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사찰의 생태적 전통과 지혜 (2)

불교는 생명 환경 살림 전통 강해
발우공양은 대표적 환경 운동
건축서도 친환경적 지혜 드러나
해우소는 훌륭한 친환경 시스템

▲ 사찰 특유의 발우공양과 같은 사찰의 전통은 항상 생명을 생각하고 구제하기 위한 친환경적 사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사찰의 청규와 생명살림의 전통
수천년동안 불살생의 가르침을 실천해온 불교는 생명살림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특히 전통사찰과 의례, 청규속에 이러한 불살생의 가르침에 의거한 전통과 문화는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몇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발우공양 : 불교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음식이나 대중식사를 공양이라고 한다. 특히 대중스님들의 식사인 발우공양(拔羽供養)의 전통은 공양하면서 부처님을 생각하고 수행을 돌아보며, 만 중생의 노고를 생각해 정말 자신이 음식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음식을 맛에 탐착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보살행을 하기 위한 약으로 먹는다는 서원을 하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의식인 것이다.

특히 발우공양때 외는 경전인 소심경 오관게(五觀偈)에 이 음식이 여기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중생의 노고를 생각하며(計功多小量彼來處), 내 부족한 공덕을 돌아본다(忖己德行全缺應供). 그래서 음식을 먹는 뜻은 탐진치 삼독을 끊고 (防心離過貪等爲宗), 수행과 보살행을 위한 약으로 먹으며(正思良藥爲療形姑), 궁극에는 큰 깨달음을 이루겠다(爲成道業應受此食)는 서원을 다짐하는 것이다.

정식게(淨食偈)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 미물, 특히 국이나 물에 들어있을 수많은 박테리아나 세균까지 생각하는 극도로 세심한 생명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들어있다. 물 한 방울을 여실히 살펴보니(五觀一滴水) , 팔만사천마리의 생명이 있구나(八萬四千蟲). 만약에 이들을 살피지 않고 먹는다면(若不念此呪), 중생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다(如食衆生肉)라고 생각하며 그 생명을 위해 염불을 한다.

그리고 다 먹은 발우그릇은 김치로 깨끗이 닦아 먹어 맑은 청수로 들어가 맑은 청수로 나온다 그래서 발우공양은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청결공양이자, 평등공양이며, 절약공양이자, 공동공양인 완벽한 식사법인 것이다. 오늘날 에코붓다와 불교환경연대에서 시작된 ‘빈그릇운동’은 불교의 발우공양의 정신을 살려 음식물쓰레기 처리에 골치를 썩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훌륭한 캠페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② 도량석과 예불 : 사찰에서는 새벽 예불하기 전에 사찰경내를 돌면서 도량석을 한다. 잠든 중생들을 깨워 함께 부처님께 예불을 한다는 의미이다. 이때 목탁은 처음에는 작고 나직하게 천천히 치다가 끝날때도 나직하게 사그러 들듯이 친다. 이는 도량주위에 잠들어 있는 많은 벌레와 짐승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세심한 생명에 대한 배려였던 것이다. 그리고 예불을 하기 전에 법전사물(法殿四物))을 치는데, 구름모양의 운판(雲版)은 하늘을 나는 중생들, 범종(梵鐘)은 지옥중생을, 목어(木魚)는 물속의 중생을, 법고(法鼓)는 들짐승과 축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의식이었던 것이다. 매일 인간만이 아니라 이들 중생을 구제한다는 서원이 문화속에 습합된 것이다.

③ 재(齎)와 헌식(獻食) : 재는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많은 생명들에게 배푸는 천도의식이다. 수륙재는 지상이나 물속에 사는 생명체들을 위해 베푸는 공덕으로 복업을 짓게 하는 의식이다. 보통 재의식이 마치면 올려진 음식을 각각 조금씩 걷어 옥외의 일정한 장소(헌식대)에 갖다 놓는다. 이를 헌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주위의 새들이나 작은 동물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절 주위에 사는 중생들과 함께 나누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④ 방생(放生) : 불교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 소극적인 실천을 넘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적극적인 실천을 해왔다. 방생이 바로 그러한 적극적 생명살림의 의식이다. 경전에 나오는 최초의 방생(放生) 이야기는 〈금광명경(金光明經)〉에 실려 있다. 어느 해, 유수 장자(長者)가 두 아들을 데리고 어느 큰 연못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오랜 가뭄 끝이라, 때마침 연못에 물이 말라 많은 물고기들이 죽음에 처해 있었다. 이것을 목격한 유수장자는 두 아들과 함께 마을로 되돌아가서 물을 날라다 연못에 부어주어서 많은 물고기들이 살려냈다. 그 공덕으로 유수장자는 다음 생에 시천천자(十千天子)로 태어났다고 한다.

최근 개인의 구복을 위해 생태계의 질서를 고려하지 않고 외래어종을 방생하거나 대규모 관광방생 등 무분별한 방생이 문제가 되곤 했다. 이러한 잘못된 의식은 개선해야한다. 그러나 방생은 본래의 의미를 살려 현대적인 불교문화로 새롭게 계승해야할 아름다운 전통이 아닐 수 없다.

⑤ 육바라밀 집신 : 예전의 스님들은 신총이 좌우데 3가닥씩 매듭진 집신을 신고 다녀 이것을 ‘육바라밀 집신’이라고 하였다. 집신의 주둥이는 보시, 가운데는 지혜, 밑바닥은 정신, 집신 굽은 선정, 무명천으로 둘러 묶은 신총은 지계, 동기총은 인욕바라밀이라고 했다.

스님들은 안거가 끝나고 만행을 할때는 특히 부드럽고 헐렁한 짚신을 신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길을 가는 도중에 땅에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와 곤충을 밟아 죽이지 않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또한 뜨거운 물을 함부로 땅에 버리지 않는 것은 뜨거운 물로 인해 작은 벌레와 생명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게 하려는 깊은 배려였던 것이다.

⑥ 석장(錫杖) : 석장은 비구들이 지니고 다니는 18물 가운데 하나로, 지팡이 머리 부분에 6개의 고리가 달려 있다고 해서 육환장(六環杖)이라고도 한다.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 등 육도를 제도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수행자들이 길을 갈 때 석장 소리를 듣고 주변의 짐승과 벌레들이 피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⑦ 보살통(菩薩筒) : 수행자들은 불살생을 계율로 하기 때문에 해충이라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오래전에는 해도 승속을 막론하고 몸에 이와 벼룩이 많았다. 스님들이 이나 벼룩을 잡으면 죽이지 않고 대나무 통에 넣어서 바깥의 나무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이 통을 보살통이라고 했다.

자연과 조화 중시한 사찰 건축의 친환경적 지혜
옛 수행자들은 산, 들, 강, 나무 등의 자연을 하나의 생명으로 인식했다. 비록 비탈진 산중에 사찰을 지어도 산을 훼손하거나 절개하지 않고 흙을 북돋워서 석축을 쌓은 후 집을 앉혔다. 많은 사찰의 석축들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일반 한옥주택과는 달리 굽고 휘어진 나무라도 그에 맞게 그대로 사용하거나 함부로 버리지 않고 적재적소한 곳에 사용했다. 사찰건축에서 나무는 단순한 건축자재가 아니라 나무를 나무 그자체로 대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과거에는 수행자들이 직접 절을 지었고 자연속의 건축이자, 건축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봉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등 고려시대의 건축들이 지금까지 천년을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그것은 바로 부분적인 수리와 교체가 가능하도록 조립성(組立性)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사찰의 건물은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이음새들이 요철(凹凸)로 되어 있고 나무못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해체하여 고스란히 다른 곳에 옮겨 지을 수 있는 이실성(移室性)이 있었다. 그래서 증축을 하면 전에 있던 작은 건물은 다른 곳의 작은 절로 옮겨 세웠다.

그리고 습기나 흰개미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도 썩은 부분만 잘라내고 다른 목재로 짜집기 하듯이 대목을 대었다. 해체 보수 과정에서 나온 목재들도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었다. 목재의 썩은 부분을 잘라낸 뒤 다른 전각 불사에 썼다. 그러다보니 누더기 전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이실성과 조립성이 강한 건축물은 그 자체로 생태적인 것이다.

요즘 시멘트건물은 50년이 지나면 흉물스러운 시멘트덩어리가 되어 부서지면 결국 매립장에 폐기된다.
그에 비해 전통사찰건물은 썩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친환경적 자재를 사용하며, 부순다해도 다른 건축의 자재로 고스란히 사용할 수 있어 철저한 재사용과 재활용이 가능한 건축물은 그야 말로 훌륭한 생태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불사에서 나온 폐기와 역시 버리지 않고 담장을 쌓거나, 굴뚝을 쌓을때 부재로 썼다.

이뿐 아니다. 기둥의 주춧돌은 대개 자연석 막돌(덤벙주초)을 사용하였는데, 그래서 기둥을 바로 세우기가 어렵지만, 윗면의 굴곡에 따라 기둥의 아랫면을 깍아세우는 ‘그랭이 기법’을 개발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평평한 가공석위에 새운 기둥보다 좌우에서 미는 힘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 자연재해나 지진에 강하여 건물을 튼튼하게 오래 지탱할 수 있다. 또한 굽은 기둥에 가로 벽선에 맞추거나 기둥의 옆면에 맞게 벽선을 깎아 맞추는 것, 굽어진 보를 세울때나, 성곽의 돌담장을 쌓을 때도 자연바위에 맞게 돌을 깎는 그랭이 기법이 이용되었다. 이 그랭이 기술은 우리나라만의 친자연적인 전통기술인 것이다.

요사채는 대개 작은 구들방이어서 적은 연료로 그만큼 효율적인 난방을 할 수 있다. 전통사찰의 화장실인 해우소(解憂所)는 말그대로 탐욕과 집착을 내려놓아 ‘근심을 푸는 곳’이었다. 수세식처럼 물을 사용하지 않고, 낙엽이나 톱밥 등을 사용하여 분뇨를 발효시켜 거름으로 사용했다.

특히 채마밭 주변에 있는 경우가 많아 거름으로 사용하기 편리하고 소변 등은 액비로 사용했다.
이러한 전통 해우소는 아주 훌륭한 친환경적이며 위생적인 분뇨처리시스템으로 생태전문가들에게는 각광을 받고 있는 불교의 전통인 것이다.

이 외에도 방충방부역할을 한 단청이나 냉난방효과를 위한 겹처마 등 자연을 항상 고려한 사찰의 지혜는 모두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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