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연기설-②여러 관점의 십이연기

 십이연기(十二緣起)란 인간이 경험하는 괴로움[苦]의 전개과정을 열두 가지의 인과관계로 분석해 놓은 것이다. 초기불교의 경전에서는 이 열두 항목을 무명(無明)ㆍ행(行)ㆍ식(識)ㆍ명색(名色)ㆍ육입(六入)ㆍ촉(觸)ㆍ수(受)ㆍ애(愛)ㆍ취(取)ㆍ유(有)ㆍ생(生)ㆍ노사(老死)로 나누고 이들의 관계를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리와 괴로움을 없애는 원리의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전자를 유전연기(流轉緣起)라고 하고 후자를 환멸연기(還滅緣起)라고 한다.

유전연기에 의하면 십이연기는 사성제(四聖諦)나 연기의 이치를 알지 못함[無明]으로 인해 신체와 생각과 말의 잘못된 행위[行]가 있게 되고, 이러한 행을 원인으로 해서 인식주체로서의 식[識]이 있게 되며 마지막에는 태어남으로 인해 늙고 병들고 죽는 등의 모든 괴로움이 일어난다는 방식으로 해석된다. 반면에 환멸연기에 의하면 십이연기는 사성제나 연기의 이치를 깨달음으로 인해 신체와 생각과 말의 잘못된 행위가 멸하게 되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마지막에는 태어남도 없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는 등의 모든 괴로움이 멸한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십이연기는 동일한 학파에서도 여러 관점에서 분석됐고 그 이해는 후대에도 그대로 계승됐다. 우선 부파불교에서는 십이연기를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로 설명한다. 삼세양중인과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과거의 원인과 현재의 결과, 현재의 원인과 미래의 결과라고 하는 두 번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십이연기 중에 무명과 행은 과거의 원인이고 식ㆍ명색ㆍ육처ㆍ촉ㆍ수는 그 원인에 대한 현재의 결과이다. 또한 그 다음의 애ㆍ취ㆍ유는 현재의 원인이고 마지막 생ㆍ노사는 미래의 결과이다. 이와 같은 삼세양중인과설은 남방불교와 마찬가지로 대승불교에서도 정설이 됐다.

또한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는 삼세양중인과설과 별개로 십이연기의 존재방식을 네 종류의 연기로 설명한다. 첫째가 찰나연기(刹那緣起)로 십이연기의 십이지 각각은 동일한 찰나에 작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연박연기(連縛緣起)로 십이지가 각각 연속해서 변화해 가는 것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은 이 연박연기에 의한 것이다. 세 번째는 분위연기(分位緣起)로 십이지를 과거 현재 미래의 인과관계로 설명한 삼세양중인과설이 여기에 해당한다. 네 번째 원속연기(遠續緣起)는 분위연기의 과거 현재 미래를 확장해서 아주 먼 과거와 아주 먼 미래에까지 이르는 인과관계를 말한다.

십이연기설은 또한 사제설(四諦說)과도 연관된다. 예컨대 고집멸도에서 괴로움이 일어나는 인과관계를 순서대로 보는 순관(順觀)을 집과 고로 설명할 수 있고 괴로움을 멸하는 인과관계를 순서대로 보는 역관(逆觀)을 멸과 도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집은 고의 원인이고 도는 멸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사제설에서는 고를 멸하는 원인인 도(道)를 특히 강조한다. 이는 십이연기설이 괴로움[苦]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고찰인 유전연기의 설명에 중점을 두고 그 괴로움을 없애가는 과정에 대한 고찰인 환멸연기를 소극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비교되는 점이다. 환멸연기는 오히려 도제(道諦)로서의 팔정도에 의해 구체화된다. 말하자면 사제설의 도가 팔정도를 통해 괴로움을 멸해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한 것이라면 십이연기의 환멸연기는 그 팔정도를 통해 괴로움이 멸해 가는 원리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십이연기는 상대의 근기나 이해력에 맞추어 여러 각도에서 설명된다. 그러나 십이연기를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든 그 목적은 실제로 일어나는 괴로움의 원인을 자각하고 그 원인을 없애가는 것에 의해 열반을 얻는 것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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