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 스님과 진성 사미

궁궐 법문 초청에서
사미에게 노래시켜
진리의 의미 일깨워

만공(滿空) 월면(月面)스님께서는 서산 천장사에서 경허 스님의 친형이었던 태허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하여, 계사였던 경허스님을 시봉하며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다.
1937년 마곡사 주지를 지낼 때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 조선 31본산 주지회의가 열렸는데 당시 생사여탈권을 지닌 미나미 총독이 조선불교를 일본불교화하려고 하자 그 자리에서 호통을 칠만큼 대담했던 스님이셨다.
스님에 대한 일화는 경허 스님 못지 않을 만큼 많은데, 덕숭총림 3대 방장을 지내신 원담 진성 스님과 관련된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원담 스님의 사미 때의 법명이 진성인데, 만공스님께서는 유달리 진성 스님을 귀여워 하셨다고 한다.
1930년대 말, 만공 스님이 수덕사에 주석하고 계실 때의 일이었다. 당시 만공 스님을 시봉하고 있던 어린 진성 사미는 어느 날 사하촌의 나뭇꾼들을 따라 나무를 하러 갔다가 장난끼 많은 나뭇꾼들에게 속아 딱따구리 노래를 배워서 부르고 다녔다.


저 산의 딱따구리는 / 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 / 우리 집 멍터구리는 /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뜻을 알지 못하는 진성 사미는 노랫말이 의미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심심할 때마다 절 안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마침 만공 스님이 지나가면서 노래를 듣고 좋은 노래이니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가셨다.


그런데 어느 화창한 봄날, 서울의 경복궁의 내명부 상궁들과 나인들이 만공 스님을 찾아뵙고 법문을 청하자 좋은 법문이 있다면서 진성사미를 불러 노래를 시켰다. 만공 스님의 칭찬에 신이 난 진성사미는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순진한 동자사미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동안 내명부의 나인들은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노래를 듣고만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만공 스님께서는 담담한 모습으로 나인들에게 법문을 설하셨다.


“바로 이 노래 속에 인간을 가르치는 만고불력의 직설 핵심 법문이 있소. 마음이 깨끗하고 밝은 사람은 딱따구리 법문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이나,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이 노래에서 한낱 추악한 잡념을 일으킬 것이오. 원래 참법문은 맑고 아름답고 더럽고 추한 경지를 넘어선 것이오. 범부중생은 부처와 똑같은 불성을 갖추어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뚫린 부처씨앗이라는 것을 모르는 멍텅구리오. 뚫린 이치을 찾는 것이 바로 불법이오. 삼독과 환상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중생들이라 참으로 불쌍한 멍텅구리인 것이오. 진리는 지극히 가까운데 있소. 큰 길은 막힘과 걸림이 없어 원래 훤히 뚫린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가깝고, 결국 이 노래는 뚫린 이치도 제대로 못 찾는 딱따구리만도 못한 세상 사람들을 풍자한 훌륭한 법문인 것이오”


그제서야 나인들은 감사의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큰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떠났다. 경복궁으로 돌아간 나인들이 이 딱따구리 법문을 왕비에게 소상히 전하자 거기에 감동해서 궁으로 진성 스님을 초대해 궁궐에서 노래한 적도 있다고 한다.


스님께서는 1946년의 어느 날 저녁공양을 끝내고, 거울 앞에 앉아 껄껄 웃으며, “이 사람 만공, 자네와 나는 70여년을 동고동락했는데 오늘이 마지막일세. 그 동안 수고했네” 하시고 앉아서 입적하셨다고 한다.
이 가산소거(迦山小居)라는 글은 많지 않은 스님의 친필 중 하나다. 만공선사필이라고 원담스님이 배관(拜觀)을 해 놓았는데, 지금은 법관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신 강릉 능가사 다실에 걸려있는 글씨다.
능가사의 능가는 스리랑카를 의미하는 말이다.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또 하나의 주처인 스리랑카의 이름을 따라 가산이 보타락가산이라면 능가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제 자리에 걸려있는 글씨이다.

▲ 만공 스님의 친필 ‘가산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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