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번뇌-④ 근본번뇌 탐ㆍ진ㆍ치

불교에서는 인간의 번뇌를 가능한 모든 측면에서 거론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느끼고 괴로워하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 마음의 상태를 하나씩 되새겨 보는 것만으로도 번뇌의 절반은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번뇌의 원인을 통찰하고 체득할 수 있다면 번뇌의 완전한 소멸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번뇌의 완전한 소멸이야말로 불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 열반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열반을 증득해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불교에서는 번뇌에 관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나열하고 번뇌에 빠져있는 그 마음의 상태에 대해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그 첫 번째가 근본번뇌이다. 근본번뇌는 말 그대로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된다는 뜻이다. 다른 번뇌들은 이 근본번뇌로부터 파생되어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번뇌[隨煩惱]이다. 동일한 의미로 본번뇌(本煩惱)라고도 하고 마음을 어지럽고 산란하게 만들어 깨달음을 방해한다는 의미로 혹(惑)자를 붙여 근본혹(根本惑) 또는 본혹(本惑)이라고도 한다.

근본번뇌에는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ㆍ악견(惡見)의 여섯 가지가 있다. 이 중에 먼저 탐ㆍ진ㆍ치 삼독(三毒)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탐은 탐욕을 말한다. 탐욕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이다. 그 대상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것에 대해 사랑하고 집착하므로 애(愛)라고도 한다. 이 탐욕에는 욕망의 세계인 욕계의 탐욕[欲貪, 欲愛]과 감관의 욕망은 없어졌지만 아직 물질적인 것은 남아 있는 세계인 색계의 탐욕[色貪], 그리고 물질적인 것조차 없어진 순수 정신의 세계인 무색계의 탐욕[無色貪]이 있다. 탐욕은 이와 같이 무색계에도 남아 있을 정도로 끈질기고 끊기 어려운 번뇌중 하나이다.

진은 진에(瞋恚), 에(恚), 노(怒)라고도 하며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반감, 혐오, 분노 등 을 말한다. 진에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분(忿), 한(恨), 해(害) 등이 있는데 이 중에 우선 분은 매우 격하게 일어나는 분노의 마음이다. 한은 진에가 마음에 결합되어 영원한 원망의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해는 진이 행동으로 나타나 다른 사람을 가해하려고 하는 마음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이 좋아하고 간절히 원하던 일을 저지당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우선 상대방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고 당연히 미워하는 것에 대한 분노[忿]가 생길 것이다. 그 분노가 해소되지 않고 계속 마음에 남아 있을 경우 반복되는 분노에 의해 원망의 마음[恨]이 생길 것이고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상대방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실제적인 행동을 하려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진에란 자신의 욕망과 집착이 좌절되었을 때 일어나는 증오심이라고 할 수 있다.

치는 이러한 탐욕과 분노로 인해 사제와 연기의 도리에 대한 통찰을 방해 받아 일어나는 어리석음[愚癡]을 말한다. 이 어리석음은 십이연기의 무명과 마찬가지 의미를 갖는다. 다만 탐, 진, 치 삼독의 치는 탐욕과 분노를 그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무명과 구분되는 점이 있다. 이를 테면 무명에는 상응무명(相應無明)과 불공무명(不共無明)이 있다. 이 중에 상응무명은 탐욕, 분노, 교만 등의 다른 번뇌와 상응해서 일어나고 불공무명은 사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원인으로서 독립적으로 다른 번뇌와 관계없이 일어난다. 치는 탐욕과 분노로 인해 사리분별을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여 사제나 연기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 상응무명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으로 사제나 연기의 도리를 바르게 이해하면 탐욕과 분노의 번뇌는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번뇌는 모두 근원적으로 ‘나’라고 하는 것에 대한 집착, 내가 있다고 하는 잘못된 견해[邪見]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상(我相)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통찰한다면 그로 인해 일어나는 번뇌도 자연히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무아(無我)를 설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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