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여래 모신 흥국사는 아픈 중생 ‘위로’ 도량
약사여래 모신 흥국사는 아픈 중생 ‘위로’ 도량
  • 박재완 기자
  • 승인 2012.09.24 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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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있는 둘레길-⑫ 북한산 내시묘역길 그리고 흥국사

개울길, 아스팔트길 다양한 길 걸어
내시묘역, 여기소터 등 사연 있는 길
찬비 지나간 자리에 코스모스 피네


태풍이 연이어 지나갔다. 많은 것들이 망가졌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집이 망가졌고, 길이 망가졌다. 집을 잃은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 태풍은 지나갔다. 크고 작은 상처들이 위로를 기다리는 시간.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차가운 비가 내렸고, 차가운 비가 지나간 자리엔 코스모스가 피었다. 위로는 그런 것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비가 내리고, 비 내린 자리에 가을꽃이 피는. 우리 삶에 위로란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 그 것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차가워진 길을 걷는 것뿐이었다. 북한산 둘레길 10구간 내시묘역길이다. 그리고 그길 옆에는 흥국사가 있다.

1300년전 원효 스님이 창건한 흥국사 약사전에는 약사여래가 약합을 들고 아픈 중생을 기다리고 있다. 먼저 와 앉은 불자 한 분이 약사부처님과 한참을 앉아 있다.
은평구 진관동 방패교육대에서 효자동 공설묘지까지 걷는 길이다. 총 3.5km이고, 모두 걷는 데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북한산 둘레길 중에서 누구나 걷기 좋은 길이다. 길의 대부분이 평지다. 기자는 내시묘역길과 이어진 마실길(본지 7월 11일자에 소개)의 삼천사 입구에서 시작했다. 500m 쯤 걸으면 내시묘역길과 만난다. 한쪽은 개울이 흐르고 한 쪽으로는 숲이 따라온다. 조선조 임금을 받들던 내시들의 묘역이 있는 구간이다. 개울가엔 아직 갈대라고 할 수 없는 푸른 갈대들이 가을을, 그리고 겨울을 향해 흔들리고 있다. 가을바람이 고추잠자리를 몰고 나타난다. 물가에 잠자리를 내려놓은 바람이 갈대를 키우고 날아간다. 숲에선 풀벌레들의 음성이 밀려온다. 차가워진 길에서 듣는 그들의 음성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들었던 것보다 왠지 진지하게 들려온다. 태양 아래서 들었던 소리가 1악장이었다면 가을의 문 앞에서 듣는 그들의 소리는 4악장이다. 차가운 길 위에서 듣는 뜨거운 4악장이다. 풀벌레소리 사이사이로 참새들이 어지럽게 들락거린다. 호박밭을 얼쩡거리다 깨밭을 휘젓고 날아간다. 이집 저집 대문도 창문도 의미 없다. 개울이 끝나고 따라오던 숲도 끝난다. 풀벌레 소리도 멀어진다. 이정표(둘레길)를 따라 약 1km 쯤 걸으면 주택가 길로 접어든다. 듬성듬성 숲 속의 집들이 보이고, 다시 작은 개울과 산이 다가온다. 멀리 북한산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200m 쯤 걸으면 여기소(汝其沼) 터가 나온다. 조선 숙종 때 북한산성 축성에 동원된 관리를 만나러 먼 시골에서 온 기생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연못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다. 너(汝)의 그 사랑(其)이 잠긴 못(沼), 여기소라 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엔 경로당이 들어서 있다. 100m 쯤 걸으면 백호사란 절이있고, 그 뒤편이 내시묘역이다. 하지만 그들의 묘는 없다. 묘역이 있던 자리는 개인 소유의 땅이 되었고, 묘는 모두 없어졌다. 다시 100m 쯤 걸으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내시묘역길은 난간으로 정리된 개울길과 크고 작은 텃밭들이 늘어선 흙길과 아스팔트길 그리고 산 속의 숲길까지 다양한 길을 걷게 되어 있다. 지루하지 않은 길이다.

흥국사는 내시묘역길에 없다. 흥국사는 북한산과 마주한 노고산에 있다. 5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 쪽은 북한산이고 한 쪽은 노고산이다. 위에서 말한 둘레길을 걷다가 개울이 끝나는 지점(이정표가 나온다)에서 둘레길을 버리고 5차선 도로를 따라 1km 쯤 걸으면 흥국사 입구다. 길가에 큰 표지석이 있다. 거기서 약 600m 쯤 올라가면 흥국사다. 나팔꽃, 구절초, 코스모스. 가을꽃들이 태풍이 지나간 자리와 여름이 지나간 자리를 위로하고 있다. 짙어가는 숲길 끝에 일주문이 서있다. 흥국사는 661년(문무왕 1)에 원효 스님이 창건했다. 북한산 원효암에서 수행 중이었던 스님은 어느 날, 북서쪽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산을 내려와 흥국사 자리에 이르게 됐고, 서기(瑞氣)를 발하고 계신 약사여래를 보신 스님은 인연도량이라 생각하여 본전에 약사여래를 모시고 흥성암(興聖庵)이라 했다. 그 이후의 역사는 전해오는 것이 별로 없다. 1770년 (영조 46)에 영조가 절에 하루 머물게 되고 이후로 왕실의 원찰이 된다.

도량은 불사로 인해 조금 어수선하다. 마당엔 여름도 가을도 없다. 중장비 한 대가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무엇 때문인지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복구’가 필요하다. ‘복구’도 일종의 위로였다. 설법전을 지나 본전인 약사전에 들었다. 무릎을 꿇고 약사여래의 약사발을 바라보니, 이 곳 저 곳 안 아픈 곳이 없다. 먼저 와 앉은 불자 한 분도 약사부처님과 한참을 앉아있다. 맞은 편 설법전에는 극락구품도가 있다. 극락세계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약사전을 나와 설법전으로 갔다. 극락이 있었다. 약사여래의 약사발이 그냥 약사발은 아니었다. 흥국사는 템플스테이로 유명하다. 몇 해 전, 흥국사에선 쉽지 않은 템플스테이가 있었다. 이스라엘 대학생과 팔레스타인 대학생들이 함께한 템플스테이였다. 서로의 목숨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두 민족의 대학생들이 한국 땅 흥국사 마당에서 연등을 밝히고 몰랐던 손을 마주잡던 그 밤이 생각났다. 그 때도 가을이 오고 있었던 것 같다. 흥국사는 최근 이색 템플스테이 ‘싱글파티 만남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결혼적령기를 넘긴 미혼 남녀들의 만남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약사발을 든 약사여래가 있고, 극락구품도가 걸려있는 흥국사엔 ‘위로’가 있었다. 흥국사에도 태풍이 지나갔을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여전히 흥국사는 사바를 위로하고 있었다.

흥국사 약사전 약사여래
흥국사를 나와 큰길에서 다시 둘레길에서 걷던 방향으로 700~800m 쯤 걸으면 삼거리에서 둘레길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이정표를 따라 북한산국립공원 쪽으로 300m 쯤 걸으면 내시묘역길과 다시 만난다. 3분의 2지점이다. 흥국사까지만 다녀와도 괜찮고, 다시 둘레길의 나머지 구간을 걸어도 좋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있는 가을의 문턱에서 걸었던 길에는 1300년 전부터 사바를 위로하고 있는 흥국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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