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호 11월 21일]

조주 스님이 문하대중에게 가르쳐 말했다.
“‘조금이라도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하는 분별심이 있으면 마음을 잃고 만다’라고 하는데 여기에 대하여 할 말이 있는가?”
후에 이 일을 어떤 학승이 낙포(洛浦)에게 이야기했는데 낙포는 이[齒]를 따다닥 부딪쳤다. 그것을 또 운거(雲居)에게 가서 이야기했는데, 운거가 말하길
“낙포 스님이 하필 그렇게까지 할 필요야…”
학승이 이것을 조주 스님에게 이야기하자
조주 스님이 말했다.
“남쪽에 크게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다.”
학승 말했다.
“화상께서 거론해 주십시오.”
주 스님이 은밀히 거론하자, 학승은 곧 옆에 있는 승려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스님은 공양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이 필요하겠습니까?”
조주 스님은 이야기를 그쳤다.

師示衆云 纔有是非紛然失心 還有答話分也無 後有僧擧似洛浦 洛浦扣齒 又擧似雲居 雲居云 何必 僧擧似師 師云 南方大有人喪身失命 僧云 請和尙擧 師纔擧 僧便指傍僧云 者箇師僧喫卻飯了 作什麽語話 師休去

거론은 “‘조금이라도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하는 분별심이 있으면 마음을 잃고 만다’라고 하는데 여기에 대하여 할 말이 있는가?” 라는 말을 대중에게 거듭 물어보는 것을 말한다. 낙포 스님이 이를 부딪쳤던 것은 그에 토를 달기 두렵다는 뜻이고, 운거 스님은 그런 낙포 스님을 부정한 것이다. 조주 스님은 또 두 사람을 다 죽이고도 한 학승의 대답에는 더 이상 말을 못했다. 선사라 해도 말을 그만 둘 때가 있다. 더 이상 나아가다가는 일을 망치고 말기 때문이다.

조주 스님이 금강경(金剛經)을 보고 있는데 마침 어떤 스님이 그것을 보고 물었다.
“‘모든 부처님 및 부처님의 깨달음은 모두 이 경(經)에서부터 나온다’ 라고 합니다만 이 경이란 무엇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여시아문 일시 불재사위국…”
학승이 말했다.
“그것이 아니옵니다.”
조주 스님이 말했다.
“나는 나 스스로 경전을 고치거나 하는 따위의 일은 결코 할 수 없어.”

師因看金剛經次 僧便問 一切諸佛及諸佛阿耨菩提 皆從此經出 如何是此經 師云 金剛般若波羅蜜經 如是我聞一時佛在舍衛國 僧云不是 師云 我自理經也不得

선사가 금강경을 읽으면 꽃이 피어나지만 깨닫지 못한 자가 금강경을 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조주 스님이 신참 학인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학승이 말했다. “남쪽에서 왔습니다.”
조주 스님이 말했다. “조주의 관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학승이 말했다. “관문을 건너지 않는 자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조주 스님은 꾸짖었다. “이 소금 암매상 놈아!”
또 조주 스님은 말했다. “형제들이여, 조주의 관문은 통과하기가 힘들다.”
학승이 물었다. “조주의 관문이란 어떤 것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돌다리가 그것이다.”

師問新到 從什麽處來 云南方來 師云 還知有趙州關麽 云須知有不涉關者 師叱云 者販私鹽漢 又云 兄弟趙州關也難過 云如何是趙州關 師云 石橋是

조사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남에게 선(禪)을 말하는 것은 소금을 도둑질해서 몰래 파는 자와 같다. 석가모니불이나 경허 스님은 워낙 큰 인물이다. 이런 거물이 아니라면 스스로 머리를 조아리고 조실의 관문을 뚫어야 한다. 그러면 “이 소금 암매상 놈아!” 하고 소리쳤을 때 ‘이 도둑놈아’ 하고 맞받아 칠 것이고, “돌다리”라고 말했을 때 “닳아버렸다” 고 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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