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 _ <하>법을 청하다

▲ 그림 김흥인

 

지붕없는 암자에서 별 벗삼아 수행
이미 깨달았지만 중생위해 설법 요청
〈금강경〉서 부처님과 대화자로 등장
1250 대중에게 무상함 일깨워

수보리는 이미 공의 이치를 가장 잘 깨우친 존자였다. 그런 수보리를 부처님은 대중 앞에서 무쟁제일(無諍第一)이라고 칭송했다. 이에 걸맞게 수보리는 항상 자애와 함께하는 수행자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 또한 수보리는 〈금강경〉에서 공(空) 사상을 설하는 부처님과의 대화자로 등장한다. 부처님께 질문에 질문을 거듭해 우리들에게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

지붕없는 암자
수보리가 마가다국의 라자가하를 찾았을 때였다. 빔비사라왕은 수보리의 라자가하 방문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수보리의 설법을 들은 왕은 크게 감동했고 답례로 정사를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왕의 지시를 받은 부하들은 열심히 정사를 지었다. 하지만 당시 16대국 가운데 최강국으로 주변 국가의 병합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던 왕은 정사의 완성까지 세심하게 마음을 쓰지 못했다. 끝내 불사는 중지됐고, 지붕이 만들어지지 못한 채 정사는 몇 달 동안 방치됐다.
하지만 수보리는 불평 한 마디 없이 지붕없는 암자에 머물렀다. 수보리는 몇 달 동안 지붕 없는 암자에서 하늘의 별을 벗 삼아 평온하게 수행 정진하며 지냈다.
이 모습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수보리가 지붕 없는 암자에 머무는 동안 하늘에서는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마가다국 백성들은 타는 듯한 햇볕과 가뭄에 고통스러웠고, 보다 못한 왕은 비가 내리지 않는 연유를 알아보게 했다. 가뭄의 이유가 수보리의 정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왕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서둘러 정사에 지붕을 올리도록 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곧바로 비가 내렸고 마가다국은 다시 평온을 찾았다.
“지붕을 올려 주십시오.”
어렵지 않게 던질 수 있는 한마디였지만, 수보리는 하지 않았다. 지붕이 없어 비나 밤이슬은 피할 수 없지만, 벽이 있으니 바람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수보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또 공(空)의 진리를 체득한 수보리에게 지붕이 있고 없고는 대단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해공제일의 수보리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왕이 지붕을 올린 뒤 수보리는 게송을 읊었다.
“나의 토굴이 완성되니 소란한 주위가 고요하고 마음이 평화로우니 여기가 바로 깨달음의 자리라네. 하늘이여, 비를 내려 주오. 나는 진리를 찾았거늘 비를 내려 주오.”
지붕 없는 토굴을 공양받아도 즐겁게 살던 수보리 존자. 그래서 그를 부를 때 피공제일(被供第一)이라고도 부른다.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징

한 번은 수보리가 삿다(Saddhaㆍ信)라는 이름의 비구와 함께 부처님을 찾았을 때였다. 삿다 비구는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비구였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이 비구는 누구인가?”
“세존이시여, 이 비구는 삿다라고 합니다. 신심이 두터운 재가신도의 아들입니다. 그 역시 신심이 두터워 출가해 비구가 됐습니다.”
“수보리여,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이냐? 어떤 경우에 그 사람은 신심이 두텁다고 말할 수 있느냐?”
수보리는 분명하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그 믿음의 특징에 관해 설해주십시오.”
부처님은 믿음이 지니는 특징에 관해 설했다.
“우선 계를 존중하고, 계를 잘 지키는 것이다. 이어 법을 듣고 그 법을 잘 기억해 수지하는 것이다. 또한 승가에서 도반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다. 교계를 받았을 때는 순수하게 받아들여 따르고, 수행에 있어서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법을 행할 때는 환희심을 갖고 해야 한다.”
믿음에 관한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한 수보리는 삿다 비구가 그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부처님이시여, 이 비구는 지금 말씀하신 믿음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생각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잠시 수보리의 얼굴을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수보리야. 그렇다면 너는 이 비구와 함께 머물러라. 또한 나를 만나고 싶을 때는 이 비구와 함께 오너라.”

부처님께 법을 청하다
영취산에서 깨달음을 얻은 수보리는 사위성의 기원정사로 돌아왔다.
사위성은 초강대국의 수도답게 90여 만 호의 집들이 밀집돼 있는 대도시였다. 90여 만 호에 사는 시민들 중 3분의 1은 직접 부처님을 친견할 정도로 부처님의 교단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처님은 사위성에 나가 탁발한 공양을 마치고 발을 씻은 다음 자리를 펴고 고요히 앉으셨다.
그때 1250명 대중 속에 있던 수보리가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상태로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합장하며 부처님께 말했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을 잘 보살피시고 항상 챙겨주십니다. 세존이시여, 완전한 깨달음에 마음을 낸 착한 이들은 어떻게 마음을 챙기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우 좋은 질문이다. 수보리여. 그대의 말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고 잘 당부하느니라. 그대들은 이제 자세히 들어라. 선남자선여인 가운데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반드시 이와 같이 머물고,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 지니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바라건대 즐겁게 듣고자 하나이다.”
이미 깨달음을 얻은 수보리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중생을 위해 부처님께 법을 청한 것이다. 부처님도 그러한 수보리의 뜻을 알아차리고 흔쾌히 중생들을 위해 법을 설했다.
이어서 부처님은 자신의 법신을 본 수보리의 깨달음을 확인하기 위해 말문을 열었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른두 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 있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서른 두 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는 있습니다.”
“만약 서른 두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서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 있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 하겠구나?”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반드시 서른 두 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 없겠습니다.” 부처님의 몸은 서른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성왕도 32상을 갖추고 있었다. 전륜성왕은 인도인들이 바라던 가장 이상적인 군주였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짓고 덕을 닦아 생김새도 부처님과 똑같은 32길상을 갖추었다. 하지만 모습은 부처님과 같다 할지라도 깨달음은 이루지 못했다.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32상을 미루어서 여래라고 볼 수 있겠느냐 묻자, 수보리는 처음에 미루어서 볼 수는 있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 하겠구나”라는 부처님 말씀에 금세 깨닫고 아니라고 대답했다. 형상을 통해서 여래를 이해한다는 것은 맞지 않기 때문이다.

相을 없애야 한다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한량없는 세계에 가득 찬 금은보화를 가지고 널리 보시한 이가 있고, 만약 또 다른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있어서 보살의 마음을 내어 이 경전을 가지고 네 글귀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다른 이를 위해서 설명해 준다면, 그 복이 앞의 복보다 훨씬 뛰어나리라. 어떻게 하는 것이 ‘남을 위하여 설명해 주는 것’ 인가하면, 상(相)에 끌려 다니지 않고 여여하게 동요하지 않는 것이니라.”
“명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은 1250 대중에게 상을 없애야만 한다고 일렀다.
“수보리여, 모든 작위(作爲)가 있는 것은 마치 꿈같고, 환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반드시 이와 같이 관찰하도록 하라. 그리고 이 가르침이 있는 곳이면 모든 여래가 있는 것과 같음을 잊지 말거라.”
“하오면 지금 설하시는 경을 무어라 이름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지금 설하는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어떤 진리를 말씀하신 바, 법이 있느냐 없느냐?
“여래께서는 말씀하신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이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임을 깨달아야 바른 법을 보느니라.”
부처님이 이 경을 다 말씀하자, 덕 높은 수보리와 여러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와 일체 세간의 천신들과 아수라들이 크게 기뻐했다.

 

참고문헌
〈부처님의 십대제자(성각 스님 편저)〉〈부처님의 십대제자(성법 스님 편저)〉〈붓다를 만난 사람들(조계종 출판사)〉〈붓다를 만난 사람들(이자랑 동국대 박사)〉〈금강경〉〈무비스님 금강경강의(불광출판사)〉〈아함경〉〈장로게경〉〈유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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