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눈을 잃고 마음의 눈을 얻다
육신의 눈을 잃고 마음의 눈을 얻다
  • 박재완 기자
  • 승인 2012.11.1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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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천안제일(天眼第一) 아나율 <상>최상의 발심

육안을 잃고 천안을 얻은 제자가 있다. 그는 평생 잠들지 않았다. 부처님과의 약속이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눈을 감지 않았던 그는 끝내 시력을 잃었지만 마음의 눈을 가지게 된다. 부처님은 그를 ‘천안제일’이라 불렀다. 진정한 발심과 정진이란 어떤 것인지,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준 아나율 존자의 이야기다.

보시 공덕으로 왕족, 수행자 몸 받아
설법듣다 졸아 부처님 엄한 경책
‘잠자지 않겠다’ 서원
실명 불사하고 정진…천안 열려

 부처님의 교단은 인도 제일의 강대국인 마가다국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국왕 빔비사라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많은 바라문의 상수들과 그 밖의 많은 부호들까지 부처님께 귀의하거나 출가하기에 이른다. 부처님의 성도와 교단의 성장은 부처님의 고향 가비라국까지 전해지기 시작한다. 가비라국의 국왕이며 부처님의 아버지인 정반왕은 부처님의 소식을 듣고 기원정사로 사자를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부처님이 고향을 찾는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왕실과 대중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경탄하며, 불법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

출가
부처님이 고향에 머문 지도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처님의 아버지 정반왕이 세상을 떠나자 고향에서의 교화를 마친 부처님은 다시 고향을 떠난다.
“절대로 안 된다.” / “데바닷다와 아난다, 난다도 모두 출가한다고 합니다. 저도 출가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어머니.”
아나율이 출가를 결심하고 어머니께 허락을 구하고 있다. 아나율은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다. 부처님이 고향에 머무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은 왕실과 대중에게 널리 퍼졌고, 그로 인해 왕실과 대중의 출가가 이어지고 있었다. “출가라니!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아나율의 어머니는 단호했다. 하지만 아나율의 출가 의지도 단호했다. “좋다. 만약 밧디야왕이 출가한다면 너의 출가를 허락하겠다.” 고민하던 아나율의 어머니는 조건부 허락을 한다. 밧디야왕은 정반왕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왕자였다. 아나율의 어머니는 왕이 된 그가 절대로 출가할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어머니.” 아나율은 바로 밧디야를 찾아간다. “나는 출가할 생각이 없네.” 그랬다.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그가 출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출가 의지가 확고했던 아나율은 밧디야를 끈질기게 설득한다. 이미 아나율은 부처님의 세계를 보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했던 것이다. 왜 출가해야 하는지, 그는 확실했고 그의 확실함이 마침내 밧디야를 설득해낸다. “알았네. 나도 출가하겠네.” 아나율과 밧디야는 다른 왕자들과 함께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향했다.

무빈(無貧)의 인연 공덕
“아나율은 절대로 가난해지지 않는 인연이다.” 〈불본행집경〉과 〈현우경〉 등에서 전하는 아나율의 과거생 이야기다. 그가 아무 부족함 없는 왕자로 태어난 것은 과거생의 공덕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다. 경전에 따르면 과거생의 그는 나무를 팔아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는 나무꾼이었다. 어느 해인가 극심한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었다. 불사불(弗沙佛)의 말법시대였다. 아나율은 좁쌀 한 그릇으로 하루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걸식에 나선 벽지불(?支佛)이 먹을 것을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매다 아나율의 집 앞에 쓰러졌다. “먹을 것 좀 주시오.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소.” 벽지불을 본 아나율은 자신도 굶주렸지만 자신보다 더 굶주린 벽지불을 위해 한 그릇 밖에 없는 좁쌀밥을 건넨다. 허기진 배를 잡고 숲으로 나간 아나율은 숲에서 발견한 시신 한 구를 집에 들이게 되는데, 집에 돌아오자 그 시신은 금불상으로 변했고, 그 금불상은 손가락을 떼어내건 발가락을 떼어내건 끊임없이 금이 되살아났다. 가난한 나무꾼 아나율은 금방 부자가 됐다. 그의 집에는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절반은 그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고, 절반은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였다. 이리하여 그는 91겁 동안 이러한 과보가 계속되어 어떤 세상에서 목숨을 받아도 빈곤을 모르는 무빈의 인연을 타고 나게 된다. 보잘 것 없는 좁쌀밥 한 그릇의 공양 공덕이 이토록 지중한 인연 공덕이 되었고,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난 그는 이제 받기 어려운 수행자의 몸을 받아 만나기 어려운 법 중의 법, 부처님 법을 만나게 된 것이다.

육안(肉眼)을 잃다
기원정사. 부처님의 설법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때, 설법을 듣고 있던 아나율은 졸음이 밀려와 졸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부처님이 아나율에게 다가가 말씀하셨다. “아나율아 너는 어찌하여 이 법의(法義) 가운데 잠을 자고 있느냐? 벗이여, 그대는 진리를 찾아 출가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 첫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놀란 아나율이 잠을 깨며 말했다. “면목 없습니다.” 그토록 출가의 뜻이 컸던 아나율이었지만 수행자로서의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부처님의 엄한 경책에 아나율은 부처님 앞에 엎드려 서원한다. “이 순간부터 저는 결코 잠을 자지 않겠습니다.” 아나율은 그 시간 이후로 눕지도 잠을 자지도 않는다.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고행을 시작했다. 아나율이 걱정된 부처님과 대중은 그를 말렸다. 하지만 그는 부처님 앞에서 한 맹세를 지키겠다며 잠을 자지 않았다. “아나율아 대중의 염려를 받아들여라. 이대로 가면 시력을 잃어 영영 앞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부처님이 아나율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나율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 맹세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 “아나율아, 고행은 좋은 것이 아니다. 게으름도 좋은 것이 아니지만 고행 또한 그러하다. 내가 이미 ‘중도’를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의 몸은 먹지 않으면 죽는 법이다. 육신이 음식을 먹듯, 귀는 소리를, 코는 향기를, 혀는 맛을 먹이로 삼고 있다. 그리고 눈은 잠을 자야 한다. 결코 세상의 순리에 어긋나서는 안 될 것이다.” / “육신의 몸이 빛을 잃는다면 이후로 저는 제 ‘의지’를 저의 눈으로 삼겠습니다.” 부처님의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아나율은 잠을 자지 않고 수행을 계속해 나갔다. 결국 아나율은 시력을 잃고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천안(天眼)을 얻다
“아나율 존자, 나와 함께 포행합시다.” 어느 날, 목건련 존자가 아나율을 찾아왔다. 〈불본행집경〉에서 전한다. “지금 바느질 중입니다. 삼의(三衣)를 다 꿰맬 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아나율은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비구들은 스스로 삼의를 기워 입어야 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나율에게는 바느질 역시 힘든 일이었다. 서둘러 바느질을 하던 아나율의 바늘에서 실이 빠지고 말았다. 아나율이 홀로 말했다. “세상에서 공덕을 지어 내 바늘에 실을 꿰어줄 이 누구인가.” 이 때 부처님은 홀로 방안에 계시면서 마음을 거두어 좌선하시다가 청정한 천이(天耳)로 아나율의 독백을 들으시고 찰나에 아나율 앞에 나선다. 부처님은 아나율의 바늘에 실을 꿰어준다.
“어느 분이 저의 바늘에 실을 꿰었습니까?” / “아나율 존자여, 내가 그 공덕을 쌓고 싶어 바늘귀를 꿰었노라.”
그랬다. 부처님은 늘 아나율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부처님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아나율이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생사를 건너 깨달음에 도달하셨습니다. 이미 충분히 공덕을 쌓아 더 이상 쌓을 것이 없는 부처님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처님이 대답하셨다. “아나율 존자여, 세간에서 공덕을 쌓는 자는 많지만 나를 능가할 자가 없고, 보시나 설법에서도 부족한 바가 없다. 하지만 내가 쌓은 공덕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중생들을 위한 것이니라.” 육안을 잃은 아나율은 눈앞의 부처님을 볼 수 없었지만 마음의 눈으로 따뜻한 부처님을 본다. 부처님은 아나율에게 육안을 되찾아 주실 수도 있었으나 부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적을 베푸는 대신에 여러 대중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도록 함으로써 아나율과 그의 대중들 모두에게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본 대중은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도 깨끗이 범행하는 이라면 기꺼이 어려운 처지를 돕는데, 부처님의 제자인 우리들이 어찌 서로 돕지 않을 수 있는가.” 이로 인하여 모든 비구들은 서로의 어려운 일들을 기꺼이 돕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아나율이 부처님과 대중에게 말한다. “육안으로 세상을 볼 때는 온갖 잡념이 나를 괴롭혔지만 육안이 사라지니 볼 것이 없고, 볼 것이 없어지니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보여 일체의 번뇌가 사라졌습니다. 멀고 가까운 것, 앞과 뒤, 안과 밖,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모든 색과 형체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의 미래생 모습까지도 보입니다.” 아나율은 육안을 잃은 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았다. 아나율은 육안을 잃고 난 후 더욱 치열하게 정진했다. 그렇게 수행이 점점 깊어진 아나율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음의 눈, 천안을 얻게 된 것이다. 그것은 찰나찰나 사멸하고 마는 육신의 속박에서 벗어난 대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눈을 잃은 것이 아니라 진정 있어야 할 ‘눈’을 얻은 것이다.
 

 

아나율 존자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의 한 분으로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다. 산스크리트어의 이름은 마니룻다, 아니룻다이다. 먼 과거생에서 굶주린 수행자에게 한 그릇의 밥을 보시한 공덕으로 태어날 때마다 가난을 모르는 인연으로 태어났다. 부처님이 성도한 후 고향을 찾아 머무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에 교화되어 데바닷다, 밧디야, 우바리 등과 함께 출가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 후 부처님께 엄한 경책을 받고, 재발심하여 눕지도 자지도 않으며 수행하다 시력을 잃게 됐다. 육안을 잃은 그는 대신 마음의 눈인 천안을 얻게 되고, 천안제일(天眼第一)이라 칭송된다. 설법 등을 통한 전법보다는 솔선수범하는 정진을 통해 범행을 닦는 수행자상을 보여주는 십대제자다.  (그림은 조향숙씨의 석굴암 아나율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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