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만달레이 마하간다웅 사원·마하무니 사원

마하간다웅 수도원에서 한 어린 스님이 공양을 받고 밝은 웃음을 띄고 있다. 마치 한국의 군대 면회처럼 출가한 아들의 뒷바라지 개념으로 공양올리는 가정이 많다.
미얀마 중부에 있는 만달레이는 미얀마 마지막 왕조인 따웅 왕조의 수도였으며 양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다.

특히 만달레이는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무역이 활발하다. 만달레이 시내의 수많은 차량들은 최근 본격화 되고 있는 미얀마의 경제발전을 느끼게 한다.

무역의 도시 만달레이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20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부처님 재세 당시에도 인도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이곳은 아난존자가 다녀갔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그래서 일까. 특히 만달레이에는 수행하는 스님들이 많다. 1000 명이 넘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마하간다웅 사원과 미얀마 3대 생불사찰인 마하무니 사원, 5차 경전 결집 장소인 쿠도도 파고다, 부처님과 아난존자가 다녀가셨다는 만달레이 힐 사원 등에는 여법한 생활을 지키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자하는 참배객들이 줄을 잇는다.

마음에는 불심을, 얼굴에는 미소를 담고 사는 스님들의 존재는 미얀마를 살아 있는 불교 성지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하간다웅 사원에서 점심공양을 하는 스님들.마하간다웅 사원의 긴 탁발행렬.
스님들의 끝없는 행렬, 마하간다웅 수도원

만달레이에 위치한 마하간다웅 수도원의 아침은 세계각지에서 온 수많은 참배객들로 붐빈다. 10시 30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1000명을 넘는 스님들이 공양을 위해 행렬을 이루며 이를 보기 위한 참배객들 또한 장사진을 이룬다.

맨발에 가사를 통견한 스님들이 법랍에 따라 줄서 엄숙하게 공양하는 모습은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는 수행자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미얀마에서는 오전 탁발을 나가 공양 받은 음식을 10시 30분에 사찰에서 일제히 먹는다. 오후 불식의 계율이 철저히 지켜지는 까닭에 공양 시간 또한 칼같이 지켜진다.

공양은 미얀마 전역에서 사람들이 사원을 찾아 공양을 올린다. 신청자가 많기 때문에 순번을 받아 기다릴 정도다.

미얀마 사람들의 승보공양 정신은 출가란 종교의식이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현된다.

미얀마 남자들은 한국 남자들이 군대에 가는 것과 비슷하게 길든 짧든 출가를 하는데 출가란 사실상의 성인식 역할을 하고 있다. 군대에 간 아들 면회 가듯 출가한 스님들에게 출가 기간 동안 한번 이상씩 공양 올리는 것은 당연히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승보공양 정신이 드러난 다리가 마하간다웅 수도원 인근의 우빼인 다리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인 우빼인 다리는 1849~1851년에 걸쳐 완성됐는데 마하간다웅 사원과 호수 건너편 만달레이 아마라푸라 사원을 오가는 탁발승을 위해 만들어졌다.

우빼인 다리는 마을의 우빼인이라는 노인이 아마라푸라 사원의 스님들이 배를 기다리다 공양시간을 놓쳐 식사를 하지 못함을 목도하고 매년 굵은 나무를 옮겨지었다고 전해져 ‘탁발교’로 불린다. 다리 기둥이 1086개에 달하는데 일일이 그 나무를 깎아 옮겼을 노인과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시공을 넘어 전해진다. 수십 년이 지나도, 태풍이 와도 튼튼하게 미얀마 사람들의 교통로 역할을 하는 우빼인 다리에서 스님들을 공경하는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밍군대탑. 남은부분이 기단부로 8층 건물 높이다.
지나 친 불사가 왕조 멸망 이끌어

반면에 만달레이에서 10km 남짓 떨어진 곳에 자리한 밍군 대탑은 민중의 호응을 받지 못한 지나친 불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알려준다.민돈 대탑은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빠웅 왕조의 바돈 왕(1781-1790)이 1790년에서 1797년까지 만들다 미완성으로 끝난 불운의 역사 그 자체이다.

바돈 왕은 자신의 강력한 왕권 강화와 내부 결속을 목적으로 세계에서 제일 큰 탑을 만드는 불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혹독한 노동에 지친 일꾼 1000여 명이 라카인 아쌈(Assam)지역으로 도망친다.

당시 라카인 아쌈 지역은 미얀마가 인도로부터 빼앗은 영토로 국경문제가 일고 있던 분쟁지역이었다. 당시 서구열강인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영국은 미얀마를 침공할 명분을 쌓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바돈 왕은 대탑 건설 중에 도망친 이들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렸고 미얀마 군대는 라카인 아쌈 지역으로 들어가고 이에 영국이 국경 침범을 이유로 미얀마 전쟁을 선포한다.그 결과 꽁빠웅 왕조는 영국군에 의해 망하게 되고 밍군 대탑 역시 건설이 중단된다.

만달레이 힐 사원에서 내려다본 만달레이 시.
만달레이 힐에는 부처님 설법 흔적 남아 있어

만달레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성지는 바로 만달레이 힐 사원이다. 분지인 만달레이를 둘러싼 산맥 중 가장 높은 236m에 위치한 이 사원에는 부처님이 직접 설법을 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970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만달레이 시 전체를 볼 수 있는데 그 사방으로 부처님 상과 아난존자 상이 만들어져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2500년 전 부처님이 친히 방문했다는 만달레이 힐 사원에는 부처님이 당시 2400년 후 이곳에 대도시가 만들어 질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민돈 왕은 그 설화에 따라 이곳으로 천도를 해 왕조를 일으켰다.

만달레이 힐 인근에는 민돈 왕이 25년에 걸쳐 1857년에 완공한 쿠도도 파고다가 있다. 729개의 파고다 안에는 각각 석장경이 보관돼 있다. 석장경은 당시 부처님 말씀을 적어놓은 경전이다. 석장경은 2400명의 승려들이 729개의 대리석에 일일이 조각한 것으로 불경이 파고다 주변에 둘러쳐 있다. 쿠도도 파고다의 역사적 배경을 적어놓은 거대한 파고다와 729개의 작은 파고다 등 총 730개의 파고다로 이뤄져 있다.

만달레이 힐 사원에서 관욕의식을 하는 미얀마 불자.
얇은 금박 하나 하나 붙여 불상 조성만달레이의 마하무니 사원은 쉐다곤 파고다, 짜익티요 파고다와 함께 미얀마 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3대 파고다 중 하나로 ‘파야지(Payagyi, 큰 사원)’로도 불린다.1784년 4m 높이의 불상을 모시기 위해 보도파야(Bodawpaya) 왕이 세웠는데 마하무니 불상은 현지인들에게 영험하기로 소문나 불상에 금박을 입히며 소원을 빌기 위한 신자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마하무니 사원의 불상은 수많은 금박으로 인해 표면이 두꺼비 피부같이 울퉁불퉁하다. 부착한 금박의 두께만 15cm로 무게가 12톤이 넘는다. 이 불상 근처로는 비구니 스님을 포함해 여성들은 접근할 수 없다. 승려의 가사와 여자의 옷이 스치면 불심과 영험함이 없어진다는 말 때문이다.

남방불교에서 불교가 지금까지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철저한 근본을 지키는 데서 기인한다. 신도들이 붙이는 금박으로 점점 더 비대해 지고 있는 불상을 보며 원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또 미래 미얀마의 불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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