처님과 교단의 소문은 부처님의 고향 카필라국까지 전해진다. 태자가 부처가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 부처님의 아버지 정반왕은 사자를 보내 부처님을 고향으로 불렀고, 드디어 부처님은 고향 땅을 밟는다. 고향에 오신지 7일째 되던 날이었다. “라후라야, 잘 들어라. 아버지에게 가서 모든 재산을 물려달라고 하여라.” 부처님의 부인 야소다라였다. “아버지!” 부처님과 비구들의 행렬이 멈췄다. 잠시 멈췄던 부처님은 9년 전을 생각하며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라후라는 부처님의 뒤를 따르며 어머니 야소다라가 시킨 대로 말했다. 니그로다숲에 들어선 부처님은 사리불을 찾았다. “사리불이여, 이 아이가 아버지의 유산을 원하니 라후라를 사미로 받아 주거라.” 목련 존자가 라후라의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혔다. 스승은 사리불 존자가 맡았다. 라후라의 출가였다. 최초의 사미다. 부처님의 유산은 자신의 법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니그로다숲에 모인 비구들이 법왕의 계위를 이은 라후라를 축복했다. 아버지로부터 출생을 축복받지 못했던 아들 라후라. 아들이지 못했고 아버지이지 못했던 두 사람.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만났다.
라후라의 출가 소식을 알게 된 정반왕은 니그로다숲으로 달려왔다. 머리를 깎고 발우를 든 손자를 본 정반왕은 기가 막혔다. “태자인 네가 궁을 떠났을 때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단다. 너의 빈자리를 채우려던 난다마저 출가했고, 이제 저 어린 것마저 데려가려느냐?” 정반왕은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말했다. “나에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앞으로는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은 아이의 출가는 받지 말아다오.” 정반왕이 돌아간 뒤 부처님은 계율을 보탰다. 〈율장〉 대품에서 전한다. “비구들이여, 지금부터 부모의 동의가 없는 아이의 출가를 금하겠다.” 부처님은 이튿날 라후라와 함께 고향을 다시 떠난다.

아홉 살 라후라
부처님의 아들, 라후라. 그에게 특별한 배려 같은 것은 없었다. 똑같은 부처님의 계율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라후라는 아홉 살이었다. 라후라가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변화였다. 아울러 아직 어린 라후라의 행동은 수행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방해가 되기 일쑤였다. 수행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라후라는 대중을 놀리거나 장난삼아 한 거짓말로 주위를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궁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라후라의 행동들이 대중 생활에서는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라후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썽꾸러기가 되어 있었고, 대중의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갔다. 사리불과 목련 존자가 각각 화상과 아사리를 맞고 있었으나 쉽지 않았다. 〈유마의기〉 권2에서 전한다. “라후라는 출가 후 웃음이 많고, 입이 거칠었으며, 다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자주 그를 희롱하였는데 부처님께서 어느 날, 계율로서 훈계하여 계율을 지킬 것을 약속 받았다. 이에 라후라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성내는 것을 영원히 단절하니 부처님께서 라후라의 인욕과 지계를 찬탄하여 밀행제일이라 했다.” 어느 날, 걱정하시던 부처님이 결국 라후라를 찾아간다.

아버지의 첫 가르침
라후라는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자리를 깨끗이 정돈하고 발 씻을 물을 준비했다. 부처님은 라후라가 준비한 물로 발을 씻은 뒤 대야의 물을 조금 남기시고 라후라에게 물으셨다. 〈맛지마니까야〉 ‘암발랏티까에서 라후라를 교계한 경’에서 전한다.
“라후라야, 너는 이 대야에 물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느냐?” / “그렇습니다.” / “라후라야, 고의로 거짓말 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란 것도 이와 같이 조금 남은 대야의 물처럼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은 그 조금 남은 물을 가리키며 라후라에게 물으셨다. “이 발 씻은 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
라후라가 놀라며 말했다. “발 씻은 물은 더러워서 마실 수 없습니다.” / “그대도 이 물과 같다.” 라후라의 눈이 커졌다. “사문이 되었는데도 수행을 게을리 하고,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함부로 말을 하며 삼독의 더러움이 몸속에 가득 차 있다면 이 더러워진 물처럼 쓸 데가 없는 것이다.”
다시 부처님은 그 조금 남아 있는 물을 쏟아버리시고 라후라에게 다시 물으셨다. “라후라야, 너는 그 조금 남은 물이 버려진 것을 보았느냐?” / “그렇습니다.” / “라후라야, 고의로 거짓말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란 것도 이와 같이 버려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엔 대야를 밖으로 내던지며 말씀하셨다. “라후라야, 너는 지금 저 대야가 깨질까봐 걱정이라도 했더냐?” / “아닙니다. 어차피 값싸고 하찮은 물건입니다.” / “그렇다. 그대는 사문이 되어 몸과 입을 함부로 하여 대중을 힘들게 했으니 끝내는 어느 누구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농담으로라도 결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라후라가 고개를 숙였다. 부처님의 설법이 이어졌다. “라후라야,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 들어 안 것을 내일도 또 다음 날도 잊지 않는 것이다. 라후라야, 거울의 용도를 아느냐?” /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 “그렇다. 거울을 보듯이 쉬지 않고 자신을 반조하면서 행동을 해야 하고, 말을 해야 하며, 생각을 해야 한다. 라후라야, 행동이 청정했고, 말이 청정했고, 생각이 청정했던 과거세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모두 이와 같이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행동과 말과 생각이 청정했다. 그러므로 너도 그와 같이 하여라.”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고 라후라는 수행자의 삶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오온과 마음챙김
라후라가 열여덟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라후라는 탁발을 위해 사위성으로 향하는 부처님을 따랐다. 라후라는 부처님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만약 부처님께서 전륜성왕이 되셨다면 나도 왕위를 잇고 전륜성왕이 될 수 있었을 텐데… ” 부처님께서는 라후라의 마음속에서 속세에 대한 갈애가 일어남을 보시고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맛지마 니까야〉 2권 ‘라후라를 가르친 경’에서 전한다. “라후라야, 물질(色)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섬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수승한 것이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부처님은 라후라에게 오온에 관해 설하려 한 것이다. 색(色)이 무상함을 설하자, 라후라가 물질(色)만 그런 것인지를 여쭙는다. 부처님은 느낌(受), 생각(想), 결합(行), 알아차림(識)까지도 그러하다고 설하신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라후라는 가던 길을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지금 탁발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후라는 곧바로 근처 나무 아래로 가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 때 스승 사리불 존자가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라후라를 보고 다가가 말했다. “라후라여,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라.” 저녁이 되어 라후라는 부처님께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에 대해 여쭈었다. 부처님은 우선 물질에 대해 설하신다. 부처님은 라후라의 몸에 열망과 욕망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앞서 간략하게 설한 물질에 대해 다시 마흔두 가지 측면으로 욕망을 분해하여 그와 관련된 열망과 욕망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긴 설법을 한다. 그 과정에서 라후라는 인간 존재구조의 근본이 되는 오온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부처님은 16단계의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에 대해 설한다. “라후라야, 이와 같이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이와 같이(16단계) 수행하면 실로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마지막 들숨과 날숨이 소멸할 때에도 ‘멸한다고’ 알 것이다. 그것을 모른 채 멸하지 않는다.” 이 16단계는 〈맛지마 니까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경’과 〈쌍윷다 니까야〉 6권 ‘낌빌라 경’에서도 자세히 설하고 있는데,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사념처의 첫 걸음이기도 하고 위빠사나수행의 첫걸음이기도한 중요한 수행법이다.

라후라 존자는
부처님의 제자이기 이전에 부처님의 유일한 아들이다. 또한 십대제자 중 유일하게 사미로 출가해 사미의 효시가 된다. 라후라, 갈라호라, 하라고라 등으로 음사한다. 라후라는 부처님이 짧은 고향 방문을 마치고 다시 고향을 떠날 때 사리불 존자를 화상으로, 목련 존자를 아사리로 출가한다. 어린 나이인데다 본인의 발심으로 이루어진 출가가 아니었기에 출가 초기 그의 대중생활과 수행생활은 여법하지 못했으며 대중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보이지 않는 수행을 함으로 인해서 밀행제일로 불리게 된다.  (그림은 조향숙씨의 석굴암 라후라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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