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 _ <상>부처님과의 인연

 부처님 십대제자 가운데 부처님의 공(空)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해 해공제일(解空第一)로 불리는 수보리의 이야기다. 큰아버지 수닷타를 비롯해 아버지 등 가족들과의 불화로 세상에 대한 원망과 시기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설법제일 부루나를 만나면서 부처님을 알게 되고, 모든 중생을 차별 없이 품어주는 부처님의 참모습을 보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 〈금강경〉에서 부처님의 대화자로 등장하는 그는 부처님과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부처님의 공사상과 가르침을 후대에 전한 부처님의 십대제자다.

사위국 브라만가문 출생
가족과 불화일으킨 문제아
거리 무법자였던 수보리
부루나 만나면서 부처님 알게돼

▲ 그림은 조향숙씨의 석굴암 수보리상 판화
부루나와의 만남큰아버지와 아버지를 향한 원망
큰아버지인 수닷타 장자는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자 수보리의 아버지인 수마나 장자에게 매우 인색했다. 사위성에서 부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동생에게 쌀 한 톨 보태주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한 살도 채 안됐을 때 어머니를 잃고 홀아비 밑에서 자란 수보리는 철이 들면서 그런 큰아버지에게 노예 취급을 당하는 아버지가 불쌍했다.
하지만 아버지 수마나는 형에게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했고 형을 원망하거나 섭섭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 수보리는 큰아버지만을 원망했지만 나이가 점점 들면서 아버지까지 미워졌다. 그러면서 수보리 자신마저 삐뚤어지게 됐고 거리의 무법자로 변해갔다.
수보리는 동네 불량친구들과 거리를 활보하며 지나가는 행인에 시비를 걸거나 상점에서 행패를 부리는 등 난폭한 행동을 일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카와 친동생에게는 그렇게 인색했던 큰아버지가 부처님을 위해 기원정사를 짓는 공사에 전 재산을 다 내놓고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수보리는 큰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에 화가 났고 친구들을 모아 기원정사 불사 현장에 들어가 일을 방해할 계획을 세웠다.

친구들과 함께 기원정사에 도착한 수보리는 의아했다. 부루나가 사리불을 도와 기원정사를 지으면서 거리에서 탁발을 다니고 있었다. 신도들의 주머니를 털어 사원을 지으며 호의호식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었다.
수보리는 탁발을 하는 부루나에게 달려가 말했다. “이 나라 최고 갑부의 주머니까지 털어 절을 짓는 재주를 지닌 부처님의 제자께서 밥을 빌어먹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탁발은 출가 수행자의 기본입니다. 더불어 음식을 공양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는 시작이지요. 나중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매일 같은 시간에 탁발을 하십니다. 이제 탁발이 왜 부끄러운 일이 아닌지 아셨습니까?”
“나같이 하찮은 놈이 그걸 어찌 알겠소.” 수보리가 대답했다.
“부처님 법에는 절대 하찮은 사람도 잘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올바르냐에 따라 평가될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그대를 하찮은 사람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부루나는 팔을 뻗으며 손바닥을 펴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한 손에 손가락이 다섯 개 입니다만, 길고 짧은 가운데 가장 으뜸인 것은 엄지가 아닙니까? 반면 새끼손가락은 가장 가늘고 짧지요. 그렇다고 차별을 하며 새끼손가락을 잘라 버리면 손이 어찌되겠습니까?
수보리는 “어찌되긴 불구가 되는 거잖소!” 라고 말했다.
그러자 부루나는 “그렇습니다. 부처님법은 다섯 손가락이 어우러져 완전한 손이 되듯이, 길거나 짧은 차이를 조화로 잘나고 못난 차별을 없애며, 사람은 모두가 평등함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위대하고, 차이는 있지만 잘나고 못난 차별은 없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부루나는 인사를 한 뒤 탁발한 음식을 가지고 돌아갔다.
수보리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부루나라는 친구가 왠지 싫지 않았으며 기원정사 불사에 훼방을 놓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이윽고 기원정사가 낙성되던 날, 수보리는 부루나를 우연히 만난다. 수보리는 부처님이라는 인물이 궁금했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스스로 길을 가리키는 분이시네. 사람에게는 불행으로 가는 세 가지 마음의 길이 있네.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네.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길로 가지 않도록 바른길을 가리키시는 스승이시네.”
부루나의 설명에 수보리는 점점 더 부처님이 누군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그림 김흥인

앙굴리말라와 부처님
어느 날 아침, 부처님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어 늪에 빠진 이들을 염려하면서 신통으로 세상 곳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위성 근처 숲에서 피범벅이 돼 돌아다니는 앙굴리말라를 발견했다. 그는 부처님 당시 코살라국 수도인 사위성 주변에서 살인을 일삼으며 세상을 어지럽히던 살인마였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바라문 밑에서 공부하게 된 앙굴리말라는 도를 깨치게 해주겠다는 스승의 꼬임에 빠져 닥치는대로 사람을 죽인 다음 손가락을 잘라 목에 걸고 다녔다. 999명을 죽인 그는 마지막 한 명을 채우기 위해 사위성 근교의 숲에 숨어있었다. 앙굴리말라는 저 멀리 부처님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봤다. 칼과 화살을 들고 부처님 뒤를 쫓았으나 이상하게도 전속력으로 따라가도 부처님과의 사이를 좁힐 수 없었다. 앙굴리말라가 외쳤다. “멈춰라!”
“앙굴리말라여, 나는 멈추어 있다. 너야말로 거기 멈춰 서거라.” 부처님이 말했다.
앙굴리말라는 그렇게 말하는 뜻이 궁금했다.
“사문이여, 너는 걸어가고 있으면서 멈추어 서 있다고 하는구나. 너는 멈추어 서 있고,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앙굴리말라여, 나는 생물을 해치거나 괴롭히는 일로부터 떠나 자비와 인욕을 성취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지혜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멈추어 서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너는 살아 있는 것을 해치고 괴롭히며 자비와 인욕이 없다. 너는 네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른다. 그래서 너는 멈추어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에 제 정신이 든 앙굴리말라는 그동안 자신이 저질러온 행동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깨닫게 됐다. 그는 부처님 앞에 엎드려 진심으로 참회하며 출가의 청을 올렸다.
“잘 왔구나, 비구여” 부처님은 희대의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수보리는 부처님의 대자대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성격이 매우 까칠하고 예민했던 수보리는 부처님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사람들을 보며 그동안 허비했던 삶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기원정사로 향해 다시 부루나를 만났고, 출가결심을 이야기했다.

살인마 교화하는 부처님보고
기원정사서 출가하기로 결심
“업을 씻고 마음의 주인이 돼라”
수행하러 죽림정사로 떠나

 

해공제일의 수보리
부처님 앞에서 머리를 깎은 수보리에게 부처님이 말했다.
“수보리야, 삭발하는 것만으로 번뇌망상을 지울 수 없듯이 진리 또한 쉽게 깨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마음의 주인이 돼 온갖 마음을 다스려 깨끗이 유지할 때 공(空)한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디 그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수보리가 간곡히 청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법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진정 나를 보려거든 법을 보아라. 그동안 네가 사위성에서 쌓은 번잡했던 업을 씻고 법을 보려면, 죽림정사로 가 한적한 영취산에서 수행하도록 하거라.”
수보리는 기원정사를 떠나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 밖에 있는 죽림정사로 향했다. 이때 사리불이 수보리를 영취산 토굴까지 안내했다.
영취산의 정기가 흐르는 길목에 자리를 잡은 토굴은 목건련이 신통력을 터득한 곳이기도 했다.
수보리는 난폭하고 까칠했던 성격을 가다듬으며,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했던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겼다.
“모든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하늘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고 귀신이나 축생은 물론 지옥까지도 만든다. 그 때문에 도를 얻는 것도 마음이요, 온갖 법도 마음 따라 일어난다. 사람이 바른 마음을 쓸 줄 알면 천신도 기뻐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 가는 대로 따라 가서는 안 된다. 마음을 조복받아 부드럽고 순하고 스스로 텅비워야 한다.”

참고문헌
〈부처님의 십대제자(성각 스님 편저)〉 〈부처님의 십대제자(성법 스님 편저)〉 〈붓다를 만난 사람들(조계종 출판사)〉 〈금강경〉 〈아함경〉
 

수보리 존자는
수보리는 산스크리트 이름 수부띠(Subh쮎ti)의 한자 음역이며, 선(善)ㆍ선업(善業) 등으로 의역한다. 사위국(舍衛國)의 브라만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수보리는 16나한(羅漢) 중의 하나로서 무쟁삼매(無諍三昧)의 법을 깨쳐 모든 제자들 가운데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출가 전 수보리는 화를 잘 내고 스스로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부처님을 알게 되어 출가했고, 스승의 가르침에 큰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했다. 북방불교에서는 출가 후의 수보리를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깨우쳤다는 ‘해공제일(解空第一)’ 이라고 칭했으며 초기경전인 〈증일아함경〉에서는 ‘평화롭게 머무는 자들 가운데 으뜸’이라는 의미로 ‘무쟁제일(無爭第一)’ 이라고 한다. 또한 ‘공양을 받을만한 자들 가운데 으뜸’이라는 의미로 ‘피공제일(被供弟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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