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탑의 나라 미얀마를 가다 ① 양곤-쉐다곤 파고다

함께 순례한 봉은사 스님들이 황금대탑 쉐다곤 파고다를 참배하고 있다.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 사람들의 자존심이다.
‘황금의 나라’, ‘불탑의 나라’ 미얀마. 선한 눈망울의 사람들이 반겨주는 미소가 아름답고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숲과 황금불탑이 매력적인 미얀마는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나라다.
2천5백년 동안 이어져 온 불심(佛心)으로 만들어진 미얀마 불교유적지를 지난 9월 봉은사 자비봉사단과 함께 다녀왔다. 현장에서 느낀 감동을 5회에 걸쳐 전한다.

5700만 인구 대부분이 불자
부처님 재세시 세운 쉐다곤 파고다
왕조 바뀔때마다 증축…현재 모습
사찰은 교육·문화·복지시설

보통 미얀마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아웅산 수치, 스님, 시민들의 저항, 이에 대한 군사독재의 무자비한 탄압 등 정치적·사회적 불안과 혼란, 폭력, 폐쇄 등의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미얀마에 도착하면 지금까지의 그런 선입견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린다.

“밍글라바(안녕하세요)”라고 친절히 맞아주는 밍글라돈 국제공항을 거쳐 나오면 여행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파고다’를 만난다.

미얀마 순례의 시작과 끝은 양곤에서 시작하며 그 양곤 여행의 시작도 파고다에서 출발한다. 19일 도착한 밍글라돈 국제공항에서의 첫 인상은 매우 평화롭다는 것이었다. 하노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바라본 베트남의 모습과 달리 복잡함이 없는 조용함이 느껴졌다. 분주히 움직이는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얽힘이 없다. 미얀마를 상징하는 색은 황금색과 녹색. 숲이 많은 미얀마에서도 양곤은 ‘동방의 정원도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나무와 숲이 많다.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숲 사이사이에는 파고다가 자리하고 있다.

미얀마의 민중상징, 쉐다곤 파고다

이중 양곤에 위치한 황금불탑 ‘쉐다곤 파고다’는 미야마의 상징이다. 쉐다곤 파고다는, 바고 짜익티요 황금바위 및 만달레이 마하무니 파고다와 같이 미얀마 3대 성지로 꼽힌다.

양곤의 파고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슐레 파고다를 중심으로 쉐도미앗 파고다, 거바예 파고다 등 군부에서 지은 현대적인 파고다와 쉐다곤 파고다를 중심으로 차욱타지 파고다, 보떠타웅 파고다 등 부처님 재세 시기에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어진 역사적인 파고다가 그것이다.

보통 불탑은 부처님 입적 후 부처님 사리 등을 봉안한 근본 8탑에서 시원을 찾는다. 하지만 쉐다곤 파고다는 약 2500년 전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에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 미얀마의 두 무역상인 타푸사와 발리카 두 형제가 부처님을 만나면서 조성됐다.

두 형제는 부처님에게 의복 등을 공양했는데 부처님은 여덟 발의 머리카락을 내려 미얀마 땅에 그 머리카락을 봉안한 파고다가 건립된 것이다.

처음 쉐다곤 파고다는 작은 불탑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왕조를 거치며 그 위에 증축을 거듭해 현재의 거대한 불탑으로 변했다. 미얀마에서는 3년에 한 번씩 국가행사로 개금불사를 진행한다. 개금불사 때마다 사용되는 금의 양은 약 7톤에 달한다.

지금의 쉐다곤 파고다는 몬족이 미얀마에 세운 페구왕조 때인 1453년에 증축됐다. 높이 100m, 둘레 426m에 달하며 기단 부분에는 64개의 작은 불탑이 탑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불탑이다. 화려함과 장대함, 그리고 섬세한 조각품들로 많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지극한 경배의 대상이자 국가의 자존심이다.

외면의 화려함과 별개로 쉐다곤 파고다를 순례하면 자연스럽게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을 느끼게 된다. 영국 식민지 시기에서부터 군부독재 시기까지 쉐다곤 파고다는 스님과 미얀마 사람들이 항쟁의 불길을 올린 곳이었다. 1988년 민주화 운동, 1990년 승가 항쟁, 2007년 사프란 혁명이 쉐다곤 파고다에서 일어났다. 특히 사프란 혁명에서 스님들은 ‘저 난폭하고 무자비한 장군들, 나라의 재물을 훔쳐 살아가는 큰 도둑들을 거부합니다. 이로써 공양을 받거나 설법을 하지 않습니다’라며 민중의 지원자에서 저항의 주체로 나섰다.

민중을 대변하는 쉐다곤 파고다에서는 어디서나 열심히 불공을 올리는 미얀마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경내에는 150여 개의 부속건물과 파고다가 있고 각 요일 별로 지정된 부처상이 있는데 많은 미얀마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요일에 불전을 바치고 소원을 빌며 나이만큼 물을 붓는 의식을 행한다.

이 쉐다곤 파고다 경내에는 마하간다종이 있다. 무게가 23톤에 달하며 높이가 2.2m, 직경이 1.95m 인 이 마하간다종에 얽힌 일화에서도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은 느껴진다. 1825년 미얀마와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군이 이 마하간다 종을 강탈해 본토로 옮기려 했다. 하지만 배가 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양곤강에 가라앉았다. 영국군은 종을 끌어 올리려 하였으나 당시 기술로는 도저히 건져내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 때 양곤의 한 승려가 영국군에게 만약 그 종을 끌어 올린다면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놓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영국군은 영국 기술로도 못하였는데 미얀마인들이 무슨 기술로 끌어올리겠나 싶어 이를 허락하였다고 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3일 만에 그 종을 강바닥에서 끌어올렸는데 그 방법은 속이 빈 대나무를 침몰 지점으로 운반한 후 많은 사람들이 번갈아 잠수하며 종에 대나무를 붙였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종은 물위로 떠올랐고 이 종은 미얀마에 남을 수 있었다.

부처님 108 전생담이 기록된 차욱타지 와불상 발바닥 . 미얀마에서 두번째로 큰 와불상으로 벽면에는 한국사찰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미얀마 사람들의 희망, 불교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은 쉐다곤 파고다 인근의 차욱타지 와불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와불상인 차욱타지 와불상은 길이 65.8m, 높이 17.6m에 달한다. 차욱타지는 극락의 6층이라는 뜻으로 와불상의 발바닥에 108번의 부처님의 전생이 새겨져 있다.

이 와불상이 모셔져 있는 차욱타지 파고다는 1907년 일반 신도의 보시에 의해 10년 만에 완공됐다. 건물벽에는 시주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가만히 보면 한국 불자들 및 사찰들의 이름도 많이 보인다.
반면 슐레 파고다는 번화가의 상징역할을 하고 있다. 낮에는 도시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양곤 남북 관통 도로의 중심에 있어 이정표 역할을 하며 밤에는 조명을 받아 도심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빛 야경 탑으로 변한다. 도시 중심의 상징으로 상가로 둘러싸여 있고 시장, 버스 종점 등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사원에서 담소를 나누는 미얀마 스님들. 출가자는 재가자와의 신체접촉 등이 엄격히 금지돼있다. 사원에서 출가자들의 모습은 계율로 정해진 것 외에는 자유로웠다.
이처럼 미얀마의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는 불교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양곤에서도 새벽마다 스님들이 탁발을 행하며 이른 아침 미얀마사람들은 스님들에게 시주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대도시인 양곤을 벗어나 교외지역으로 향하면 불교의 역할은 보다 중요해진다. 미얀마 마을에는 사찰이 하나 이상 있는데 미얀마 말로 ‘짜웅’이라 부른다.

학교 또한 ‘짜웅’인데 정부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 마을 사원을 다니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만나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의 서당과도 같다. 이곳에서 미얀마 아이들은 스님에게서 불교소양과 함께 부모,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배운다.

사찰은 단순히 종교시설 역할뿐만 아니라 교육, 복지, 문화시설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인구의 90% 이상이 불교도인 미얀마 사람들에게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생활이다.

불탑을 짓는 것을 평생의 공덕으로 생각하는 미얀마 사람. 주 민족인 버마족을 비롯해 샨족과 카렌족, 카친족, 인따족 등 수많은 소수 민족이 있지만 각자의 고유한 언어와 풍습을 간직하며 공존할 수 있었던 데는 불심으로 하나가 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세계 극빈국 중 하나이면서도 불심으로 마음만은 풍족한 그들에게서 삶의 희망이 느껴졌다.

불단에 기도하는 스님들. 불단의 꽃공양이 이채롭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지만 불단에 올려진 꽃처럼 그들의 마음만큼은 풍요로웠다.


 

 


  가족단위로 축원하는 미얀마 불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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