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색(Gray)에서 녹색(Green)으로

과개발이 환경파괴 주범
부동산 건설 사업 수정 필요
저성장 사회화 세계적 추세
협동적 경제 건설이 대안

▲ 낙동강 낙단보 공사 모습. 유속 변화로 낙동강 보들의 균열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제어하려고 한 오만함의 결과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2조원의 혈세를 매년 강바닥에 쏟아부어야 한다.
늘어가는 고속도로, 아파트 밀림숲, 4대강개발등 토건사업들
서울에서 속초까지는 10년전만 해도 고속버스로 4~5시간으로 다니던 것이, 이제는 2시간10분에 주파한다. 도처에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그 산과 산을 교량으로 이어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작은 국토에서도 촘촘히 그물망처럼 도로가 만들어져 이제 전국토를 2~3시간의 생활권으로 만들 작정인 듯하다. 그러나 88고속도로를 비롯하여 많은 고속도로는 몇시간을 달려도 차량 한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교통량이 없는데도 도로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뉴 타운을 비롯하여 2011년 만해도 서울시내의 재개발 아파트 지역만 300여곳이 넘는 정도였다. 과거에는 5층만 높아도 10여층이던 것이 이제는 2~30층의 초고층 아파트로 숲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토건개발사업의 압권은 22조 사업비가 들어간 4대강사업이다. 우리나라 강 전체의 모래를 파고 곳곳에 댐수준의 보로 물길을 막고, 수변은 시멘트로 공원이 조성되어버렸다. 불과 3년만이 이룬 돌관공사이다. 이제 대통령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국회의원선거, 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선거철만 되면 모든 후보들은 개발공약을 내세운다. 온통 부수고, 짓고, 개발하겠다는 회색빛 콘크리트 세계를 위한 약속이다.

우리나라가 압축성장, 고도성장기의 토건산업을 중심으로 발달했다고 하지만 이제 파괴되는 환경과 오염문제를 앞두고는 도저히 묵과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국토는 파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회색 사회에서 녹색 사회로 전환을 강제받고 있는 시기이다.

우리나라 GDP에 18%가 건설토건사업
최근 인천시는 317조원을 들여 에잇시티 (Eight City)라는 단군이래 최대 규모의 도시건설개발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홍보동영상과 마스터플랜을 보면 SF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환상적 인공해양도시로 카지노와 자동차 레이스 장 등을 조성하여, 오일머니나 중국 등의 돈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비슷한 도시개발사업이 초기에는 휘황찬란하게 시작하다 중단된 것만도, 청라국제신도시, 송도신도시, 영종신도시, 미단시티 등이 있지만 여전히 대규모 토건개발론자들의 계획은 멈추질 않고 있다.

실제 2011년 4월 국토연구원의 발표에서 전국의 지역개발사업은 총사업비 580조원에 이르고 그 반은 민간자본으로 충당하도록 되어 있다. 2011년 우리나라 국가예산이 310조원과 비교하면 약 2배 가까운 금액이다. 이렇게 수요에 비해 과잉공급되는 개발을 ‘과(過)개발’이라고 단국대 조명래교수는 표현하고 있다. 한편 수요는 팽창하는데 계획적인 통제없이 마구잡이 개발을 ‘난(亂)개발’이고 표현된 것과 대비된다. 이 토건개발사업은 우리나라 GDP의 전체중 18%를 차지한다. 비슷한 OECD국가가 9.1%인 것에 비하면 두배나 되는 셈이다. 한번도 국토전체는 공사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화된 토건개발주의, 토건마피아
우리나라는 86년 당시 10.1%로 성장하던 것이 매년 줄어들어 2009년들어 3.0%가 되었다. 물가상승률로 본다면 3.0%는 제로성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저성장시대임에도 과거 고도성장시대의 토건개발주의는 한국사회의 곳곳에서 기업경영, 투자, 생산과 소비, 발전, 자연관리등 모든 분야에 깊이 박혀있다. 그러다 급기야 건설산업에서 경험만을 갖고 있는 이명박정부들어서 토건은 녹색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 시작했다.

토건기업과 그 기업의 정치자금으로 당선된 정치인, 그들이 주는 광고로 유지되는 언론, 그들이 주는 연구용역사업을 받고 있는 학자와 단체들 모두가 토건식 개발과 건설만이 살길이라는 논리를 개발하고, 광고홍보를 만들어내는 토건카르텔, 토건마피아가 된 것이다. 이들은 쓸만한 땅이란 땅은 모두 시멘트로 덥고 메우면서 자연과 국토는 황폐화시켜왔고 파괴시켜온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4대강정비, 녹색뉴딜 등을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하여 모든 토건부서들이 국토부로 통합해왔다. 또한 이들 토건부서들은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파워를 확대하기 위해 실제는 필요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끊임없이 공급을 창출하고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개발사업을 해왔다. 더욱이 이러한 페러다임속에, 과개발과 난개발을 막기 위한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정책 마져도, 결국 개발논리에 복무하는 면죄부 역할을 해왔다. 실제 그 영향평가로 개발이 중단된 사례는 거의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제 전세계는 과거의 지속불(不)가능한 발전방식을 패절하고 지속가능한 발전, 영속가능한 발전으로의 전환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과연 나아질까? 아마도 새로운 정권에게 정치, 행정, 기업, 주민들의 개발욕구로 짜여진 토건의 열망을 막아내기 위한 분명한 미래발전의 철학이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변화여야 하는가.

▲ 남한강 여주보 인근 당산제방 공사 모습. 이 공사로 인근 지역주민은 퇴거 조치 됐고, 당산제방과 함께 조화롭게 흐르던 작은 여울들과 소, 습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국토부의 축소, 건설업의 조정
정부의 부처는 똑같지 않다. 강한 부처가 있고 약한 부처가 있다. 국토부나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등은 막대한 예산과 풍부한 인력과 실무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여성가족부나 환경부 같은 부서는 예산규모나 인력규모에 턱없이 적어 부처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밀리고 있다.

그래서 몇몇 전문가들은 지금 탈토건의 지속가능한 녹색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 국토부의 해체가 가장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계획과 집행을 분리시켜, 계획기능은 지속가능발전계획으로 환경부로 이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집행기능 중에 토지개발과 주택건설 인허가 등은 지방정부로 이관되어야 하며, 주거복지기능은 보건복지부, 교통관련 업무는 교통청등으로 이관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토건개발 전체를 지속가능성이라는 입장으로 재구조화하기 위해 환경부의 기능을 ‘지속가능발전부’로 통폐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에 대한 조정도 필요하다. 2~3년전만도 밀물처럼 진행되어온 재개발 재건축 붐은 지금은 분양도 어려울 정도로 파국을 맞고 있다. 더욱이 주택업자들에게 이익을 안겨줄 대형평수 중심의 개발은 치명적인 사업적 실패를 노정하고 있다. 그동안 토건개발의 수요가 급감하고 건설사업의 위축이 급속도로 진행되는데도, 건설산업은 스스로 존립을 위해 수요를 창출하고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2010년 6월까지 엄청나게 늘어난 전국의 부동산중개소는 24시간 편의점수의 4배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들 업계에서 말하는 부동산시장의 활성화는 바로 이들 중개업소 종사자까지 먹고사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저성장의 사회를 살아야 한다. 과거에 공급자중심의 부동산건설 산업의 축소를 위해 대대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건설산업의 고질적 병폐인 고용관계와 하도급관계등의 변화시키고, 건설기술과 생산방식을 선진화하는 방식으로 ‘나쁜 토건’에서 ‘좋은 토건’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개발이 되어야
그동안 우리들은 땅이나 주택을, 사람이 머물고 기르고 사는 곳이라는 개념보다는 투자와 투기, 돈벌이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왔다.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아니 더 근본적인 것은 과거 수만년간 선조들이 만들어온 땅, 그리고 미래세대가 살아야할 땅을 ‘내 것’ 이라는 소유관계로 구속시켜 현세대들이 마음껏 이용하고 파괴한 것이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는 반자연적 페러다임이 문제의 시발이다. 또한 선거때마다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는 개발요구의 안목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나 기업은 자기가 개발한 생산물의 판매를 통해 재부를 축적했다기 보다 부동산경기에 힘입어 땅부자가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부동산 토건개발산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착실한 노력을 허망하게 만들고 일확천금과 투기적 악습을 무의식 속에 각인시키게 만들었다. 이러한 인식이 재개발을 무조건 찬성하고 집값 오르길 바라는 개발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힌 의식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가난한 사람은 재개발과정에서 소외돼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지역에 수십년간 붙박이로 살면서 지역을 사랑하고 지키는 애향심보다는, 투기를 위해 아파트와 아파트를 전전하는 떠돌이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들에겐 이웃을 사귀어야 할 필요도 없고, 살고 있는 지역의 환경을 위해 지켜야 할 이유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며 살아온 것이다.

이제 저성장사회이다.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 경향이다. 과거처럼 두 자리수의 성장을 도모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잔치는 끝난 것이다. 과거 투기적 욕망속에 살아왔던 시절의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사람들끼리, 주민들끼리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관계를 지역속에 구축하여 서로 협력하고 돕는 호혜적인 경제, 협동적 경제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돈이 없으면 믿을 건 사람뿐이다. 이웃들 뿐인 것이다. 지금과 같은 강한 중앙권력의 사회가 아니라 분권화된 사회에서, 생산과 소비, 사람이 한눈에 보이는 관계 인간적인 거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지금 토건마피아들은 남북이 통일된 뒤에 미개척의 북한을 엄청난 새로운 시장, 블루오션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걱정될 뿐이다. 철저히 지속가능한 녹색국가의 구상이 아니면 결국 북한의 산하들도 이들에 의해 관광개발과 난개발로 난도질되어 남한의 식민지가 되고, 북한주민들은 2등국민으로 전락하게 될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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