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번뇌-② 108번뇌 [913호 11월 7일]

 지난 회에서는 번뇌의 사전적 의미와 개론을 설명하면서 108번 번뇌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했다. 하지만 불교에서 번뇌를 논할 때 ‘108번뇌’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선 108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많다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번뇌의 종류를 하나씩 나열해 총 108개를 합한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다만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복잡한 배경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먼저 108이라는 숫자의 근원이 정확히 어디에서 설명되는지 현재에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알 수 없다는 점과 불교 교단이 분열되면서 형성된 각 부파(部派)마다 108 번뇌의 체계를 나름대로 세움으로서 다양한 108번뇌의 종류가 생겼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또한 명확하게 불교 어느 부파에 의해 형성됐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전에 번뇌에 대한 다양한 법문을 제자들에게 설했고, 이를 듣고 기억한 제자들이 부처님 열반 후 각자 자신들이 들은 것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으로 보인다. 그만큼 부처님의 번뇌에 대한 가르침이 다양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면상 번뇌의 모든 종류를 소개할 수 없는 관계로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번뇌론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부파불교에서 가장 유력한 세력이었으며, 대승불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번뇌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설일체유부는 번뇌와 같은 의미로 수면(隨眠; anuśaya)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수면은 넓은 의미로 ‘기질’, ‘경향’, ‘성향’ 등을 나타내는데, 특히 마음에 잠재돼 있는 편향성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항상 ‘나쁜 경향’, ‘나쁜 자질’ 등의 의미가 따르며, 삼독(三毒)이라 불리는 탐ㆍ진ㆍ치도 당연히 수면에 포함된다.

설일체유부는 108번뇌를 크게 98수면과 10전(纏)으로 나누고 있다. 98수면은 98가지 번뇌를 뜻한다. 98수면은 먼저 여섯 가지 근본번뇌로부터 시작한다. 여섯 근본번뇌는 탐ㆍ진ㆍ치ㆍ의(疑: 의심하는 마음)ㆍ만(慢: 다른 것과 비교하여 뽐내거나 비하하는 마음)ㆍ견(見: 욕망을 바탕으로 사물을 보는 견해)를 말한다. 여기서 견은 다시 다섯 가지로 분류되어, 유신견(有身見: 자신의 몸과 남의 몸, 내 것과 남의 것을 분명하게 나누는 견해)ㆍ변집견(邊執見: 고집이 가득한 마음을 갖고 보는 견해)ㆍ사견(邪見: 인과를 부정하는 견해)ㆍ견취견(見取見: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는 견해)ㆍ계금취견(戒禁取見: 자신의 행동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으로 나뉜다. 위의 항목을 모두 합쳐 십수면 혹은 십번뇌라고 말한다.

상술한 십수면은 수행에 의해 벗어날 수 있다. 그 수행의 방법은 크게 견도(見道)와 수도(修道)로 나뉜다. 지혜에 의한 삼계[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 수행단계를 견도라고 하는데, 이 견도의 과정에서 멸시킬 수 있는 번뇌를 견혹(見惑)이라고 한다. 또 견도의 경지 이르면 그 다음단계가 수도인데, 수도의 단계에서 멸시킬 수 있는 번뇌를 수혹(修惑)이라고 한다.

이 견혹과 수혹은 다시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견혹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삼계에 각각 고ㆍ집ㆍ멸ㆍ도의 사제(四諦)를 도입한다. 즉 삼계에 사제를 곱해 12개의 항목이 나온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십수면을 대입시켜 88개의 번뇌를 도출시키는데, 지면상 88개 모두를 열거하는 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수혹은 욕계에 탐ㆍ진ㆍ치ㆍ만, 색계에 탐ㆍ치ㆍ만, 무색계에 탐纏치ㆍ만 이렇게 열 항목으로 구분되고, 견혹의 88개번뇌와 합쳐 98개의 번뇌가 형성된다. 이 98개의 번뇌에 발소번뇌(抹消煩惱)로 불리는 10전(纏), 즉 무참(無懺: 수치심이 없는 마음)ㆍ무괴(無愧: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ㆍ질(嫉: 시샘)ㆍ간(慳: 인색함)ㆍ악작(惡作: 후회)ㆍ수면(睡眠: 졸음에 빠지는 정신작용)ㆍ도거(掉擧: 정신적으로 조급한 상태)ㆍ침(沈: 정신적으로 우울한 상태)ㆍ분(忿: 분노)ㆍ복(覆: 죄를 감추려는 마음)을 합쳐 108번뇌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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