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논의제일(論議第一) 가전연 존자 <상>출가

부처님의 말씀은 크게 법(法)과 율(律)로 나뉘고, 장(藏)으로는 경(經), 율(律), 론(論) 삼장(三藏)으로 구분된다. 경은 부처님의 가르침(말씀)을 모은 것이고, 율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실천규범을 모은 것이고, 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해석해 놓은 것이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부처님 말씀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탁월했던 이가 있었으니 가전연 존자다. 부처님은 그를 일러 ‘논의제일’이라 했다. 설법제일이었던 부루나 존자가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만큼 그의 능력은 뛰어났다. 부루나가 재가자들을 상대로 설법했다면, 가전연은 재가자뿐만 아니라 출가한 사문들에게도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설법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가전연 존자의 이야기다.


한번 듣는 것만으로 깨우치는 신동
아버지 도움으로 형의 시기 벗어나
논리적으로 정리·설명하는데 뛰어나
타종교와 경쟁에서 중요한 역할


부처님 교단은 마가다국에 이어 기원정사를 세운 코살라국 사위성에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경이로운 일이었다. 다른 교단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 저항은 결국 불법에 머리를 숙였고, 교단은 그 저항의 자리들을 부처님 자리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전법은 그야말로 중요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아니 있었지만 깨닫지 못했던 진리. 그 진리를 중생들에게 전하는, 불사 중의 불사였기 때문이다.

신동 나라다와 형(兄)의 시기
남인도 아반티국의 도읍 웃제니. 어느 바라문 가문에 국사(國師)가 있었다. 국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여러 나라에서 많은 스승으로부터 학문을 익힌 큰 아들이 돌아왔다. “아버님, 저는 학문의 모든 것을 통달했습니다. 대중을 모아주십시오.” 그는 자신의 공부를 많은 대중 앞에서 증명했다. 바라문의 성전인 베다를 모두 다 막힘없이 외웠다. 국사는 기뻤다. 대중들은 국사의 아들을 추대하여 상좌에 모시고, 부친인 국사는 대중에게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국사는 작은 아들을 불렀다. “나라다야, 너도 이제 너의 형처럼 여러 나라에서 많은 스승을 찾아 공부하고 오거라.” 나라다가 말했다. “아버님, 저는 이미 일체 학문을 알고 있고 있으니 지금 대중을 이 자리에 모아 주십시오.” 동생 나라다는 형이 베다 성전을 외울 때 그 성전을 한 번 듣고 일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나라다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학문을 증명해보였다. 국사와 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란 형은 생각했다. “나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여러 나라를 돌며 여러 스승들로부터 학문을 익히고 또 익혀 겨우 모든 공부를 익혔는데, 나라다는 저 어린 나이에 어떻게 한 번 듣기만 한 것으로 모든 것을 깨칠 수 있단 말인가.” 국사는 작은 아들 나라다의 총명함에 기뻤지만 나라다의 형은 기쁘지 않았다. “나라다가 계속 학문을 닦는다면 반드시 국사의 지리에 오를 것이다. 안 될 일이다. 그 자리는 내 자리여야 한다.” 형은 나라다를 시기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라다를 없앨 결심을 한다. 이 때 국사는 큰 아들의 마음을 읽고 동생 나라다를 먼 곳으로 보낸다.

출가인연
국사는 나라다를 그의 외숙인 아사타 선인에게 보낸다. 아사타 문하에서 나라다의 공부는 점점 깊어갔다. 나라다는 마침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궁에 들어가게 된다. 아반티국 역시 그 때까지는 부처님 법이 널리 전해지지 않았을 때였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불어오는 바람처럼 이미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는 아반티국에도 이미 전해져 대중의 입을 타고 있었고 마침내 궁중에까지 전해졌다. 어느 날, 부처님에 대해 알게 된 아반티의 국왕은 부처님을 만나고 싶어졌다. 국왕은 나라다를 불렀다. “부처님을 뵙고 싶으니 그대가 가서 부처님을 모셔와야겠다.” 나라다는 일곱 명의 신하와 함께 기원정사로 떠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다
“어서 오라. 나라다여! 내 법 안에 들어와 범행을 행하라.” 나라다는 처음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바로 모든 괴로움을 다하고 그 끝에 이르게 하리라.” 부처님의 발아래 고개 숙인 나라다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오래전에 옛 스승 아사타의 가르침을 의심 없이 들었습니다.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모든 법의 저 언덕을 건너고자 합니다. 이미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걸식으로 목숨을 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범행을 행하면 무슨 과보를 얻을 것인지 이제 부처님께 여쭙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답하셨다. “범행을 행하는 과보가 무엇인지 묻는구나. 독약을 먹으면 누구나 죽듯이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는 모든 일을 보아도 마음 산란치 말라. 무엇이든 탐내고 물듦을 버리고 보면 집착하지 않으므로 해탈하게 된다. 밤에 홀로 앉을 때 모든 것을 생각하지 말고, 마을을 멀리 떠나서도 역시 생각지 말라. 다만 날이 밝아 걸식할 때는 바른 마음 바른 생각으로 마을에 들라. 마을 가운데 이르면 말없이 차례로 집을 지나 걸식하고, 마을을 거닐 때 감사한 얼굴로 걸으며, 남에게 말하되 겸손하게 말하라. 손에 발우를 든 이는 마땅히 정진하여 견고해진 후에 걸식에 나서야 한다. 행자는 항상 부르짖는 소리에 대해서는 마치 사나운 불길처럼 생각하고, 부녀자의 단정한 얼굴을 보게 되면 마땅히 그 모습을 버리고 그 모습에 물들지 말라. 모든 욕락에 물들지 않음으로써 피차 물들 인연이 없나니, 물듦이 없으면 곧 다툴 인연도 없다. 세간의 모든 일체 중생들, 내 몸 그 몸이 다름이 없고, 내 목숨 그 목숨 꼭 같나니. 이렇듯 자세히 살펴 생각해 보고, 성날 때에 살생 말고 헤치지 말며, 비록 변재가 있어도 잠잠하라. 혹 밥을 조금 밖에 못 얻어도 슬퍼하지 말고, 보시하는 이 헐뜯지 말라. 밥을 얻는 곳이야 가장 좋지만 못 얻는 곳에도 성내지 말라. 그 두 곳에 다 함께 평등심 내고 나무 아래 가서 맘대로 먹으라. 먹고 나서 다시 숲속에 돌아가 나무 아래 고요히 가부좌 맺고 자리 위에 앉기를 선인과 같이 몸과 마음 입을 모두 거두라. 청정하고 참된 마음으로 범행을 닦되 좋은 말 부지런히 구하기 힘써 널리 듣고 지혜 많은 이에게 물어서 적정하여 애욕을 여읜 사람 있거든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 하여, 그 곁에 이르러 마음으로 믿고 따르며, 믿고 나서 공경하길 세존과 같이 하라. 남의 집 잘못을 말하지 말라. 타인을 헐뜯거나 자기를 찬탄하지 말며, 말할 때도 큰 소리를 내지 말라. 마치 사나운 불길이 먼 곳까지 미치듯 이렇게 생각하여 모든 미혹 끊으면 이것을 비구의 출가법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게송을 읊자 나라다는 마음과 뜻이 열리어 크게 기뻤다.
이 때 나라다는 이미 모든 법을 보고, 모든 법을 증득하고, 모든 법에 들어가 모든 의심을 초월하고 모든 미혹을 초월하고 다시 의심의 그물이 없고 이미 두려움 없음을 얻는다. 다른 사람의 말을 따름이 아니라 이미 부처님법의 미묘하고 비밀함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출가와 구족계를 주시옵소서.” 나라다는 그 자리에서 부처님께 귀의한다. “비구들은 들어라. 나라다의 성씨는 가전연이다.” 구족계를 받은 나라다를 부처님은 가전연으로 불렀다.

법과 비법(非法)
불교가 태동하던 시기의 인도는 여러 사상이 혼재하고 있었다. 특히 바라문교라는 거대한 보수 종교와 여러 신흥 사상의 틈바구니에서 전법을 펼치는 일은 힘겨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부처님 말씀이 사상적으로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교는 다른 가르침에 비해 월등한 사상적 완결성으로 많은 지식대중을 설득시킬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탁월한 논의가들을 배출할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가전연이 단연 으뜸이었다. 당시에는 논쟁을 통해 서로의 사상을 가늠하고 그 가늠에 따라 대중이 움직였기 때문에 가전연과 같이 뛰어난 논의가가 있다는 것은 교단의 큰 이로움이었다. 가전연 존자는 대중이 부처님의 설법 중 이해하지 못한 법을 법과 법답지 않은 법으로, 뜻에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으로 분별하여 설명해 줌으로써 대중이 부처님의 설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설법했다. “비구들이여, 비법과 법을 알아야 하고,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법을 알고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을 안 뒤에는 법을 따라, 이로운 것을 따라 도를 닦아야 한다.”고 간략하게 설법하고 돌아가셨다. 설법을 들은 비구들은 그 상세한 뜻을 알고 싶어졌다. 비구들은 논의 끝에 가전연 존자에게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줄 것을 부탁했다. “도반들이여, 생명을 죽이는 것은 비법이고,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은 법입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유익한 법들이 수행을 통해서 완성에 이르니 이것이 이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가전연 존자는 계속해서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 삿된 음행, 거짓말, 중상모략, 욕설, 잡담, 욕심, 그릇된 견해 등 십악업과 그것에서 벗어나는 십선업을 예로 들어 법인 것과 법이 아닌 것, 뜻에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에 대해 설법했다.
부처님의 짧은 설법에 대하여 가전연 존자는 사례를 들어 법과 비법을 분별하는 논리를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다. 설법의 설법. 가전연의 설법은 악행을 하는 것은 그릇된 법이며, 악행을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올바른 법이라는 것이며, 악행을 조건으로 해로운 것들이 계속 생겨나고, 선행을 조건으로 이로운 것들이 생겨남으로, 악행에서 벗어나고 선행을 실천하여 유익한 법을 깨우치는 것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가전연의 설법을 전해들은 부처님께서는 “내가 설명했어도 그와 같이 했을 것이다.”며 가전연을 논의제일이라고 칭송했다. 불본행집경의 나라다출가품에서 부처님은 “비구들아, 너희들은 알아두라. 이 가전연 비구는 지난 옛날 기쁜 마음으로 이런 선근을 심었으며 이런 인연으로 내 곁에서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나는 이제 수기하느니, 나의 성문 제자들 가운데 간략한 뜻을 넓게, 넓은 뜻을 간략하게 말하는 것이 제일인 사람은 가전연 비구니라.”했다. 

가전연 존자는
부처님 십대제자 한 분으로 논의제일이라 불린다. 가전연은 성(姓)씨이고 이름은 나라다이다. 부처님 당시 아반티국 국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왕의 명으로 부처님을 아반티국으로 초청하기 위해 부처님을 찾아가게 되고, 부처님을 만난 자리에서 바로 출가하여 부처님께 귀의하게 된다. 부처님의 설법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일에 밝아 재가자뿐만 아니라 사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자세히 풀어주고, 다른 교단의 논사들과의 논쟁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전파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부처님 입멸 후에도 활발한 전법활동을 펼쳤는데, 논의제일답게 발지론(發智論) 등 많은 논장을 지었다. (그림은 조향숙씨의 석굴암 가전연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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