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지계제일(持戒第一) 우바리 존자-<상>출가인연

천민 출신으로 출가하여 인도와 부처님 교단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제자가 있다. 부처님 법을 통해 힘들었던 삶의 인연을 끊고,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된 그는 누구보다 부처님 말씀을 소중히 했다. 부처님의 평등성을 몸소 증명하게 된 그는 부처님 말씀 중에서도 특히 수행자의 목숨과도 같은 계율을 지키는데 원력을 세운다. ‘지계제일’로 불리는 우바리 존자 이야기다.

왕자들 따라 갔다 출가해
부처님 배려가 ‘지계제일’ 낳아
아란야에서 수행 못했지만
진정한 수행자의 길 걸어


부처님이 고향을 다녀가면서 왕자들을 비롯한 석가족의 출가가 이어졌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인도를 중심을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부처님이 고향을 떠나신 직후였다. 부처님의 사촌인 데바닷다 왕자가 중심되어 여러 왕자들이 출가를 결심하고, 왕사성으로 떠난 부처님을 뒤따라간다. 그 일행속에 우바리가 동행하게 되고, 우바리의 출가는 왕자들의 출가에서 비롯된다.

왕자들의 출가
부처님은 기원정사로 가는 길에 아누삐야의 망고숲에 머물고 있었다. 출가를 결심한 데바닷다 아나율 밧디야 아난다 바구 낌빌라 우빠난다 일곱 왕자들은 출가를 허락하지 않는 부모들을 속이기 위해 시종들과 함께 소풍을 가장해 궁을 나선다. 왕자들 일행이 국경에 다다랐을 때였다.
“우바리야, 너는 이것을 가지고 돌아가거라. 이 정도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모든 시종들을 모두 돌려보낸 왕자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이발사 우바리를 따로 불러 그들이 몸에 지녔던 보석과 장신구들을 전해주며 궁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다른 시종들과는 달리 평소 왕자들의 신임이 남달랐던 우바리에게 왕자들은 살 길을 열어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왕자들이 처음부터 우바리를 비롯한 시종들의 출가는 생각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바리와 시종들을 돌려보낸 왕자들은 서둘러 길을 떠났고, 홀로 남은 우바리는 생각했다. “이 많은 보석을 가지고 돌아간들 나의 신분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천민인 내가 이 보석들로 삶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부처님 당시 인도는 정해진 신분에 따라 살아가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우바리는 다시 생각했다. “왕자로 태어난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의 길을 택한 것은 보다 값진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얻는 바가 있다면 나도 얻는 바가 있으리라.” 우바리는 왕자들에게서 받은 보화를 숲에 두고 왕자들의 뒤를 쫓는다.

사형(師兄) 우바리
망고숲. “왜 고향으로 가지 않았느냐?” 왕자들이 막 망고숲에 도착했을 때였다. 돌아온 우바리를 보고 왕자들이 놀라며 말했다. “저도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우바리가 돌아온 이유와 출가의 뜻을 말하자 왕자들은 우바리의 뜻을 받아들여 함께 부처님을 뵙기로 한다.
“세존이시여, 저희도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바른 법과 율을 닦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을 만난 왕자들과 우바리는 부처님께 귀의를 원하고 계를 청했다. 부처님 곁에 자리한 상수제자 사리불 존자가 말한다. “계를 받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부처님 제자의 서열은 출가 순서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그 순서는 부처님께서 이름을 부르는 순서로 정해진다.” 왕자들과 우바리가 부처님께 귀의할 것을 발원하자 부처님께서 계를 내리며 이름을 불렀다. “우바리!” 부처님이 제일 먼저 부른 이름은 우바리였다. 왕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이발사였던 우바리가 그들의 사형이 된 것이다. 부처님 교단에 ‘신분’은 없었다. 비구의 출가 전 신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부처님이 우바리의 이름을 제일 먼저 불러 계를 주고 그들의 사형이 되게 한 것은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부처님의 의도였다. 부처님이 이어서 왕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새롭게 출가한 우바리와 왕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법은 바다와 같다. 바다는 수많은 강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며, 바다의 물맛은 늘 하나다. 우리 승가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며, 평등한 그들에게 올바른 법과 율이라는 한 가지 맛이 있을 뿐이다. 명심하라. 계를 받은 순서 역시 예를 갖추기 위한 것일 뿐, 신분과 귀천은 없다. 인연에 따라 사대(四大)가 합해져 몸이라 부르지만 이 몸은 무상하고 텅 비어 ‘나’라고 고집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진실하고 성스러운 법과 율을 따르고 절대 교만하지 말라.”

전생
우바리의 출가는 여러 모로 의미하는 바가 컸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우바리는 무슨 업으로 궁중의 이발사로 왔다가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까?” 대중은 우바리의 과거세가 궁금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본행집경> ‘우바리 인연품’에서 전한다. “우바리는 과거세에 존자 벽지불을 이발해 주고 나서 소원을 세우기를 ‘원컨대 세세생생에 만약 사람의 몸을 얻으면 항상 이발사의 집에서 태어나겠다,’ 하였고, 또 그 때 원하기를 ‘원컨대 악도 가운데 나지 않겠노라.’고 했던 발원의 과보력으로 악도에 나지 않고, 그 때부터 천상과 인간에 유전하면서 또 소원을 세우기를 ‘원컨대 나는 미래세에 항상 이런 스승이나 혹은 이보다 나은 분을 만나고, 만약 그 스승의 설법을 들으면 빨리 증득하고 알게 하소서.’라고 했던 업보로 인하여 금세에도 이발사 집에 태어났고, 나 세존을 만나 스승을 삼고, 법을 어기지 않고 그 계행을 따르니 계행을 갖춘 제자 가운데 으뜸이 될 것을 수기하는 것이다.”

지계 원력
궁중의 이발사로 살아온 우바리에게 그동안 배움의 길이란 남의 머리를 잘라주는 것밖엔 없었다. 학문이나 기예를 닦을 기회란 그에게 없었다. ‘공부’에 대한 발심을 하게 된 우바리가 하루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저도 아란야(阿蘭若ㆍ한가롭고 적정한 처소로, 당시 홀로 수행하기 좋은 숲 등을 말함)에 들어가 수행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하지만 부처님은 우바리가 아란야에서 수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바리야, 아란야에서 수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아직 정심(定心)을 얻지 못한 비구가 홀로 자신을 점검하고 돌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바리 너는 아직 그곳에 머물지 말라.”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난 우바리는 왜 다른 수행자들에게는 허락된 일이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지 의아했다. 의아해 하고 있는 우바리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 “잘 듣거라. 연못에서 코끼리가 즐겁게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귀를 씻기도 하고, 등에 물을 뿌리기도 하면서 참으로 기분 좋게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토끼도 목욕을 하고 싶어져서 코끼리가 떠난 뒤 연못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토끼는 곧 연못에서 뛰쳐나왔다. 그 연못은 토끼에게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발이 땅에 닿지 않자 토끼는 겁이 났던 것이다. 우바리야, 너에게 아란야는 너무 깊은 연못이다.”
부처님의 생각은 그랬다. 각자 근기에 맞는 수행과 수행처를 찾아야 한다고. 부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우바리야 너는 대중과 함께 하거라. 대중 속에 머물면서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먼저인 일이다.” 부처님은 우바리가 대중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바리는 그런 부처님의 뜻을 받들었고, 대중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계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우바리는 부처님이 율을 제정할 때마다 철저하게 받들고 실천한다. <장로게>에서 전하는 우바리의 게송이다. “신앙에 의해 세속으로부터 떠나 새롭게 출가한 신참의 수행승은 게으름 피우지 말고 청정한 생활을 하는 좋은 친구들과 사귀어야 한다네. 신앙에 의해 세속으로부터 떠나 새롭게 출가한 신참의 수행승은 승가 안에 살면서 총명하게 계율을 배워야 한다네. 신앙에 의해 세속으로부터 떠나 새롭게 출가한 신참의 수행승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마음에 새겨 마음이 산란해 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네.” 부처님이 우바리에게 대중 속에 머물도록 한 것은 그의 근기를 살핀 것이다.
‘천민’이라는 무거운 신분의 짐을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려놓을 수 있었던 우바리 존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너무나 고마운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받드는 일을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일에서부터 시작했다.

계율이란
부처님 십대제자 가운데 우바리 존자만큼 계율에 원력을 세운 제자는 없었다.
계율이란 몸과 입 뜻으로 말미암은 모든 악을 방지하기 위해 불법에 귀의한 사람이 지켜야 할 행위 규범으로, 계(戒)와 율(律)의 복합어다. 원래 범어에서는 계와 율을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하여 왔다. 계는 습관, 관습, 경향 등의 뜻이 있어서 좋은 습관이나 도덕적 행위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인간의 몸과 마음을 조정하는 종교적, 도덕적인 규범을 일컫는다. 곧 불자라면 출가, 재가의 구별 없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인 것이다.
이에 대해 율은 제거, 훈련, 조복 등을 뜻하는 말로, 모든 그릇됨을 여의고 이상적인 세계로 선도해야 할 출가 교단을 자체적으로 통제하는 규범이다. 따라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 출가자를 통제하는 규범으로써 재가자 보다는 출가자를 위한 통제 규칙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계율이란 용어는 수행자 개인의 자발적인 의지의 측면인 계와 교단 통제를 위한 규범인 율이라는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자율적 규정과 타율적 규정이라는 두 가지 면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초기 교단에서의 계율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 오계(五戒)가 전부였다. 하지만 승단이 커짐으로 인해 계율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새로운 계율이 필요했다는 것은 그 만큼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하나 둘 새롭게 만들어진 계율은 지금의 비구 250계, 비구니 338계가 됐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우바리는 부처님 곁에 늘 머물면서 새로운 계율의 조항을 빠짐없이 기억해 두었던 것이다.
 

 

우바리 존자는
부처님 십대제자의 한 분으로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계율을 철저히 지켜 지계제일로 칭송된다. 산스크리트어 우팔리의 음역으로, 우바리(優婆離)·우발리(優跋利)·우파리(優波梨) 등으로도 쓴다. 천민(수드라) 계급에 속했으며 궁중에서 왕족의 이발사였던 그는 석가족 왕자들이 출가할 때 그들을 따라가 출가하게 된다. 당시 철저한 계급으로 신분을 규정하던 인도에서 그는 불법 앞에 만인이 평등함을 몸소 증명한다. 가르침이나 깨달음을 앞세우기보다는 몸소 실천하는 수행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는 계율을 지키는 일에 원력을 세워, 받들고 지켰다. 부처님 열반 후 결집에서 율을 송출하고 확정하는 큰 역할을 한다. (그림은 조향숙씨의 석굴암 우바리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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