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호 10월 31일]

학승이 물었다.
“옛날부터 고덕(高德)들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지시하였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자네가 물어서 비로소 고덕(高德)이 있는 줄 알았네.”
학승이 말했다.
“제발 노스님께서 가르치심을 주십시오.”
조주 스님이 말했다.
“나는 고덕(高德)이 아니야.”

問 從上古德將何示人 師云 不因你問 老僧也不知有古德 云請師指示 師云 老僧不是古德

이때 학인은 답답해서 미친다. 뭘 좀 물었는데 그것에 대해 대답은 안 해주고 엉뚱한 것으로 말끝을 맺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학인은 조주 스님이 왜 이렇게 대답하는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고덕! 누가 덕이 높은 스승인가? 평등한 이 문중에 고덕은 없다. 모두 똑같은 부처이다. 조주 스님이 자기는 고덕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진심이다. 선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학승이 물었다.
“부처님의 꽃이 아직 피지 않았을 때 진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이것은 진(眞)이요, 이것은 실(實)이다.”
학인이 물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분상에 있는 일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나에게도 있고 당신에게도 있다.”

問 佛花未發 如何辨得眞實 師云 是眞是實 云是什麽人分上事 師云 老僧有分闍黎有分

부처님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게 진실을 구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조주 스님은 진실은 진실이기 때문에 항상 진실하다고 했다. 부처님이 나오건 나오지 않건 진실은 항상 진실로 존재한다. 누구든지 부처님의 꽃을 피울 수 있다. 중생은 곧 부처이다. 그러므로 진실은 언제나 밝게 드러난다. 따라서 중생이 있는 이상 거짓이란 있을 수 없다. 오직 진실만 있다.

학승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조주 스님이 물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問 如何是佛 師云 你是什麽人

유명한 말이다. 부처가 누구인지 그것을 알고 싶은가? 그러면 그대가 누구인지 그것을 알아보라. 휘어서 알지 말고 지금 곧바로 알아라.

학승이 물었다.
“곧바르게 길을 갈 때는 어떠합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곧바르게 가거라.”

問 驀直路時如何 師云 驀直路

곧바로 길을 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계속 곧바로 가라. 그런데 무엇이 바른 것인지 그것부터 알아봄은 어떠한가?

학승이 물었다.
“무엇이 현(玄)중의 현(玄)을 끊지 않는 것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자네가 나에게 묻는 것이 현(玄)을 단절하지 않는 것이야.”

問 如何是玄中不斷玄 師云 你問我是不斷玄

현(玄)이란 깊은 단계이다. 도에 들어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깊은 경지에 들어간다. 현 중의 현은 깊은 중에서도 깊은 것을 말한다. 도가 깊어진 현 중의 현의 단계는 어떠할까? 이에 대해서 보통 사람들은 휜 수염을 휘날리고 여법하게 설법하는 총림의 방장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하지는 않다. 명심하라. 도가 깊어지면 지극히 평범해진다. 누가 선사이고 보통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평범하다. 그 대표적인 선사가 바로 조주 스님이다. 조주 스님의 깊은 것은 항상 평범함에 있다. 조주 스님은 자기 자신을 ‘촌 늙은 이’ 라고 지칭했고, 고덕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초심자 구참자를 가리지 않고 방문객을 가장 위대한 자, 부처라고 칭했다. 바로 이런 가르침이야 말로 깊은 것 중에서도 깊은 것을 널리 전파하는 선사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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