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에 대한 소견

세상에서 가장 일찍 피는 꽃

청매선사의 십무익송 보며

수행자의 자세 돌아보게 돼

 

 

▲ 매화 서옥도

북방의 추운 세상에 살던 매화는 남방으로 내려와도 여전히 그 가풍을 잊지 않고 추운 겨울 눈이 수북히 쌓여 만물이 기가 죽어 고요할 때도 얼음을 뚫고 꽃봉오리를 피워내 온 세상에 단 한 가지의 꽃만으로도 봄이 왔음을 알리면서 새로운 세상의 첫 날을 만들어낸다.

화조화에서는 동백과 매화를 함께 그려 놓은 그림들이 상당히 많다. 대개 그런 그림들이 뜻하는 바는 사랑과 만남이다. 부부나 연인, 또는 친구를 상징하는 두 마리 이상의 참새를 그려 놓고, 동백꽃이 만발한 가지와 백매(白梅)와 홍매(紅梅)가 만발한 가지를 겹쳐서 그린다.

그 의미를 살펴보면 겨울이 오기 전에 가장 늦게 끝까지 피어있는 꽃을 동백꽃이라 하고, 세상에서 가장 일찍 피는 꽃을 매화라고 보는 우리의 생각에서 그림을 그리는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다시 해석해 보면 우리가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부부로서 만나되 기왕 이 행복을 함께 누리고 살지언정 가능한 일찍 만나서 죽을 때까지 오래 오래 해로하면서 살아보자는 의미가 그 속에 들어있다.

매화는 물의 기운을 대표하는 식물이다. 물은 번뇌로 불타오르는 이 사바세계의 화재를 끌 수 있는 최상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물은 또한 생명의 근원이어서 가장 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바다도 물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고, 사람의 몸도 70%가 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소갈증이 있어서 물이 기운이 많이 필요한 사람의 방에 매화그림을 걸어 놓으면 그 병이 많이 좋아지는 효과도 있는 것 같고, 매화그림의 기운으로 시원한 방의 분위기를 만들면 화병이 있는 보살님들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매화는 유가의 선배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다. 송나라의 임포(林逋, 967~1028)라는 선비는 벼슬과 가족을 모두 버리고 절강성 항주 서호의 산 속에서 띠풀집을 짓고 매화를 심어 키우며, 20여년을 은거하면서 마을에 내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혼인도 하지 않고 학과 사슴을 기르며, 술을 마시고 싶으면 사슴의 목에 술병을 걸어 사러 보내고, 손님이 오면 학이 하늘로 날아 올라 기별하였다 한다.

우리 불가의 큰스님들도 역시 매화를 좋아했다. 대보살이신 육조 혜능선사를 알아 본 오조 홍인 선사의 법호는 비록 산이름을 따랐지만 황매(黃梅)이고, 서산대사의 제자로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와 더불어 승병장으로 활동하셨고 십무익송(十無益誦)으로 유명한 인오(1548∼1623)스님의 법호는 청매(靑梅)이다.

안암동 근처에 있는 어느 포교당에 가니 용화선원 송담스님이 기묘년(1999년)에 쓰신 단정한 글씨의 청매선사 십무익송이 있어 이를 읽어보면서 수행이 부족하고 중물이 덜 들은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경을 읽으며 되돌려 마음을 비추어 보고, 성품이 공한 것을 알고 좌선에 임하며, 고행을 하더라도 바른 법을 믿고, 불법을 배우더라도 아만을 꺾고, 덕에 흠결이 있는 사람으로 함부로 남의 스승이 되려하지 않고, 덕을 갖추지 못하면서 번지르하게 갖춰입는 습을 버리고, 더듬거리는 말이라도 신실하게 대화하고, 인과를 두렵게 생각하여 도를 구하는 마음을 내며, 비록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게 있어도 아만을 부리지 않고, 대중처소에 살면서 말썽을 부리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하면서 해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통도사에 가면 자장매(慈臧梅)라고 불리는 350년이 넘는 홍매(紅梅)가 있다. 자장매에 꽃을 피워야 우리나라에 봄이 온 것을 인증한다는데, 내년에는 꼭 보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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