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됨이 없으니 인과도 업보도 붙을 자리가 없다
고정됨이 없으니 인과도 업보도 붙을 자리가 없다
  • 대행 스님
  • 승인 2012.11.02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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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한마음에서 마음먹는 대로 나오는 것[913호 11월 7일]
▲ 그림 최주현

 

제주도에 와 본 지도 한참 됐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 달에 두어 번은 올까 합니다. 우리가 이런 공부를 하루 이틀 익혀서 될 일은 아닙니다만 먼저 우리 마음이 정돈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과학과 모든 종교라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나 자체가 있기 때문에 상대성 원리가 스스로 이렇게 같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정립해서 알아야 하고, 또 중용을 할 수 있는 원심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라 하면 우리가 밖에서 찾는 경향이 많습니다. 스님들도 정말 예전과 같이 밥이나 해다 놓고 목탁이나 쳐서 살림을 꾸려 나가는 살림 중이 돼서는 아니 되며, 여러분도 기복 불교는 물론이고 이 신(神) 저 신을 찾으며 온통 이름만 믿고 다니는 습들을 놔야 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믿겠습니까, 형상을 믿겠습니까, 허공을 믿겠습니까? 이제는 단호히 결심해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옛날부터 우리의 역사에 고난이 많았던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우리 마음들이 그런 역사를 가져온 것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한마음에서 마음먹는 대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바로 자동적으로 천차만별의 마음을 낼 수 있는 고등 동물입니다. 밥 먹고 똥 누고 잠자고 하는 것도 과학이죠. 과학이라고 하기 이전에 역시 심성은 꼭 빼놓지 않아야 된다, 심성 빼놓고 뭣이 있겠느냐는 얘깁니다, 모든 게.

그러면 인과에 대해서 얘기를 한번 할까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과, 업보, 유전, 조상의 문제 등에 관해 가르칩니다. 그리고 ‘네가 한 번 남을 망하게 했으면 네가 바로 그 업보를 받아서 망하게 된다.’라고 인과법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 들으셔야 됩니다.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라고 말하는데, 우리가 고라고 이름을 붙여 놓고 고라고 하니까 고인 것이지, 고가 있다면 어떤 것이 고인지 내놔 보십시오. 집착이 있다면 어떠한 것이 집착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고요.

‘남을 한 번 때렸으면 너도 한 번 맞는다.’ 이것을 바로 인과응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과응보라고 이름 붙이기 이전에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점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봅니다. ‘한 번 때렸으면 한 번 맞는다’ 할 때 ‘아하! 때린 것도 나고, 내가 때렸기 때문에 바로 내가 맞은 것이다.’ 이런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한 번 때려 보고 한 번 맞아 보니까 말입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되고 자기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되고, 그러니까 그것이 바로 나를 내가 성숙하게 만드는 수행 과정이라고 생각할 때 거기에는 업보가 붙지 않습니다.

그건 무슨 까닭인가. 우리는 지수화풍(地水火風)입니다. 어떠한 물질이든지 지수화풍 아닌 게 없습니다. (잔 받침을 들어 보이시며) 이거 하나도 지수화풍입니다. 지수화풍 아닌 물건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우주개공(宇宙皆空)이 이 접시 안에도 들어 있다,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 이거는 네 가지가 한데 합쳐졌기 때문에 하나가 됐으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인간도 지수화풍이 다 있기 때문에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지수화풍으로 뭉쳐진 이 자체는 집이지마는 그 지수화풍 속에서 생명체가 움죽거리고 있다는 사실,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옛날에 이런 예가 있었습니다. 어느 아주 어려운 마을이 있었습니다. 한 부부가 자식이 없이 살고 있었는데, 너무나 자식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터에 자식이 생기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뭣 때문에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도 모르고 좋아하기만 했죠. 아들 형제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그지없이 잘 길러서 글방에도 보내고 했답니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서 근 여남은 살이 됐는데, 하루는 어느 스님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당신은 아들 형제를 뒀지만 그 애들은 당신 원수를 갚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언제 적의 당신 아들이 아니라 지금 현생의 문제인데, 당신이 지은 죄과라기보다도 이 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헤아릴 수 없이 거미와 깻벌레를 많이 죽였기 때문에 그 애릿한 의식이 한데 모여서 당신한테 아들로서 태어났다. 그래서 내일 모레 글피면 부부가 깻벌레와 거미한테 잡아먹힐 시기가 되니까 조심하라.” 그러거든요. 만약에 그 스님을 믿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이 모두 원수 갚음을 받게 되고, 그러면 또 그게 원수가 되고 그랬겠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까 그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미리 준비해 놨다가 내일 모레쯤 돼서 겻불을 마당에다 두 무더기를 피워 놓고, 병아리 우리를 두르는 철망을 갖다가 둥그렇게 뺑 돌려서 치고, 공석때기를 쳐서 그 안에서 겻불이 타게 하는데, 그저 구멍이라는 것은 요만큼만 남겨 놓고 다 싹 돌려서 막아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 겻불이 타면서 연기가 꾸역꾸역 위로 올라가겠죠? 그렇게 하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렇게 하면서 “모든 것은 내가 다 알아서 처리를 할 테니 내가 시킨 대로만 하라.” 그러시더랍니다. “어떻게 해야만 되겠습니까?” 하니까 “아들 형제가 서당에서 돌아오기 바로 전에, 한 사람이 먼저 항아리 속에 들어가면 남은 사람이 뚜껑을 덮어 준 뒤에 자기도 들어가서 뚜껑을 덮고 기다리되 아무리 ‘엄마, 배고파!’ ‘아버지, 배고파!’ 하더라도 뚜껑을 열어 보지도 말고 나오지도 말라.”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 아무 소리가 없더라도 한 시간은 흐른 뒤에 나와야 한다. 그러면 알 바가 있느니라.” 하거든요.

그래서 그날을 지켜서 그대로 했습니다. 그랬는데 웬걸 “아버지! 엄마!” 하고선 그냥 온통 집 앞뒤로 찾아다니면서 배고프다고 엉엉 울고 그러는데 항아리 속에 있던 부부는 가슴이 미어져 나가는 듯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어서, 한 끼 굶는다고 죽는 법은 없으니까 한번 스님이 하라는 대로 해 봤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더니 아닌 게 아니라 “이 연놈들 어디 갔느냐!” 하고 그냥 욕설을 퍼부으면서 “원수를 갚기 위해 우리가 그렇게 애를 쓰고 애를 써서 인간 환토를 했는데 아, 이 원수를 갚지 못하고 시간이 점점 가니 이 노릇을 어떡하면 좋으냐.” “이때를 위해서 얼마나 우리가 애를 썼느냐!” 하면서 둘이 욕을 퍼부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기밀을 알고 없어졌느냐.” 하면서 온통 찾아다니더랍니다. 그러니까 그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던 것이 싹 없어지고는 그냥 몸서리가 쳐지고 소름이 쫙쫙 끼치더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그렇게 잔인하게 우리를 오줌독에다 넣고 죽였으니 우리도 잔인하게 피를 빨아 먹어야 할 텐데….” 이러니까 소름이 쫙 끼치죠. 그래서 그 안에서 쥐 죽은 듯 하고 있으니까, 얼마 있더니 “시간은 점점 가는데 이 연놈들에게 원수도 못 갚고 어떡하느냐? 인제는 앞으로 천 년이 가도 만 년이 가도 원수 갚을 기회가 없는데, 어디 갔느냐!” 하고 막 울부짖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다 얼마 있더니 아무 소리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지금으로 치면 한 시간 반을 있다가 나와 보니까, 하여튼 한쪽은 거미고 한쪽에는 깻벌레인데 말입니다, 오물오물하더랍니다. 아주 그냥 자기가 죽인 수효대로, 애 적부터 죽인 그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서 그 겻불에 엉겨 붙어서 죽은 놈도 있지마는 오물오물하는데 너무 징그럽고 너무 기가 막혔더랍니다. ‘그게 아들이었다니….’ 하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들로 뭉쳐졌다니….’ 하구요.

여러분, 이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오장 육부가 어떻게 돼 있나. 또 대의적으로 본다면 오대양 육대주가 어떻게 돼 있나. 우리가 지구 벌레 아닌가. 그럼, 지구가 우리 인간의 집이라면 그 집이 지금 어디로 돌아가는지 모를 겁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돌아가는지, 찰나찰나 돌아가는 순간순간을 여러분은 지켜보지 못하고 생각조차도 못할 겁니다, 아마. 그와 같이 우리 인간 자체의 그 오장 육부에는 사생(四生)이 들어 있습니다. 화(化)해서 낳는 거, 알로 낳는 거, 습생(濕生), 태로 낳는 태생(胎生), 이런 네 가지의 종류를 사생이라고 합니다. 이 사생도, 태로 낳는 종류도 허다하게 많고 알로 낳는 종류도 허다하게 많습니다. 또 화해서 낳는 생명들도 많고 습생도 많습니다.

그러면 천차만별로 돼 있는 종류를 우리가 관찰해 볼 때 그것이 어디로부터 그렇게 인연이 돼서, 우리 인간의 몸뚱이에 그 수십억 마리가 한데 합쳐져서 나의 한 혹성을 만들어서 이렇게 쉬지 않고 자동적으로 돌아가게끔 하고 있나를 한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런 얘기 하면 ‘중이 무슨 그런 소릴 해?’ 하겠지마는, 중이라는 것은 중심, 중용, 바로 우리의 원심력의 근원, 뿌리를 말하는 겁니다. 불가에서는 오신통(五神通)의 근본을 누진통(漏盡通)이라고 그러는데 누진통이라는 그 이름도 놔 버린 바로 그 자체의 능력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 몸에 있는 그 사생의 문제가, 천차만별로 들어 있는 문제가 인연 따라서 모인 겁니다. 내가 만약에 깡통의 마음을 썼다면 깡통의 마음 차원을 가진 것끼리 인연이 됐을 거고, 내가 금의 차원이라면 금끼리 모여서 이 몸이 됐을 거고, 천차만별로 돼 있는 그 마음의 차원에 따라서 인연을 지어서 이렇게 모인 겁니다. 여러분! 무쇠 쪼가리를 주워다가 금방에 갖다 놓지는 않으시겠죠. 금을 무쇠전에 갖다 놓지는 않으시겠죠. 보석을 넝마전에 갖다 놓지는 않으시겠죠. 넝마를 보석전에 갖다 놓지는 않으시겠죠. 이것이 바로 자기가 마음먹는 대로 끼리끼리들 모여 인연 따라서 우리의 한 몸이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정자와 난자가 한데 합쳐져서, 수십억 마리가 들끓다가 하나의 지도자만 남기고서는 그 물질은 다 없어지고 그 심령만, 바로 대장으로 뽑힌 그 물질 하나에 동일하게 같이해 줍니다. 그러면 임신이 돼서, 그 어린애가 자라는 대로 피를 따라서, 모든 것이 인연 따라서, 그 사람의 차원대로 같이 하나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자라는 대로 사생은 또 들어가는데 인연 따라서 차원대로 가서 같이 생기죠.

그러니 여러분이 인과라고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업보라고 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그걸 구태여 업보다, 인과다, 고다 이런 이름을 붙이지 말아 달라 이런 소립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런 인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식이 태어나면 태어나는 대로 끼리끼리 모이는 겁니다. 내가 금이라면 바로 금의 인연을, 또 무쇠라면 무쇠의 인연을 가지고 자식이 태어나거든요. 본인 자체가 무쇠기 때문에 무쇠가 오는 거죠. 본인 자체가 금이라면 금이 올 테죠. 그래서 무쇠나 깡통이 서로 부딪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듯이, 한집안 가족이 서로 괴로움을 주고 괴로움을 당한다는 그 사실을 아셔야 되죠. 또 인간뿐만 아니라 짐승이라도 그렇고 벌레들도 그렇고, 화생이든지 습생이든지 태생이든지, 모든 게 다들 쫓기며 쫓으며 잡아먹히며 잡아먹으며, 피를 흘리며 서로가 부딪치고 우는 이러한 것이 아마 진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더하고 덜함도 없는 겁니다. 벌레의 세계는 벌레의 세계대로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형제가 있고 그렇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고요. 우리 인간도 그렇듯이 말입니다.

이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각박하고 조금도 여유가 없는 인생살이 같습니다. 또 인생살이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의 삶도 말입니다. 그러나 한번 대의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것이 넝마면 넝마대로 고정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인과다 업보다 그런 말을 붙이지 말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넝마는 넝마대로 그냥 있지 않고 재생하는 대로 또 딴 모습을 해 가지고 나오고, 역시 또 무쇠도 고정되게 있는 것이 아니죠. 만약에 아궁이 뚜껑이 됐다면 아궁이 뚜껑으로만 있는 게 아니라 딴 걸로 모습을 해 가지고 또다시 나옵니다, 재생이 돼서. 인간도 역시 요 모습으로만 그냥 있는 게 아니라 고정됨이 없이 찰나찰나 나투면서 화해서 돌아갑니다. 이 이치를 우리가 진리라고 하죠.

그렇다면 업보가 없다는 생각과 있다는 생각 중에 어떤 것이 틀리고 어떤 것이 맞을까요? 우리가 ‘업보가 없다’ 해도 틀리고 ‘있다’ 해도 틀립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하난데 마음내는 거는 천차만별이죠. 만약에 천차만별로 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고가 있고 고정됨이 있겠지마는, 우리가 천차만별로 마음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고도 인과도 업보도 거기 붙을 자리가 없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살면서 고정관념도 없고 고정되게 보는 거 듣는 거 말하는 거, 만나는 거 오고 가는 거 먹는 것이 없어서 모든 게 고정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그거를 공(空)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거 될 때에 나라고 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을 만날 때 내가 만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는 존재를 세울 게 없는 것이 바로 진리며 부처며 법신(法身)이며 화신(化身)이며, 이런 것이 종합돼서 삼위일체로 회전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살림살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 벌레들의 마음인 의식 자체가 바로 자기 의식 속에 들어와서 한데 뭉쳐서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을 해 가지고 아들로 나온 겁니다. 자기 인간의 모습 속에 그 생명체들과 모습들로 각각 해 가지고 나왔지마는 그것이 변해서 본래로 돌아가니까 그 깻벌레와 거미들이었던 걸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다른 걸 보지 말고 구더기가 파리가 된 거를 보십시오. 그런데 그 파리는 구더기를 짊어지고 나왔던가요? 아니, 구더기를 버리고 파리가 달리 있던가요? 그런데 우리가 파리라면 자기가 전자에 구더기였다는 걸 모르고 구더기는 파리였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전생을 꼭 바깥에 있는 줄만 압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걸 모릅니다.

지난번에도 했던 말이지만 우리는 잠재의식 카세트에, 과거에 수억겁을 거치는 동안 모습을 바꿔 가면서 화해서 살던 얽히고설킨 그 습이 모두 감겨 있는 그 자체로서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현재 짊어지고 있다 이 소립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각본대로 카세트에서 솔솔 풀려서 나오는 것을 여러분이 팔자 운명이라고 아는 거죠. 그러나 그것은 팔자 운명이 아니라 자기가 한 대로 나오는 그것들을 통해서 스스로 느끼고 알고 성숙하게 하기 위해, 나의 근본 주처인 참나가 현재 나를 다지고 다져서 가르치고 이끌어 오는 거라고 생각하십시오. 그 자리에는 업보도 붙지 않고 아무것도 붙지 않습니다. 내가 공해서 건덕지가 없는데, 모두가 공해서 건덕지가 없는데 그 공한 자리에 붙을 게 뭐가 있습니까? 붙을 건덕지가 어딨으며 기댈 데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그것이 의심나걸랑 마음을 내놔 보십시오. 마음이 있다면 내놔 보시란 말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달린 거지 마음자리에는 붙고 떼고 할 게 없습니다.

그러니 카세트에서 각본대로 나오는 그 자체에다 다시 새로운 것을 녹음시킨다면 수억겁 동안 감겨 있던 입력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 바꾸어 넣는다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채우면 없어지고 없어지면 채워지는 그런 빈 그릇이 될 것입니다. 채워졌다 해도 틀리고 또 비었다 해도 틀리니, 채워지면서 비워지고 비워지면서 채워지고 하는 것은 자동적으로 우리가 여여하게 지금 놓고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박하게 살게끔 되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여러분은 물질적으로만 생각하니까 항상 ‘나’라고 하고 내가 했다고, 남이 나를 망하게 했다고, 또 내가 남을 망하게 했다고, 내가 지금 먹고 산다고, 내가 건강하다고…, 뭐 이런 따위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겠죠. 물질적인 50%만이 아주 전부인 줄 알고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50%의 안 보이는 미지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아마 짐작도 못하실 겁니다.

지금 사람들은 대략 다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알기는 하나 행동이 안돼요. 여러분이 알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고 내가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닙니다.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이런 소리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게 감개무량한 겁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에, 오관(五官)을 통해서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물질과학이 발전이 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물질과학이 발전이 됨으로써 또 그 물질한테 인간이 먹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계를 만들어 놓고 기계에 말려서 죽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 기계에 말린다면 인간은 존엄성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에 각본대로 나오는 그 모든 것을 카세트에다 되놓는다면 여러분이 수억겁을 거쳐 나오면서 쌓아 온 습을 다 놓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강도질을 했든 소 잡는 백정 노릇을 했든 무엇을 했든지, 어떠한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그렇게 놓고 돌아간다면 그 업보는 지옥고라도 다 무너집니다.
우리가 마음 한생각에 천차만별로 마음을 낼 수 있으니 때에 따라서는 어머니가 됐다가 할머니가 됐다가 아내가 됐다가, 때에 따라서는 형님이 됐다가 아우가 됐다가 친구가 됐다가 이러는데, 할머니가 됐을 때 나라고 할 수 없고 아내가 됐을 때 나라고 할 수 없듯이, 그 모습 하나를 가지고서 행은 자동적으로 항상 바꿔 가면서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러분 한 사람이 몇 가지 역을 하십니까? 식구가 여럿이면 이 식구 만나고 저 식구 만나고 그럴 때마다 자동적으로 역이 각각 달라지거든요. 남편 만나면 달라지고 아내 만나면 달라지고 자식 만나면 달라지고 자동적입니다, 그건. 벌써 말, 생각, 행동 이 세 가지가 다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 만나는 것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동시에, 보는 것도 달라지고 듣는 것도 달라지고, 모든 게 자동적으로 달라지면서 돌아가고 있으니 이것이 헤아릴 수 없는 겁니다, 사실은. 그러니 어떤 거 들었을 때 내가 들었다고 할 수 없는 판국이니 이게 광대무변한 이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불교’ 그러는데 불교는 어떠한 국한된 종교가 아닙니다. 생명을 불성, 영원한 불성, 영원한 생명이라고 한다면 법(法)은 바로 정하는 걸 말하고, 말하는 거는 교(敎)라고 하죠. 우리가 모든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한생각이 엄청난 문제를 자아낼 수 있어서 자기를 구덩이에다 넣는가 하면 구덩이에서 꺼낼 수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이 한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까 얘기했듯이 지금 이 몸에 수십억 마리의 사생이 들어 있는데, 그 수십억 마리의 마음들이 만약에 (가슴을 짚으시며) 자기 주인공인 그 근본을, 주처를 세우지 않아서 주처가 없다면 빈집에 있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부모가 없을 때 아이들이 아무나 데리고 들어와서 막 놀다가 그저 집안도 망가뜨리고 이러는 거와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집 속에 주인이 있는데, 그 주인이 있어야 지금 수십억 마리의 모든 애들이, 마음이 말입니다, 집을 지킬 수 있다 그겁니다.

모습 없는 모습들이 이 허공에 꽉 차 있어서,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다 들어갔다가 왕래를 하고 있고 딴 데서도 왕래를 하고 있으니 나한테 들어온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방어를 하고 다니기 때문에 몸이 다닐 수 있지, 만약에 그렇지 못한다면 그냥 쓰러질 겁니다, 아마. 그러니 만약에 주인이 없어서 그 모습들이 왕래 없이 왕래를 하고 들락거리다 보면 내 몸은 벌써 어디 한군데가 망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렇게 돼서 병원에 가면 무슨 병이다 하고 수술을 하거나 약을 먹거나 이렇게 치료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어려운 경우가 많죠.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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