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호 12월 5일]

조주 스님이 신참학승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학승이 말했다.
“설봉(雪峰)에서 왔습니다.”
조주 스님이 말했다.
“설봉은 어떤 말로 수행자에게 보이는가?”
학승이 말했다.
“화상은 항상 말씀하십니다. ‘전 우주는 사문(沙門:我)의 일척안(一隻眼)이다 자네들은 어디에 똥을 누는가?’ 라고.”
조주 스님이 말했다.
“자네가 만일 돌아가거든 괭이 한 자루를 가져다주게.”

師問新到 離什麽處 云離雪峰 師云 雪峰有什麽言句示人 云和尙尋常道 盡十方世界 是沙門一隻眼 你等諸人向什麽處屙 師云 闍黎若迴 寄箇鍬子去

괭이를 보낸 뜻은 ‘똥 치우는 자’라는 뜻이다. 나 또한 조주 스님에게 돌아가는 자가 있으면 빗자루 한 개를 보내겠다.

조주 스님이 옷을 대중에게 순서대로 나누어주었을 때 한 학승이 물었다.
“화상께서 그렇게 모두 나누어주시면 무엇으로 쓰시겠습니까?”
스님이 “호주자(湖州子)야” 하고 불렀다. 학승이 “네”하고 대답했다. 스님이 말했다.
“무엇으로 쓰는가?”

師因捨衣俵大衆次 僧便問 和尙總捨卻了 用箇什麽去 師召云 湖州子 僧應諾 師云 用箇什麽

기막힌 가르침, 다시 무엇을 더 보탤 것인가. 사람마다 재보를 두는 창고가 있는데 들여다보면 텅 비었으나 써도 써도 끝이 없다.

조주 스님이 대중에게 보였다.
“아직 세계가 없을 때 이미 이 물건이 있었다. 세계가 괴멸될 때도 이 물건은 괴멸되지 않는다.”
학승이 물었다.
“이 물건이란 무엇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5온(五蘊)과 4대(四大)이다.”
학승이 말했다.
“그것 또한 괴멸되는 것입니다. 이 물건이란 무엇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4대와 5온이다.”

師示衆云 未有世界早有此性 世界壞時此性不壞 僧問 如何是此性 師云 五蘊四大 云此猶是壞 如何是此性 師云 四大五蘊

5온은 마음이고 4대는 육체이다. 줄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구멍 뚫린 오동나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동나무 통에 줄을 가지런히 매놓고 퉁기면 소리가 난다. 원래 소리는 있었다. 오동나무와 줄이 만나 그 소리가 났을 뿐이다. 그러면 그 소리는 무엇인가? 오동나무와 줄이다. 혹은 줄과 오동나무이다. 이것이 없으면 소리도 없다.

정주(定州)에 어떤 좌주(座主:강사)가 있었는데 조주선원으로 찾아왔다. 조주 스님이 물었다.
“어떤 학업을 참구하고 계시는지.”
좌주가 말했다.
“경율론 삼장에 대한 것이라면 남에게 듣지 않더라도 곧 강의할 수 있습니다.”
조주 스님은 손을 들어 올려 보이고 물었다.
“이것을 강의할 수 있습니까?”
좌주는 망연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조주 스님이 말했다.
“가령 당신이 남에게 듣지 않고 강의할 수 있을 정도라 해도 하나의 경(經)이나 논(論)을 강의(講義)하는 사람 밖에 안돼요. 그렇게 해서는 불법에 들어가지 못해요.”
좌주가 말했다.
“지금 화상의 말씀이 곧 불법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가령 당신이 물을 수도 있고 대답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경이나 논에 속하는 것이오. 불법에 있는 것이 아니오.”
좌주는 말이 없었다.

定州有一座主到 師問 習何業 云經律論不聽便講 師擧手示之 還講得者箇麽 座主茫然不知 師云 直饒你不聽便講得也 只是箇講經論漢 若是佛法未在 云和尙卽今語話 莫便是佛法否 師云 直饒你問得答得 總屬經論 佛法未在 主無語

불법은 경과 논 속에 없다. 그 속에 있다면 조주 선사가 손을 들은 뜻을 알았을 것이다. 좌주는 경론 속에 들어갔을 뿐 불법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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