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에서 실린 소

미황사 창건은 소와 연관

안양암 금륜전 흰소 ‘눈길’

금륜전 칠성탱의 무소

〈미황사사적비〉에 의하면 검은 소가 경전을 싣고 가다 멈춘 곳에 미황사(美黃寺)를 세웠다는 기록이 나온다. 창건주인 의조화상(義照和尙)의 꿈속에 금인(金人)이 나타나 “나는 우전국(優塡國, 인도)의 왕인데, 경상(經像)을 모시며 여러 나라를 다니다 이 곳에서 일만불(一萬佛)을 보았기에 이 곳에 경을 모시려 한다”고 말한다.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장운(張雲)·장선(張善) 두 사미와 더불어 배 안을 살피니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 비로자나·문수보살 및 40성중(聖衆), 16나한과 탱화 등이 있고 또 금환(金環)과 흑석(黑石)이 각 한 개씩 있었다.

향도들이 경을 해안에 내려놓고 봉안할 장소를 의논할 때 흑석이 저절로 벌어지며 그 안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문득 커졌다.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 소가 가다 처음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산골짜기에 이르러 다시 누우며 ‘미(美)’하고 크게 울며 죽어 버렸다.

소가 처음 누웠던 곳에 사찰을 창건하니 곧 통교사(通敎寺)요, 뒤에 누워 죽은 골짜기에는 미황사를 짓고 경과 상을 봉안했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취한 것이고 ‘황’은 금인(金人)의 황홀한 색을 취한 것이다.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가면 독특한 절이 아파트와 민가로 둘러 싸여 있는 안양암이 있다. 1889년에 창건된 작은 절엔 많은 불교문화재를 지니고 있다. 골목에 붙은 작은 문을 지나면 대웅전, 관음전, 명부전, 금륜전, 천호백불전, 영각, 염불당을 만날 수 있다.

그 곳의 금륜전이란 편액이 걸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 있는데, 그 편액을 쓴 이가 바로 해사 김성근 대감이다. 소납이 사는 동화사에도 종정스님이 계시는 염화실로 오르는 길에 영산전이 있는데 그 현판도 그가 썼다.

북송의 서예가인 미불의 독특한 행서체인 미남궁체로 쓴 현판이다. 김성근 대감은 살아 생전에 사리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독실한 불자였다고 한다.

그 금륜전 안에 칠성탱(서울시문화재자료 제21호)은 1930년 고산축연(古山竺演), 보응문성(普應文性), 학송(鶴松)등의 화승들이 그린 것이다. 화면 안에는 중앙에 흰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있는 치성광여래와 좌우에 일광보살, 월광보살, 칠원성군 등이 빼곡이 그려진 구도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흰 소의 모습이다. 교토 고려미술관에 소장된 조선 선조 2년(1569년)에 그린 치성광불제성강림도(熾盛光佛諸聖降臨圖)를 보면 수레를 끄는 소는 물소이다. 물소는 우리 나라에는 없다. 물론 무소(코뿔소)도 없다.

미국 보스톤 박물관세 소장된 고려 14세기 초엽의 치성광여래강림도에도 수레를 끄는 소는 물소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십우도(十牛圖)의 기우취적도(소를 타고 피리부는 동자)가 타고 있는 소도 역시 물소이다.

소납이 베트남에 갔을 적에 그 곳 농부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것이 물소라는 말을 들었다. 물소가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이 많은 논에서 황소는 힘을 못쓰는데 물소는 황소의 두세배의 힘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금륜전 칠성탱의 소는 흰 뿔이 머리 위에 홀로 장대하게 서있는 무소(코뿔소)이다. 지금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흰코뿔소이다. 왜 화승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탱화의 물소 대신에 무소를 그렸을까?

그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단지 수타니파타의 무소품에 나오는 글귀가 생각날 따름이다.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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