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은 참선 모습 인상적

出世해 중생제도해 주길

▲ 자장율사
속가 시절 서울서 통역일을 하면서 여가를 이용해서 부산구경을 하러 몇 번 다닌 적이 있었다. 경주를 지나 언양쪽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데 양산 통도사가 있는 곳에 이상한 기운이 하늘에 까지 높이 걸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왜 그런 이상한 기운이 있는가를 궁금해 하면서 통도사에 가서 지금 성보박물관 있는 곳을 지나 반월교를 보면서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거쳐 걸었다. 낡고 오랜 웅장하고 아름다운 절을 이리 저리 보고 걸으며 금강계단을 참배한 적이 있다.

다른 절들은 모두 큰 법당에 부처님과 협시보살들을 모시는데,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단은 있으되 좌대도 없고, 불상도 없다. 그 이유는 뒤에 위치한 금강계단에 자장 율사(慈藏律師)께서 중국 유학중에 친견한 문수보살님이 주신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보면 자장 율사께서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자신의 집과 논밭을 바쳐 원녕사란 절을 세웠으며, 홀로 깊은 산에 들어가 고골관(枯骨觀, 시체가 썩어서 백골이 되는 모습을 보며 무상과 공함을 깨쳐 탐욕을 제거하는 수행법)을 닦았다 한다.

그러다가 선덕여왕 5년(636년)에 왕명으로 10여명의 제자들과 더불어 당나라 청량산에 가서 문수보살에게 기도를 드리다 친견한 후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00여 과(果), 불두골(佛頭骨)과 손가락 뼈, 염주와 경전 등을 받았다고 한다.그리고는 중국 남산 율종의 종주인 도선(道宣)율사를 모시고 종남산 운제사에서 3년 동안 수행한 뒤, 선덕여왕 12년(643년)에 대장경 일부와 번당(깃발), 화개(꽃장식 가리개)등을 가지고 귀국하여 선덕여왕과 함께 통도사를 창건한다.

자장 율사의 스승 도선율사의 일화는 기이하고 신비한 일들이 많은데, 출가한 후 한 번은 보함을 머리에 이고 탑을 돌면서 참선하였는데, 함속에 사리가 생기게 해 달라고 발원했더니 7일 만에 사리가 생겨났다. 이 때부터 더욱 뜻을 다지고 하루 한끼만 먹고 자지않고 선정에 들었다 한다. 또 반주삼매(般舟三昧)를 닦는데, 천룡이 내려와 시봉하기도 하고, 마실 물이 없자 흰 샘이 솟고, 지초(芝草)가 나기도 했다.

또 도선율사께서 과로로 병이 나시자 천왕이 보심약을 주면서 말하기를 ‘지금은 상법(像法)시대의 말기라 악성(惡性) 비구들이 절만 거창하게 짓고, 좌선의 지혜는 닦지 않으며 경전도 독송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자(智者)가 있더라도 천에 한둘 정도입니다’라고 했다 한다.

그 후 서명사에 있을 때 심야에 행선(行禪)하다가 법당 앞 계단을 헛디뎠는데, 누군가 발을 부축하였다. 누구냐고 물으니 북천왕의 아들인데, 칙명을 받고 모시게 되었다 하니, 율사께서는 ‘태자께서는 제 수행 때문에 번거로이 따를 필요가 없다’ 하였다.그러자 북천태자는 길이 세 치, 넓이 한 치 되는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주면서 잘 간직하라고 하며 사라졌다. 율사께서는 천신(天神)과 자주 만나 신령스러운 자취나 성스러운 일에 듣는 것을 즐기셨다고 하며 기록하여 〈감통전기〉라는 책을 쓰셨다 한다.

자장 율사의 이 영정은 특이하게도 좌정한 선방 수좌스님의 자세이다. 스승인 도선율사에게서 율장만 배운 것이 아니라 참선하는 것도 배우셨을 것이 분명한 분을 율사라는 이름으로 한정할 수 없다. 큰스님께 간곡하게 출세(出世)하여 중생을 제도해 주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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