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동자와 어린 왕자

 

사하라 사막 조종사와의 만남

보현행원 찾는 구법행의 하나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오행산에서 풀어주어 제자를 만들어 서역으로 떠나는데, 가는 길에 여섯 명의 강도를 만난다. 강도들을 본 손오공은 그들을 모두 때려죽인다. 손오공의 살생을 본 삼장은 엄히 꾸짖는데, 손오공은 버럭 화를 내고 떠나 버린다.

이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석가세존이 만드신 세 개의 머리테를 건네는데, 그것이 바로 긴고아와 금고아 등이다. 그리고 긴고주와 금고주를 외우면, 그 테는 머리를 파고들어 눈이 튀어나오고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겪는다.

그리하여 옥황상제도 어찌 못하는 신통력을 지닌 손오공은 순한 양처럼 삼장법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두 개의 머리테는 서역길에서 만난 흑풍산 흑풍괴와 화염산의 홍해아에게 씌워지는데, 여기부터 흥미진진한 사실이 전해 온다.

흉악한 바람으로 삼장 일행을 괴롭힌 흑풍괴는 금고아를 쓴 뒤 관음보살이 거주하는 낙가산을 지키는 수산대신이 된다. 관음보살은 우마왕과 나찰녀의 아들 홍해아에게 금고아를 씌워 제압한 뒤 선재동자로 삼는다.

즉 낙산사를 지키는 보타락가산 산신은 흑풍괴였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인 고려불화의 수월관음도마다 그려져 관세음보살을 시봉하는 홍해아는 선재동자가 된 것이다. 홍해아가 살던 화염산(火焰山)은 사실 신장 자치구의 텐산 산맥에 위치한 붉은 사암 언덕이다.

여름이면 지금도 섭씨 50도 이상 올라가는 불덩어리인 이 산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지상 온도계가 설치되어 있고, 당시에 수행하던 승려들의 이름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8미터 크기의 삼장법사 일행과 우마왕들의 동상이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충선왕 2년(1310)에 그려져 왜구에게 약탈당해서 지금은 일본 경신사가 소유하고 있는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에 보면, 머리에 띠를 달고 있는 선재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수월관음도인 이 탱화를 그린 여러 화원들은 이미 선재동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화엄경에 따르면 선재동자는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법을 구한다. 구도의 열정에 불타는 선재는 "원컨데 저에게 해탈의 문을 열어 주시고 모든 뒤바뀐 헛된 꿈을 멀리 여의게 해주소서(願開解脫門 遠離諸顚倒)"라고 문수보살에게 간청한다.

그 간청을 받은 문수보살은 “깨달음의 높은 뜻을 발하여(發菩提心) 선지식을 구하고(求善知識) 보현행원을 갖추어라(具足普賢行願)”라고 충고해 준다. 즉 선재동자는 화엄사상을 실천하는 전방위의 보살인 것이다.

이런 선재동자와 어린 왕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프랑스의 비행사이자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1943년 발표한 소설인 〈어린 왕자〉는 사실 그가 수월관음도의 선재동자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한다.

지금은 저작권도 없어서 많은 출판사들이 아직도 다투어가며 작자가 직접 그린 아름다운 삽화를 넣은 많은 판본들이 시중에 넘쳐난다. 현재까지 18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아직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는 자기의 작은 별에서 여러 별을 거쳐 지상에 내려온 어린 소년왕자와 만난다. 비현실적인 이 만남은 실은 선재동자의 구법행의 하나이고, 그 조종사 쌩떼쥐베리는 쉰네번째 선지식이 되는 것이다. 어린 왕자가 소설속에서 말한 대사들은 지금도 주옥(珠玉)처럼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탁해져버린 어른의 세계에서 다시 한 번 순수와 원형으로 돌아가는 지침이 되어준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어릴 적 읽은 어린 왕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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