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깃든 숲에 사리불과 부루나 설법이…
어둠 깃든 숲에 사리불과 부루나 설법이…
  • 박재완 기자
  • 승인 2012.10.1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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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 <상>출가 인연

국사의 길보다 출가에 마음 둬
비유설법의 백미 칠거경 남겨

부처님 십대제자 가운데 설법을 너무나 잘 했던 부루나 존자의 이야기다. 그의 설법으로 제도된 이들이 무려 9만 9천 명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를 설법제일이라고 했다. 〈불본행집경〉 부루나출가품에서 “너희들은 꼭 알아두어라. 법을 설하는 사람 가운데서 가장 제일인 사람은 부루나이니라.”고 했다. 경전이 전하는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는 두 사람이다. 초기불전에 등장하는 부루나와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부루나가 있다. 출신과 출가 동기 등이 다르다. 여기서는 〈불본행집경〉에서 전하는 부루나 존자를 근거로 했다.

 부처님과 같은 날 태어나다
룸비니동산. 왕비는 산기를 느꼈다. 왕비는 산통도 없이 오른쪽 옆구리로 태자를 낳았다. 태어난 아기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내 오직 존귀하니 온통 괴로움에 휩싸인 삼계(三界)를 내가 평안하게 하리라.” 기원전 624년 사월 초파일, 카필라국의 태자 싯달타가 태어났다. 부처님이다. 왕비의 고향 꼴리야 룸비니에서 부처님의 탄생 소식이 전해지던 바로 그날, 카필라국의 국사(國師)였던 부루나의 아버지도 아들 부루나의 탄생 소식을 듣는다. 카필라국의 왕이자 부처님의 아버지인 정반왕도 국사의 득남을 축하했다. “축하하오. 훗날 태자가 보위를 받으면 국사의 아들 또한 국사의 자리를 잇게 할 것이오.” 부루나는 그렇게 부처님과 같은 날 태어났고, 싯달타 태자가 왕위를 이어야 하듯 부루나 역시 국사의 자리를 이어야 할 인연을 타고 났다. 하지만 태자와 부루나 모두 그 길을 가지 못한다.

카필라국 국사의 아들 출가
“나의 부친은 이미 정반왕의 국사가 되어 돌보는 일이 많고 여러 가지 기예를 갖추어 왕을 돕고 백성을 위해 일한다. 정반왕의 아들 싯달타 태자는 정반왕과 다름없어,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만약 나의 부친이 안 계시게 되는 날, 내가 싯달타의 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부친은 잠시도 한가하지 못하니, 나 또한 국사가 된다면 나의 삶도 그럴 것이다.” 부루나는 국사의 자리에 마음이 없었다. “나는 지금 어떤 일을 해야 좋을 것인가. 나는 지금 오직 집을 떠나 출가할 생각 밖에 없는 것이다.” 부루나는 오직 출가할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부루나는 일찍이 베다(브라만교 성전의 총칭)를 비롯한 여러 서적에 두루 통달했고, 이미 많은 학문에 도달해 있었다. 여러 학문과 사상에 일찍 눈뜬 그 역시 생사(生死)의 괴로움만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지금 어떤 일을 하여 어떤 인연을 지을 것인가. 나는 지금 오직 집을 버리고 출가함이 옳을 것이다.” 〈불본행집경〉에서 적고 있다. 불면의 밤들을 보내던 부루나 존자는 부모님께 인사도 올리지 못한 채 도반 30명과 함께 출가한다. 설산(雪山)에 들어가 정진한 그는 신통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신통으로 부처님의 존재를 알게 된다.

부처님의 성도와 첫 설법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없어져도 좋다.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보리수 아래서 싯달타 태자가 눈을 떴다. 샛별이 마지막 빛을 사르는 동녘 하늘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이 땅에 오신 지 35년, 진리를 찾아 궁을 나선 지 6년째인 기원전 589년 12월 8일이었다. “번뇌는 모두 사라졌다. 번뇌의 흐름도 사라졌다. 더 이상 태어나는 길을 따르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괴로움의 마지막이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이 진리를 전해야 할까.” 부처님은 하늘의 눈으로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다섯 수행자들을 본다. 부처님은 바라나시 녹야원으로 향했다. “수행자들이여, 잘 들어라. 여래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그대들도 머지않아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부처님은 설법했다. “수행자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발생에 관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그리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팔정도(八正道)를 설하셨다. “정견(正見 바로 보는 것), 정사유(正思惟 올바로 생각하는 것), 정어(正語 올바로 말하는 것), 정업(正業 올바로 행동하는 것), 정명(正命 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 정정진(正精進 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정념(正念 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정정(正定 올바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괴로움에서 그대들을 구할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수행자들이 말했다. “거룩하신 스승이여, 부처님께 출가하겠습니다. 받아주소서.” “오라, 비구들이여.” 그렇게 부처님의 첫 설법이 있었다.

부처님을 만나다
“싯달타 태자가 성왕위를 받을 시절에 이르렀으니 멀리서나마 태자를 보아야겠다.” 싯달타 태자의 출가를 알지 못했던 부루나 존자는 자신의 신통으로 태자를 본다. 태자는 부처님이 되어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의 존재를 알게 된 부루나는 도반들과 함께 부처님이 계시는 마가다국의 왕사성으로 향한다. 어느 마을을 지날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 겁니까?” “부처님 설법 들으러 갑니다.” 부루나도 도반들과 군중들을 따랐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가던 부루나는 멀리 군중 너머로 부처님을 본다. 법석이 열렸다. “나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온 수행자들은 앞으로 나오라.” 부루나는 죽림정사에 계셔야 할 부처님이 이곳에서 법석을 연 이유를 깨달았다. 부처님은 부루나가 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부루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부루나입니다. 거룩하신 스승이여, 부처님께 출가하겠습니다. 받아주소서.” 왕의 자리를 버린 태자와 국사의 길을 버린 국사의 아들은 그렇게 만났다. “오라, 비구여!”

부루나 설법의 백미 칠거경(七車經)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머물고 계셨다. 고향에서 안거를 마친 비구들이 돌아왔다.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물었다. “고향 마을에서는 여러 비구들 중에서 누가 대중들의 존경을 받는가?” 비구들이 말했다. “부루나 존자가 대중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부루나 존자의 설법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대중 속에 사리불 존자가 함께 있었다. 부루나 존자의 존재를 알게 된 그는 부루나의 설법이 듣고 싶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부루나를 만나게 된다.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안거를 마친 부루나가 부처님을 찾아 예배했다. 그리고 숲으로 돌아갔다. 해질 무렵. 사리불이 수행 중인 부루나에게 다가갔다. “현자여, 그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범행(梵行)을 닦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어 사리불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일곱 가지 ‘청정’을 가지고 법을 청한다. “현자여, 그 말은 계행(戒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 부처님을 따라 범행을 닦는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부루나는 “아닙니다.”고 대답한다. 사리불이 다시 묻는다. “그러면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 부처님을 따라 범행을 닦는 것입니까?” 부루나는 다시 “아닙니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견해를 청정하게 하기 위해 범행을 닦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의심을 끊는 청정, 길과 길이 아닌 것에 대한 지견의 청정, 출세간적 길에 대한 지견을 통한 청정, 지견에 의한 출세간적인 청정을 위하여 부처님을 따라 범행을 닦는 것입니까?” 사리불은 출가수행의 근본 목적을 묻고 있는 것이었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것은 집착이 없는 완전한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불은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루나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루나가 “아니다.”고 대답한 것은 각 물음의 명제들은 ‘궁극’이 아니라 방편이고 과정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부루나 역시 사리불의 물음이 무명에서 온 물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상수제자 사리불과 설법제일로 존경받는 부루나가 부처님의 법을 서로에게 설하고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부루나의 위대함은 사리불의 물음 아닌 물음에 ‘부루나’의 설법을 했다는 것이다. 사리불이 다시 묻는다. “그러면 무슨 마음으로 부처님을 따라 범행을 닦는 것입니까?” 부루나가 대답한다. “무여열반에 들기 위해서입니다.” 숲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설법제일 부루나의 ‘비유’의 설법이 이어진다. “사리불 존자여, 들어주십시오. 옛날 구살라왕 바사닉이 사위국에 있었는데, 바계제에 볼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슨 방법을 써야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하루에 갈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바계제에 이르는 길 중간에 일곱 수례를 나누어 놓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 수레에 오른 그는 두 번째 수레에 이르자 지친 첫 번째 수레를 놓고 두 번째 수레에 올랐습니다. 세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역시 지친 두 번째 수레를 놓고 수레를 갈아탔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하루 만에 바계제에 도착했습니다. 신하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천왕께선 하루 동안에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오셨습니까?’ 일곱 번의 수레를 타고 왔다고 하자, 신하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첫 번째 수레를 타고 오셨습니까?’ ‘아니다.’ ‘그러면 두 번째 수레를 타고 오셨습니까?’ ‘아니다.’ ‘그러면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수레를 타고 오셨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첫 번째 수레를 타고 두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첫 번째 수레를 놓고, 세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두 번째 수레를 놓고, 일곱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여섯 번째 수레를 놓고, 일곱 번째 수레를 타고 왔느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의 일곱 가지 청정은 일곱 번의 수레였던 것이다. 다음 수레를 타기 위한 과정 속의 수레인 것이다. 지계수행으로 청정범행을 닦고, 선정수행으로 마음을 닦고, 지혜수행으로 진리에 대한 의혹이 사라진 정견을 성취한다. 계,정,혜 삼학을 닦는 수행이다. 정견을 갖추면 진리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끊어서 바른 길과 바르지 않은 길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른 길을 완전하게 알고 보는 눈, 즉 청정지견을 갖추면 팔정도를 실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해탈지견을 갖추어 완전한 열반에 들 수 있다는 부루나의 설법인 것이다. 중아함경에서 전하고 있는 ‘칠거경’이다.

부루나 존자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한 분으로, 부루나는 이름의 앞부분을 줄여 부른 음사어다. 갖춘 이름의 음사어는 부루나미다라니자이다. 한역은 만자자(滿慈子)이다. 만(滿), 즉 부루나는 자신의 이름이고, 자(慈), 미다라는 어머니의 성이다. ‘자씨 성을 가진 어머니의 아들’이란 뜻이다. 아버지는 부처님의 아버지, 카피라국의 정반왕의 국사였다. 부처님과 같은 날 태어났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녹야원에서 초전법륜을 굴리자, 부처님을 찾아가 귀의했다. 비구계를 받고 수행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했으며, 변재에 능하고 이치를 잘 분별하여 법을 설하고 교화하는데 전념했다. 그의 설법을 듣고 해탈한 이들이 9만 9천 명에 달했다. 하여 부처님은 그를 설법제일이라 불렀다. 자신의 고향 수로나에서 삼명(三明)을 얻고 열반에 들었다. (그림은 조향숙씨의 석굴암 부루나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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