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번뇌-① 번뇌의 의미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한평생 번뇌를 느끼고 경험하며 그렇게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다. 이것이 불교에서 번뇌와 번뇌의 원인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유이다. 불교의 목표는 번뇌를 끊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시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수많은 번뇌론은 단순히 철학적인 분석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생활에서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는 괴로움들을 실제로 없애기 위한 것이다. 번뇌를 끊기 위해서는 먼저 번뇌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번뇌(煩惱)란 말은 범어 끌레샤(kle?a)를 뜻풀이한 말로 본래 ‘고통’ ‘무지’ ‘욕망’ 등을 의미한다. 혹은 ‘더럽히는 것’이란 뜻으로 염(染), 오(汚), 염오(染汚)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창틀에 달라붙어 있는 먼지들처럼 마음에 달라붙어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번뇌에 의해 마음이 더럽혀지고 때가 묻으면 바로 그곳에서 괴로움이 일어나고 괴로움을 모으는 번뇌의 더러움이 없어지고 깨끗해지면 바로 그곳에서 열반의 경지를 달성할 수 있다. 번뇌는 기본적으로 마음을 어지럽혀 해탈을 방해하는 모든 심신의 장애를 일컫는다. 번뇌야말로 깨달음에 다다르지 못하는 직접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번뇌는 그 심리작용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불린다. 이를테면 번뇌의 또 다른 이름인 수면(隨眠)은 번뇌가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채 잠재돼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건에 따라 드러나기 때문에 잠자고 있을 뿐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수면이라 한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잠재돼 있지 않고 마음의 표면에 드러나 있는 번뇌를 전(纏)이라고 한다.

또한 불교경전에서는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괴로움만큼 수많은 번뇌의 종류를 들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탐욕(貪), 분노(瞋), 어리석음(痴)의 삼독(三毒)이다. 이 세 가지 번뇌는 다른 모든 번뇌의 원인이 된다고 하여 근본번뇌라고도 불린다. 이 중에 특히 어리석음은 무명(無明)이라고도 하는데 사제와 연기 등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지를 뜻한다. 이러한 지적인 면에서의 무지가 근본적인 원인이 되어 번뇌가 생긴다고 보는 것이 불교 번뇌론의 특징이다.

이러한 번뇌는 업과 관련지어 설명되기도 한다. 예컨대 백팔번뇌는 단순히 많은 번뇌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친 번뇌로서 구체적으로 예시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인간의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이라는 감관능력을 통해 대상에 대해 좋음[好], 나쁨[惡], 좋지도 나쁘지도 않음[平等]이라는 마음을 일으키므로 18가지 번뇌가 생기고 괴로움[苦], 즐거움[樂],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捨]이라는 마음을 일으키므로 18가지 번뇌가 생기므로 이 둘을 합하면 36가지 번뇌가 되고 이 번뇌들이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있으므로 108번뇌가 된다.

이러한 번뇌는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잠재돼 있는 경우도 있고 마음의 표층에 드러나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이든 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드러나는 마음의 번뇌는 그 자체가 지금 행해지는 악업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번뇌는 궁극적인 진리에 어긋나고 청정하지 않으며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불선(不善)이기 때문이다. 또한 번뇌는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행위[身口意三業]의 근원이자 원인이 되는 마음작용이다. 불교에서는 이 번뇌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업과 더불어 생사를 반복하는 고통의 근원으로 보았다.

다만 대승불교에서는 마음에 걸림이 없는 보살행에 기반 해서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라고 역설했다. 번뇌를 극복하는 방법은 번뇌라고 하는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깨우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