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생태적 대안사회의 모색, 공동체운동 (1)

공동체 선행연구는 승가공동체
생태사회 지향자들 공동체적 삶 꿈꿔
대안적 공동체는 경제로부터 독립

대표적 불교 공동체 정토회의 일일 장터의 모습. 이제는 작은 지역단위에서 생산과 소비, 교환과 그리고 문화적 동질성을 이루며,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생태주의자들은 왜 공동체를 꿈꾸는가
최근 안성의 금광저수지 근처에 ‘들꽃피는 마을’은 10가구가 3년간의 토론과 준비를 거쳐 집을 짓고 입주했다. 충북영동의 백화마을도 역시 3~4년여 준비를 통해 40가구가 산 기슭에 집을 짓고 2012년 2월에 입주했다. 서천의 산너울마을, 홍동면 문당리 생태마을, 함양의 청미래 마을, 산청의 안솔기 마을 등 모두 생태공동체마을이거나 코하우징공동체이다.

최근에 급격히 늘고 있는 코하우징공동체는 3~40명이 조합을 결성하여 도시인근에 토지를 매입하고 계획하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이다. 개별적 공간은 최소화하고, 공동체공간을 만들어 매주 같이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같이 돌보고, 협력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곳에 살고 싶어 할까? 그 이유는 우선 공동체에 사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기꺼이 협력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믿을만한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아웃집끼리 왕래가 빈번하기 때문에 노인들이 생활하기도 편하고 어린이들이 여기저기 놀 곳도 많고 편안하기 때문에 고독하지 않고, 덜 외롭게 느끼게 된다.

사람끼리 사랑으로 관계맺으며 사회적 참여의 기회를 많이 갖게 한다. 그리고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끼리 같이 즐겁고 재미있게 살고 있는 곳이며, 함께 한다는 소속감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웃간에 필요한 물품들을 거의 교환이나 빌려쓰는 일, 때로는 공동으로 구입하여 사용하는 일이 많아 적은 돈으로 공동소유하며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잇점은 돈이 없어도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동체의 꿈과 그 역사
생태적 대안사회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거대한 국가단위보다 작은 지역단위에서 생산과 소비, 교환과 그리고 문화적 동질성을 이루며,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사는 공동체를 궁극적 삶으로 꿈꾼다.

인류는 항상 어려운 자연조건내에서 서로 협동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나갔고, 더불어 협력하며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만들어 나갔다. 공동체는 위기의 시대에 미래의 희망을 만들고, 새로운 결사를 이루어 내는 단위가 되기도 했다. 특히 종교의 역사는 가히 공동체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많은 전통을 갖고 있다.

공동체를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부처님의 승가공동체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에세네파의 쿰란공동체와 이후 예수의 정신을 유지하며 살았던 초대기독교공동체, 그리고 가톨릭의 수많은 수도회도 바로 이러한 신앙적 결사를 위해 만들어진 공동체들이다.

이뿐만 아니다. 홍길동전의 ‘율도국’, 여인들만의 이상촌 ‘이어도’, 티벳의 ‘상그릴라’, 유럽의 ‘유토피아’, 기독교의 ‘에덴동산’이나 불교의 ‘정토’등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사회이기도 하지만, 중생이 도탄에 빠지거나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꿈꾸어 온 이상사회이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야 할 때, 사회의 단순한 개혁만으로 난국을 헤치고 갈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인류는 오히려 처음으로 돌아가 항상 삶의 근본을 찾아 머리를 맞대고 공동체를 이루며 삶을 모색해왔던 전통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과거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사회주의자들과 시오니즘이 결합되어 ‘키부츠’라는 공동체로 시작된 국가이다. 대체로 4~600명으로 구성된 각각의 키부츠 공동체는 사적 소유를 허용하지 않고, 공동생활, 공동생산, 공동판매의 무소유공동체로 현재에도 약 270개가 있다. 그리고 사유재산은 허용하되 공동생산을 하는 공동체 ‘모샤브’가 360개 있으며, 공동노동기업체인 ‘모샤브 쉬투피’는 70여개, ‘모샤바’라는 농촌공동체가 100여개가 있어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근본 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에 대한 정치적 판단 여부를 떠나 사막이라는 황무지, 외부의 공격이라는 악조건속에 상호부조하며 발달된 새로운사회를 만드는데 바로 공동체가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데 공동체는 아주 유용한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 증거이다.

현대의 공동체의 흐름
19세기는 가히 공동체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많은 공동체들이 만들어 졌다. 로버트 오웬과 같은 공상적사회주의자들이 완전사회를 꿈꾸며 만든 뉴하모니공동체로부터, 1787년 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쉐이커공동체, 하모니 공동체, 후터파공동체, 드호볼파공동체 등이 있고, 아난다협동마을, 르네상스공동체있다. 1950년부터 시작되어 최근까지 발전되어 온 일본의 야마기시회 등, 세계의 공동체는 현재 수만개에 이른다.

그러다 60년내 말과 70년내 반전운동, 반문화운동에 힘입어 새로운 공동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9세기의 공동체운동이 ‘무엇에 대한 추구’를 위한 공동체로 엄격한 질서와 구조, 원칙을 갖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반면, 70년대 만들어진 공동체는 ‘무엇에 대한 도피’로서의 성격 때문에 질서잡히지 않고 혼돈스러운 형태여서 오래 지속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1980년 약 3만여개의 공동체가 있다고  쥬드슨 제롬(Judson Jerome)은 그의 책 “Families of Eden에 추측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동체가 자신들을 대중에 드러내길 꺼려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정확하게 공동체의 수를 헤아리가 어렵지만, 대략 이보다 약 10배20배정도의 공동체가 있다고 봐야한다고”〈새벽의 건설자들 (Builders of the Dawn)〉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실제 드러난 공동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가장 큰 계획공동체 (Intentional Com-munity) 인터넷사이트 ‘www.ic.org’에는 2011년 2월 현재 미국에만 1,827개의 공동체, 미국 이외의 나라는 795개 등 총 3,600여개의 공동체사이트가 모여져있다. 그곳에는 각기 공동체의 성격와 규모, 인원, 역사와 위치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격월로 공동체잡지도 발행하고, 격년으로 공동체편람(Directory)를 발간한다.

이 사이트에서도 대략 2/5는 종교공동체이고 나머지 3/5는 일반공동체로 보여지며, 이 종교 공동체 중에는 여러 개의 불교공동체도 포함되어 있다.

공동체의 종류
공동체의 종류로는 우선 종교공동체가 있다. 같은 공간에서 무소유의 삶을 기반으로 고도의 정신적인 깨달음을 추구해온 승가공동체와 같은 정신적 공동체이다. 또한 가톨릭의 수도원의 다양한 종교공동체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수도원의 개수는 하나님도 알수 없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많고, 오늘날 가톨릭을 이끌어 온 것이 바로 수도원의 전통이었다.

두 번째는 계획공동체 (Intentional Community)로 일종의 코뮨적 공동체, 공동소유공동체이다. 일정한 공동의 공간에서 배타적인 구성원들이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이곳은 무소유공동체이기도 하지만 어떠한 경우 부분적으로 개인소유를 인정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 소유보다 공동소유의 부분이 더많고, 따라서 집단적인 결속력이 아주 높다. 승가공동체나 이스라엘의 키부츠, 우리나라는 화성의 산안회나, 불교의 정토회, 부안의 변산공동체, 태백의 예수원, 울진의 한농복구회, 화성의 두레마을 등이 있다. 

세 번째는 공동주거공동체 (Co-housing)로, 공동으로 집을 짓고 사는 것이다. 개인적소유를 기반으로 하면서 부분적으로 공동소유하며 공동체적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귀빈래마을이나 안솔기마을, 홍성 문당리공동주거, 영동의 백화마을, 안성의 들꽃피는 마을 등이 여기에 속한다.

네 번째는 마을공동체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두레나 기타 부족사회, 씨족사회에서 있었던 것처럼, 마을끼리의 공동체적 상호지원과 협력을 통해 자치와 자립적 마을을 만드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의 두레, 일본의 마을만들기 (마치쓰구리)운동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상사 한생명공동체, 부산의 물만골공동체, 괴산의 솔뫼농장, 홍성문당리의 마을공동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섯 번째는 생산공동체이다. 생활이 아니라 생산을 중심으로하는 공동체로, 노동자협동조합이나 생활협동조합의 경우를 말한다. 마을공동체중에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곳은 대부분 생산공동체의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스라엘의 모샤브나, 우리나라의 솔뫼농장, 장성의 한마음공동체, 원주의 협동조합, 홍성의 문당리등의 농업을 중심으로한 생산공동체가 있고, 스페인의 바스크지방의 ‘몬드라공협동조합 공동체’, 이태리의 볼로냐 등도 지역내에 다양한 산업을 협동조합화하여 생산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여섯 번째로는 네트워크 공동체이다. 함께 생활하고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호부조하면서 협력하는 공동체이다. 대체로 온라인상의 네트워크와 같이 동반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사회변화와 관련된 의미있는 것만을 본다면 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으로 불리는 ‘지역통화(Local Money)’ 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전의 한밭레츠의 ‘두루’ 서울의 미내사(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의 ‘FM money', 서초와 송파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서초품앗이’, ‘송파 품앗이’, 과천의 ‘과천 품앗이, 어울림 품앗이’, 성남의 ‘문화통화’, 대구의 ‘희망품앗이’, 구미의 ‘사랑고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모색
오늘날 인류는 환경위기를 목전에 두고 현재의 개인주의적이며, 소비적이고 수탈적인 생활양식의 전환을 이루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요구를 강제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인류가 시도해온 방식은 지향하는 방식대로의 작은 모델을 만들어 살아보는 것이며 그것을 ‘공동체’라고 이름붙이고 있다.

독일의 초기 녹색당이론가 였던 루돌프 바로(Rudolf Bahro)는 ‘공동체 전략은 근본적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산업사회에서 해방된 영역을 건설해야 한다.’고 하면서 대안적 공동체는 ‘현재의 정치 경제 사회구조로 부터 독립적 사회형태’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오늘날 수많은 개량주의적 시도는 결국 ‘산업사회의 구멍을 메우면서 결국 산업사회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며 오히려 이러한 산업사회에 포섭되지 않은 ‘섬’, ‘해방된 영역’을 만들어 그것을 통해 새로운 사회의 씨앗을 만들어나가는 시도를 동시에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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