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1938년 3월 고 이병철 회장이 세운 삼성상회로 출발하여 오늘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그룹은 무역·기계·조선·건설·전자·화학·섬유·제지·유통·금융·서비스·식품·문화예술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영업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컨설팅 회사인 인터브랜드가 최근 발표한 ‘세계 100대 베스트 브랜드 조사’에서 삼성전자가 9위로 뛰어올라 아시아 기업 중 1위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은 대한민국 경제 산업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으며, 문화재단, 생명공익재단, 복지재단, 호암재단을 운영하면서 우리 사회에 인문학적 가치의 향상과 문화발전에 기여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 거대한 삼성그룹을 경영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해서 부를 창출하고 있으며 세상과 관계하고 있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애플과의 소송에서 삼성이 승소하기를 바란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국민의 마음이다.

기업가, 특히 한국의 재벌에게 솔직히 학자나 종교인에게 요구하는 정도의 도덕성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예로부터 작은 규모든 큰 규모든, 장사하는 이들에게도 ‘상도덕’이라는 것이 있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써 공존공영의 윤리를 지켜야 할 책임은 경영인에게도 똑같이 주어진다. 최소한 이웃에게, 그리고 공적 개념을 갖는 지역공간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삼성이 조계사 코앞 1,700여 평의 대지위에 15층에서 20층 규모의 대형호텔을 신축할 예정이란다. 이 소식은 지난해부터 나돌더니 근래 사실로 확인되었다.

역사문화지대의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우리가 소위‘딴지’를 걸지 않는 것은 모두가 그곳을 공적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보호가 필요한 지역에 이윤추구를 주목적으로 하는 개발로 인해 갈등이 발생할 경우, 갈등을 촉발한 당사자가 문화재보호법 등 법률적 관계와 행정기관의 허가를 운운하는 것은 평범한 이들에게도 지탄을 받는 매우 저급한 행동이다.

현장에 대한 공간인식, 역사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과 상식을 갖추고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삼성이란 굴지의 대기업에서 조계사-인사동 지역에 대형호텔을 건축해서 운영한다는 발상 따위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도 원석 자체보다는 원석을 어떻게 가공하여 어떤 모양으로 디자인해 내놓느냐에 따라 그 값어치의 정도가 달라진다. 아름다운 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주변의 경관이다. 이 말은 거꾸로 주변의 경관 여하에 따라 그것의 가치가 저평가되고 생명력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문화재나 보호시설 주변의 건조물도 결코 이와 다르지 않다. 제아무리 현대식의 번듯한 호텔건축물이라 해도 역사의 향기가 짙게 배인 전통문화 지역이나 교육시설의 주변에 위치한다면 그 자체가 문화와 교육에 대한 테러요, 우리 사회 공적 자산에 대한 침해다.

용인의 삼성 호암미술관은 전통스타일로 꾸며져 있고 지근거리에 조선시대의 왕릉을 방불케 하는 고 이병철 회장의 묘소가 있다. 삼성이 그 소유의 토지 내에서 자신의 시설을 보호하는 것을 무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삼성은 이러한 보호개념을 사회의 공적 영역으로는 왜 확대하지 않는가?

자신들이 소유한 문화재를 그저 세금포탈이나 비자금 세탁을 위한 도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그룹은 민간으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수집해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용인 호암미술관과 그 수장고에 보관 중인 문화재에 대한 공식 통계가 공개된 적은 없다.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있다면 보유한 문화재들을 낱낱이 공개해서 민족문화유산의 공공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을 천명해야 한다.

조계사-인사동 일대는 가시적인 담장이 없을 뿐이지 보호지역으로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묵시적 마음의 경계가 있는 지역이다. 문화적 양심과 사회적 책임이 있는 경영자라면 결코 고층건물을 지을 수가 없다. 삼성이 이 지역에서의 호텔 신축을 없던 일로 하기를 바란다.

(법응 스님/ 불교사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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