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어린이 포교의 기수 화성 신흥사 주지 성일 스님

“한 통의 살인범 재소자 참회 편지
나를 어린이 청소년 포교로 이끌어”

청소년 수련원·어린이 법당 건립
교재 제작·놀이체험 프로그램 진행

농막 법당에서 시작한 신흥사
30년 두문불출 정진 25년째

경기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도농복합시 화성. 이곳에는 지역을 대표할 만한 유명 사찰이 두 곳이 있다. 조계종 제2교구본사 화성 용주사와 화성 신흥사다. 특히 화성 신흥사는 척박했던 한국불교 어린이, 청소년 포교의 기틀을 세운 포교 중심도량이기도 하다. 이런 신흥사의 눈부신 성과의 중심에는 바로 주지 성일 스님이 있다.

‘부처님 교화공원’ 준공법회에 앞서 찾았을 때에도 성일 스님은 신도들을 상담하며 신행지도에 여념이 없었다. ‘포교’만큼 스님의 평생의 원력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는 없는 듯 했다. 이런 스님의 노력은 올해 포교대상 수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재소자 편지로 포교 원력 세워
옮긴 자리, 스님에게 던진 첫 질문은 당연히 ‘발심의 계기’였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스님에게서 40년의 역사가 흘러나왔다.

성일 스님이 신흥사 주지로 부임한 것은 1973년 여름. 여법한 전각 하나 없는 허름한 농막법당이었다. 흙벽의 기와가 덮인 낡은 법당 지붕에선 썩은 추녀물이 흘렀고, 법당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스님은 도량 정비부터 시작했다.

“사하촌에서도 사찰 주지 스님이 새로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몇 분이 왔다가 갔지만, 신도는 아니었습니다. 도량을 정비하고 법당 문을 열고 첫 법회를 가졌는 데 12명이 옵디다. ‘포교가 급선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고민이 깊어질 때쯤, 스님은 한 재소자의 편지를 받는다. 당시 성일 스님은 매주 한 번씩 수원교도소에서 법문을 하고 있었다. 이에 교화를 받은 한 20대 살인범 재소자가 스님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벌써 40년이 지난 일이지만, 스님은 그 편지 내용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다.

“편지 내용은 이랬습니다. ‘세상이 돈만 있으면 다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남은 생은 정말 착하고 바르게 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스님은 우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사탕부터 사서 걸망에 넣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그때마다 부처님 전생담이나 경전 속 일화를 재미있게 들려줬다.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아이들도 이내 스님과 살갑게 지내게 됐다.

▲ 1995년 열린 어린이 여름불교학교모습. 입추의 여지없이 아이들이 들어차있다.
어린이 불교학교를 시작하다
자신감이 붙은 스님은 1975년 처음으로 어린이 불교학교를 개설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60명의 어린이들이 몰려왔다. 공간과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아침에 학교를 열어 점심을 먹이고, 오후에 귀가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학원이나 과외 교육이 없던 시절, 사찰에서 예절을 배우는 불교학교에 대해 지역 학부모들의 호응도는 높았다. 어린이 불교학교를 개원 2년 만에 학생 수는 200~300명으로 훌쩍 뛰었다.

“당시 신흥사는 조그마한 법당이었지만, 여법한 어린이 교육수련장이자 청소년들의 쉼터였죠. 부처님 품안으로 오는 어린 불자들을 원만히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전용 교육 공간이 꼭 필요했습니다.”

삼보정재를 아끼고 아낀 스님은 1986년 11월 청소년 수련원을 세우게 된다. 개원 당시 신흥사 수련원은 불교계 유일의 어린이, 청소년 교육 시설이었고 교계 안팎의 관심도 쏟아졌다.

이런 관심은 이듬해에 바로 나타났다. 1987년 수련원 개원 이후 첫 여름 수련법회에 7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찾아왔다. 인솔교사와 스님들까지 합치면 800명에 달했다. 결국 인근 군부대 협조를 얻어 군용텐트를 사찰 경내 설치했다.

“운력을 진행하는 데 청소할 공간이 없을 정도였죠. 힘들었지만, 즐거웠습니다.”

신흥사 어린이불교학교가 인기를 끌 수 있던 요인 중 하나가 자체 프로그램과 교재였다. 매회 진행됐던 수련회마다 새로운 교재를 만들고 놀이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도전이었다. 스님은 지금도 사용했던 모든 교보재들을 보관하고 있다.

기도로 일궈온 어린이 도량 불사
난관도 많았다. 수련원 첫 불사 이후 스님에게 안겨진 부채는 1억 2천여 만원. 사실 포교는 생산이라기보다 투자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찰 재정을 아끼고 아꼈지만, 부채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교를 중단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스님은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기기로 했다. 부처님 법을 전하는 수행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였다. 그렇게 1988년 스님은 첫 두문불출 10년 기도에 들어갔다.

“하루 9시간을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찾아온 신도들을 만나서 상담도 하고 법문도 했죠. 저는 부처님 가피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해요. 나 혼자 고민했던 부채 문제가 기도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해결됐습니다.”

스님의 기도정진은 불자들에게 큰 감화로 다가왔다. 스님과 함께 기도 정진하는 불자 수는 자연스럽게 늘어갔고, 신흥사의 가람들도 제자리를 찾았다. 1990년에 큰법당이 준공됐고, 1993년에는 청소년 교육관이 건립됐다. 1994년에는 어린이 전용법당을 세웠다.

모든 불사는 어린이, 청소년 포교에 맞춰 진행됐다. 사찰 편액들도 아이들의 눈높이 맞춰 전부 한글로 제작했다. 특히 어린이 법당은 자비로운 관세음보살과 천진난만한 선재, 문수 동자상이 모셔졌다. 단청과 벽화 등도 모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색상과 문양을 사용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진 불사, 신흥사가 어린이, 청소년 포교의 산실로 일컬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40년 포교 원력과 더불어 10년씩 세 차례 걸쳐 진행되고 있는 30년 두문불출 기도정진은 올해 25년째로 신흥사의 원동력이다. 그렇다면 스님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도법이 있을까? 스님은 단박에 “그런 것 없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도를 기복이라고 비판하는데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지극한 마음을 담아 서원하고 기원해야 합니다. 불보살의 가피력은 반드시 있습니다. 다만 너무 기도 가치에만 의존해 머무르려하지 말고, 마음공부도 열심히 해 성불에 이르도록 정진하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불교대학을 통해 불교교리를 바로 알고 이를 실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 신흥사 불사의 특징은 전부 어린이를 위해 맞춰져있다. 사진은 1994년 문을 연 어린이 법당.
천원의 원력으로 지어진 수선당
농막법당에서 어린이 청소년 포교도량으로 발전하기까지 원력과 기도와 더불어 신흥사를 지탱한 것은 스님의 검소함이었다.

특히 신흥사의 ‘수선당’ 불사는 스님의 절약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화다. 1973년 처음 신흥사 주지로 부임했을 당시 스님은 한달에 1000원을 예금하는 은행적금을 들었다. 1년을 모았더니 12400원이 됐다. 이를 그대로 예치했고, 형편이 나이지면 2000원씩 붓기도 했다. 10년 기도 입재에 앞서 금액을 확인하니 1만원이었던 돈이 1800만원이 돼 있었다. 어려울 때를 대비한다는 마음에서 스님은 다시 은행에 예치했다. 10년 기도 회향 이후 이 적금은 5400만원으로 불어있었다.

“천원의 힘이 이렇게 큰지 몰랐어요. 이 적금으로 수선당을 지었습니다. 너무 기쁜 마음에 국내에서 제일 좋다는 오대산 육송을 직접 사왔지요. 수선당은 1000원의 원력과 내 발품으로 지어진 법당입니다.”

이번에 조성된 ‘부처님 교화공원’도 마찬가지였다. 44억원이 들어간 대작불사는 신도와 불자들에게서 30억 원의 불사금이 모연됐고, 나머지 모자른 재원은 스님의 보험금으로 해결했다. 그간 보험설계사를 하는 신도들의 부탁으로 매년 하나, 둘씩 들어준 보험들이었다.

“가끔 신도들이 와서 보험을 어렵게 부탁해서 들어준 것이 매년 2, 3개가 됐습니다. 불사를 하면서 확인해보니 금액이 상당했죠. 만기된 것은 찾고, 현재 내는 것들은 전부 해약하니 모자랐던 대금들이 해결됐습니다. 아마 신도들이 부탁한 보험들은 오늘을 위해 사용하려고 계약했던 것 같습니다.”

매일 기도·법회 힘들어도
아이들 소감문 읽으면 ‘환희심’
21일 준공한 ‘부처님 교화공원’
가족 신행문화의 새 장 기대

▲ 매년 새롭게 발간되는 불교학교교재<좌>와 성일스님의 저서들<우>. 스님의 원력과 노하우가 담겨있는 교재와 저서는 신흥사만의 장점이다.
켜켜이 쌓여가는 인연의 공덕
40년이라는 시간, 척박했던 한국불교 어린이 청소년 포교를 이끌었던 스님에게서 가장 보람됐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스님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아이들이 쓴 소감문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매일 기도하고, 법회하고, 아이들과 수련회를 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를 만큼 힘들었지만, 아이들의 소감문을 읽을 때마다 피로가 다 가시더라구요.”

스님은 어린이불교학교, 불교대학 체험기를 묶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제하의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을 보면 당시 학생들이 신흥사의 프로그램을 통해 느낀 감흥들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내가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주지 스님 설법을 듣는 일이었다. 스님께서 동화 형식으로 이야기해주시니 무척 배울 것이 많고 재미있었다. 이런 설법은 하루종일 듣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이윤정, 방배초등 6년, 1985년 어린이불교학교)

“나는 평상시 교회 가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불교학교를 보내고 나니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된다. 앞으로 부처님을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여러 아이들에게 법보시를 해야겠다.”
(설원영, 안산 중앙초등 4년, 1991년 겨울불교학교)

스님과의 인연으로 출가의 길을 가는 제자도 생겨났다.
“김천 직지사 중암에 있는 진량 스님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신흥사 어린이 불교학교를 다녔지요. 5대 독자인데 해군 군법사로 전역하고 이제는 어엿한 수행자의 길을 가고 있지요. 가끔 신흥사도 들리곤 한답니다. 출가 여부를 떠나 신흥사에서 수련했던 어린 불자들 모두 저에게는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 1992년 여름불교학교. 스님은 40년의 포교 인생이 힘들었지만 즐거웠다고 회고했다.
교화공원, 새로운 도전의 시작
스님은 최근 새로운 도전에 들어갔다. 바로 ‘부처님 교화공원’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도량을 문을 연 것이다. 공원을 건립한 이유도 변화하는 어린이,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다.

‘부처님 교화공원’은 부처님 초전 법륜부터 제1차 경전 결집까지 총 13장면이 석상으로 꾸며졌다. 또한 부처님 팔상성도, 〈부모은중경〉도 석판으로 만들어졌다,

‘부처님 교화공원’은 시각적 조형물만 아니라 청각적 교육에도 특별히 신경을 썼다. 조성된 석상 앞 안내판에 서면 음향센서가 자동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한 경전의 법문이 장엄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온다. 법문 녹음은 유명 성우인 박일 씨가 맡았다. 이 같은 시·청각의 조화는 성일 스님의 아이디어다.

“요즘 아이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예전과는 달리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줘도 30분 이상 집중하지 못해요. 다들 수련회에 오기 전에 너무 지쳐있더라구요. 갇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재미있게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교화공원 건립이 생각이 났습니다.”

스님은 ‘부처님 교화공원’을 부처님 법을 배우는 가족 교육 도량이자 수행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새로운 신행문화를 만들겠다는 스님의 포부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전 속에서 만난 2600년 전 부처님 제새 당시 사람들의 삶 역시 오늘날 현대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교화 이야기릍 통해 삶의 지혜를 얻고 희망찬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구봉산 너머로 해가 뉘엿이 넘어간다. 옆으로는 이번에 조성된 교화공원이 장엄하기만 하다. 신흥사의 새로운 원력과 도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성일스님은 … 1963년 해인사 삼선암에서 장윤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하여 1969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1973년 화성 신흥사 주지로 부임해 현재 사격을 만들었다. 스님은 불교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어린이포교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1975년 어린이여름불교학교를 개최한 뒤 한해도 거르지 않고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법회를 개설해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수만 명의 어린 새싹들을 길러냈다.그 공로로 조계종 총무원장 표창패(1984년), 경기도 선행도민상(1986년), 경인봉사대상(1986년), 법무부장관 표창패(1987년), 조계종 포교대상 공로상(1996), 만해대상 포교상(1998년), 조계종 포교대상 공로상(2006년), 조계종 포교대상 대상(2012년)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법을 설하여 주옵소서Ⅰ, Ⅱ〉, 〈어린이 불교학교 지침서〉, 〈청소년 불교학교 지침서〉, 〈신도포교 지침서(상·하)〉, 〈현대관음기도영험록〉,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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