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남성의 ‘직선노동’과 여성의 ‘순환노동’

남성성의 일 ‘직선적 노동’…생태위기
여성성의 노동은 생명살리는 순환적 노동
돈 받지 않는 무불노동 우리사회 기반 돼
여성의 집안일은 곧 ‘사람 살리는 일’

▲ 민노총 도시철도 노동조합의 시위 모습. 직선적이고 위계적인 남성적 노동대신 여성성을 기반으로 한 순환적 노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
보통 남편을 부를 때, ‘바깥양반’이라고 말한다. 부인은 내자(內子)로 표현하기도 하고 ‘안사람’이라고 풀어 말하기도 한다. 남자의 일은 주로 집바깥 일을 하고, 여자는 대체로 집안의 일을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요즘 여성의 사회참여가 높아졌고 남녀의 일의 구분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과거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에서는 육체노동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남성의 사회적 주도성이 높았고 그로 인해 가부장적 사회가 수천년간 이어져 그것이 성에 따른 역할분담을 고착되었다. 그러나 정보화사회는 근육(Muscle)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노동력의 차별이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가부장사회의 관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남자의 일은 주로 돈을 버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돈을 버는 일을 경제활동이라고 하고 이러한 경제활동은 결국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자원이나 원료 등을 가공하는 일이거나 서비스업이다. 그런데 이러한 남자의 노동은 노력할수록 돈으로 쌓이거나 성과로 남거나 사회적 명성을 얻게된다.

남자들의 일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을 지향한다. 무한히 많이 돈벌기를, 무한히 많은 명예를, 무한히 많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에 대한 대가를 보상받는다. 그 지향과 방향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이것을 ‘직선적 노동’이라고 표현해보자.

그런데 여성의 일은 이와 다르다. 여성의 일은 고생 고생하지만 전혀 표시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일은 안하면 금새 표시가 난다는 점이다. 육아, 청소, 요리, 집안정리 등 모든 가사노동이 바로 그렇다. 일을 하면 돈이되는 남성과는 달리 여성의 노동은 돈이 안된다. 이러한 노동은 성과도 없고, 축적도 없기 때문에 반복적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남성의 ‘직선적 노동’에 비견하여 ‘순환적 노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공양간에서 깨달은 순환사회노동
필자는 2001년 약 일년여 보직순환의 원칙에 따라 정토회에서 공양주를 한적이 있었다. 공양주를 하면 마음공부도 되고, 공덕도 더 쌓을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당시 초기에는 밥을 짓기 위해 새벽 공양간의 문을 열때마다 “어제 했던 밥을 또 해야하는 구나,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되는구나” 하며 한숨진 적이 있었다.

그때 느꼈던 나는 깨닫게 되었다. 오늘날 자연을 파괴하면서 환경재앙, 생명의 죽임, 생태 위기를 초래한 것은 결국 남성성의 일이었다는 점이다. 남성성의 일이 곧 ‘직선적인 노동’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은 노동 그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해 노동이다. 이러한 노동은 특히 산업사회에서 자연속에서 생산되는 무수한 열매와 과실들(이자)만이 아닌 자연의 자원(원금)까지 고갈시키고 있는 행위가 되어왔다.

남성성의 노동은 자신의 노동력을 비싼 값에 팔기 위해 학벌과 용모, 능력과 자격증을 갖추어 상품성을 높인다. 유치원부터 시작하여 치열한 사교육열풍 학원과 과외경쟁은 결국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좋은 학벌을 얻으려는 것이며, 이는 자신의 상품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을 익히거나 자격증을 얻으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국내 유수의 대학도 이제는 성에 안차서 유학을 다녀와서 더 많은 정보력과 전문성, 화려한 경력을 포장하여 자신을 값비싸게 팔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공부, 학력은 가만히 따져보면 학문 자체에 대한 사명감, 인류와 세상, 남을 위한 학문이라기 보다는 결국 그 능력을 이용하거나 팔아서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여성성의 노동, ‘순환적인 노동’은 결국 생명을 다루고, 생명을 포태하고, 생명을 키우며 생명을 살리는 노동인 것이다. 남성의 노동은 엔트로피를 증대시키는(무질서도를 높이는) 방향의 일이라면 여성의 일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질서를 높이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지프스의 노동과 그림자 노동
시지프스는 죽은 뒤 신들을 기만한 죄로, 높은 산에 큰 돌맹이를 겨우겨우 올려놓으면 다시 굴러 떨어져 다음 날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을 영원히 반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형벌을 받았다. 이것을 시지프스의 노동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 여성들의 가사노동은 바로 시지프스의 노동이다. 이 노동은 자본주의 임금노동이 아닌 비자본주의적인 노동이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노동은 돈과 명예, 경력이 축적이 일어나는 직선적 노동이지만, 순환적인 노동은 그렇지 않다. 우리사회에 이러한 순환노동이 없다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의 사회를 임금노동만으로 움직일수 있을까? 모든 노동을 돈을 받고 하게 된다면 우리사회는 어떻게 될까? 아이를 낳아주는일, 길러주는 일, 밥해주는 일, 아침 도시락 챙겨주고, 웃어주고, 용기를 북돋고 격려해주며, 가족의 갈등있을 때 화해해주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공부를 가르치고, 이웃과 사귀고, 취미활동을 하며, 컴퓨터 동호회에 글을 쓰고 댓글을 달아주며 서로격려하고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 동네 마당을 쓸고 지역사회에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등의 모든 일에 돈을 지급한다고 생각해보자.

절에서 공양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남을 돕는 모든 일이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과연 우리사회는 과연 유지될수 있을까. 아니 반대로 이렇게 돈을 받지 않는 노동이 없어진다면, 우리사회는 어떻게 될까?

우리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돈을 받지 않는 무불(無拂)노동, 반복적인 노동, 순환적인 노동 때문이다. 이것을 이반일리치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라고 표현했다.

빙산은 전체부피중에 단 10%만이 바다위에 떠있고 나머지 90%는 바다밑에 있다. 이처럼 우리사회의 그림자노동은 바닷물에 밑에 있는 빙산처럼 우리사회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역할을 하며 우리사회를 만드는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살림살이는 죽임살이의 반대
주부가 집에서 하는 일을 영어로는 ‘house keeping', 일본어로는 가사(家事)라고 한다. 모두 집안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유독 이것을 ’살림살이‘라는 말을 쓴다. '살린다'는 말의 반대는 ’죽인다‘이다. 살린다의 명사형이 ’살림‘이고 죽인다의 명사형은 ’죽임‘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살림살이는 ‘죽이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란 뜻이다. 여성이 집안 일을 하는 것은 곧 ’살리는 일‘이 라는 지혜가 묻어 있는 아름다운 말이다. 

우리사회의 90%기반이되는 무불노동, 비임금노동, 그림자노동을 전통적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살림살이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동은 하면 할수록 사람끼리의 정이 만들어지고, 따뜻한 관계가 형성된다. 돌보고 사랑하고 도와주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은 돈은 안되지만 없어서는 안될 노동이다.

만일 임금노동만이 의미있다고 무불노동을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사회는 삭막해지고 사람관계는 살벌해 진다. 그러나 이렇게 돈이 안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 그러한 일이 의미있다고 격려되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인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곧 아름다운 미래사회인 것이다.

우리사회가 임금노동자로 채워진 사회 즉 완전고용이 이루어지는 것이 정말 좋은 사회일지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생태사회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무불노동의 사람들이 살수 있는 협력과 공동체적 돌봄시스템을 갖춘 사회를 만든 것이 생태사회에서는 중요하다.

무불노동을 노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사회적 노동이며 공동체노동이다. 이러한 노동은 당연히 비정규직이지만, 그들의 미래가 불안하지 않게 살수 있게 하는 나누는 사회가 되는 것, 이것이 생태적사회가 지향해야할 목표일 것이다.

모든 여성이 곧 여성성 갖고 있는 것 아니다
남성이 곧 남성성을 갖고 있는 존재라거나, 여성이 곧 여성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남성성의 사회는 직선적, 위계적, 목표지향적 사회를 표현한 것이며 이것은 오늘날 여성이든 남성 모두에게 크든 작든 갖고 있는 성격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성을 깊이 체화한 남성도 있고, 오히려 여성임에도 목표과 효율지향의 남성성의 가치로 똘똘 뭉친 사람도 있다. 단지 우리가 고려해야할 것은 바로 그림자노동, 순환의 노동이 곧 여성성의 가치와 맞닿아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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