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바간-쉐지곤·마누하 사원

바간 왕조 초조 아노라타왕 불교장려책 펼쳐
마을 공동자산처럼 사원 가꾸는 것 일상화

쉐산도 파고다에서 내려다 본 불탑들. 바간 지역에는 11~13세기 민초들의 자발적인 동참으로 지어진 2500여개의 불탑이 있다.  신라의 불교문화와 같이 당시 불교는 모든 미얀마 대중을 하나로 모았다.

2500여 개 불탑과 사원이 도시 전역에 흩어져 있어 ‘불탑의 도시’로도 불리는 미안먀 바간. 미얀마 중부지역에 위치한 바간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와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꼽히는 곳이다.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 조성된 곳으로 한국으로 따지면 천년고도인 경주와 같은 곳이다. 세계 최대 불교문화유적군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바간으로 향하는 공항은 분주했다. 미얀마에서는 아침 6시 국내선 항공이 일제히 개시된다. 미얀마에서 도시 간 이동은 주로 비행기를 이용한다. 도로 사정이 열악해 양곤에서 500km 떨어진 바간까지는 비행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비행기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육로로 이동하면 하루가 넘게 걸린다고 한다. 아침 6시 동시에 뜨는 비행기 중 한 대에 몸을 실었다.

짧은 시간을 거쳐 도착한 바간의 모습은 말 그대로 ‘불탑의 바다’였다. 눈으로 보이는데 에만 수백 개의 불탑들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 불탑들이 모두 강제 노역이 아닌 자발적인 원력에 의해 만들어졌다니 진정한 의미의 성지라 할 만 하다.

아난존자 상을 모신 아난다 사원 전경
불교사원의 백미 ‘아난다 사원’

먼저 바간 지역의 불탑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쉐산도 파고다’에 올랐다. 쉐산도 파고다는 바간 통일 왕조 초대 왕인 아노라타 왕에 의해 조성된 최초의 파고다로 바간 전체를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가장 높은 곳에 오르자 수많은 불탑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 멀리 보이는 이라와디 강의 지평선과 산맥, 그 앞의 평야의 불탑들이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했다.

쉐산도 파고다를 내려와 조금 이동하니 바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는 ‘아난다 사원’이 불자들을 맞이했다.

동남아시아 불교 사원의 백미로 평가받는 아난다 사원은 키얀지타 왕의 명으로 1105년경에 지어졌다. 다문제일 아난존자 이름을 딴 파고다로 여성다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특히 경내에 모셔진 입불 부처님은 건축물과 수직과 수평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파고다 내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불상과 석조물이 가득했다.

바간에서 가장 큰 쉐지곤 파고다
바간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원은 쉐지곤 파고다다. ‘황금의 모래언덕’이라는 뜻의 쉐지곤 파고다는 웅장한 규모에다 전체적으로 금으로 도금돼 황금빛으로 빛난다. 바간왕조 초조인 아노라타왕이 1057년에 기도와 명상의 중심지로써 건설했는데 부처님의 견골 사리가 봉안돼 있다. 사리를 등에 싣고 돌아다닌 코끼리가 멈춰선 자리에 지어졌다고 한다. 쉐지곤 파고다는 모든 미얀마 불탑들의 원형으로 꼽힌다. 종 모양으로 곡선이 부드러운 탑은 우아하기 그지없다. 탑의 꼭대기를 작은 우물에 비춰보면서 기도를 한다는 곳도 인상적이다.

마누하왕이 지은 마누하 사원의 와불상
미얀마 민심 모으기 위해 불교 장려

바간의 불탑들을 둘러보면 아노라타 왕의 이름을 가장 많이 듣게 된다. 통일 바간왕조 초조인 아노라타 왕이 미얀마를 통일할 당시 미얀마에는 기존의 힌두교와 대승불교, 밀교와 정령신앙 등이 혼재하고 있었다.
아노라타 왕은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한 것을 알고 상좌부 불교를 도입하고자 했다.

그래서 남쪽 몬족의 왕국인 타톤 왕 마누하 왕에게 불교를 전파해 줄 것과 석가모니의 사리와 경전 등을 나누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마누하 왕은 아노라타 왕의 제의를 묵살하고 이에 아노라타 왕은 타톤국을 점령하고 마누하 왕을 포로로 잡는다. 또 불교 경전, 승려, 지식인, 화가, 건축가 등의 전문 인력들을 바간으로 데려와 현재 바간 지역의 불탑과 사원들을 건설한다. 현재 미얀마 인들이 쓰는 언어도 당시 타톤국의 승려가 전해준 말이다. 수많은 사원 중 아노라타 왕과 마누하 왕의 사연이 얽힌 인연이 전해지는 곳이 바로 마누하 사원이다.

마누하 사원은 앞쪽에 14미터에 달하는 세 부처님이 꽉 차게 들어서 있고 건물 뒷면에는 와불이 조성돼 있다. 공통점은 조성된 불상이 너무 크고 벽에 가까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마치 감옥에 가둬놓은 것 같다.

포로가 돼 남파야 사원에 갇힌 마누하 왕은 아노라타 왕의 설득으로 이 사원을 지었다. 다소 답답해 보이는 이 구조는 부처님의 법이 온 우주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표현함과 동시에 마누하 왕 자신이 답답했던 감옥 생활을 떠올리며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노라타 왕의 의도는 적중했다. 1287년에 몽골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기 전까지 바간왕조는 통일왕조로 번성한다.

이라와디 강 중류에서 등대역할도 하고 있는 부파야 탑
불탑은 미얀마 사람들의 삶

불탑들이 오래된 유적으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누하 사원 인근에는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탑인 부파야가 있다. 부파야는 기원 후 300년 경 세워진 오래된 탑으로 반을 뚝 잘라놓은 수세미 모양이다. 부파야 탑 아래로는 이라와디 강이 흐른다. 이 주위에는 마을이 형성돼 있는데 부파야 탑은 마을 사람들의 회관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날이 어두워지면 부파야 탑에 불빛을 비춰 등대로도 사용한다.

이처럼 미얀마에서 불탑과 사원의 의미는 기도처를 넘어선 삶의 공간이다. 마을과 인접한 공원처럼 각 사원들은 미얀마 사람들의 삶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사원에서 누워서 쉬기도 하고 놀다가 배가고프면 준비해온 밥을 아무 곳에서나 펼쳐놓고 먹는다. 그러다가 또 기도를 한다. 젊은 남녀들이 데이트하는 장소로도 불탑이나 사원이 이용된다.

삶과 밀접히 얽혀있기 때문에 미얀마 사람들이 불사에 동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돈이 없는 사람은 와서 삽질이나 벽돌이라도 나른다. 바간의 불탑들은 지금도 계속 지어지고 있는데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불탑을 짓는데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도 뜨거운 햇빛에 달궈진 돌 위를 맨발로 걸으며 참배하는 미얀마 사람들. 한장 한장 벽돌을 전하고 전해 지금의 2500여 불탑을 쌓았을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을 다시금 느끼는 곳이었다.
바간=노덕현 기자 noduc@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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