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구의 전생

▲ 삽화=강병호

‘한 나라에 브라흐마닷타라는 왕이 살았다. 왕에게는 두 명의 왕자가 있었다. 왕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그는 두 왕자를 모두 사랑했기에 어떤 왕자를 왕위에 앉힐 것인지 매일 고민했다. 어느 날, 아버지의 고민을 알게 된 작은 아들이 찾아와 말했다.

“아버님, 저는 왕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형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너는 왕위에 욕심이 없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왕이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속세를 떠나 도를 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디 저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왕은 작은 아들의 뜻을 굽힐 수 없어 속세를 떠나는 것을 허락했다. 세월이 흘러 브라흐마닷타 왕은 죽고 첫째 왕자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첫째 왕자마저 세상을 떠나게 됐다.

신하들은 왕들이 모두 죽자 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아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오. 지금 왕위를 이을 사람이 아무도 없소.”
“예전 부왕에게 아들이 두 명이라는 소릴 들었소. 그 중 한명이 지금 왕이셨고, 나머지 한 분은 속세를 떠나 산중에 계시다 들었소. 그분을 찾아 왕위를 잇도록 합시다.”

신하들은 산속에서 수행을 하던 둘째 왕자를 찾아 갔다.
“지금 이 나라에는 왕이 없습니다. 부디 청하옵건대 왕자님께서 왕위를 이어주십시오.”
“난 속세가 싫어 떠난 사람이오. 왕위를 이어받지 않겠소.”
“지금 왕자님께서 왕위를 이어받지 않으시면, 이 나라는 어찌 될지 모릅니다.”
“지금 세상은 너무 흉흉하오. 지금 왕이 된다면 내가 어떤 모함을 당할지 모르오. 난 싫소.”

하지만 둘째 왕자는 신하들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왕위를 이어받기로 수락했다. 둘째 왕자는 궁으로 돌아가 왕이 됐다. 그런데 왕이 된 왕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방탕한 생활에 빠지기 시작했다.
여자를 너무 좋아해 매일 같이 궁녀들과 놀아나고, 신하의 부인들까지 탐했다. 심지어 왕은 나라의 모든 처녀들을 궁으로 끌어들였다. 그럼에도 그는 애욕을 절제하지 못해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이 나라에 모든 처녀들은 혼인하기 전, 나와 하룻밤을 보내야만 혼인할 수 있다.”
결국 나라의 모든 처녀들은 집에 숨어 나오길 두려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 한복판에서 한 여자가 소변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여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수근댔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와 여자에게 말했다.

“부끄러운 줄 아쇼. 여자가 어떻게 길거리에서 소변을 본단 말이요?”
“아니. 같은 여자끼리 무엇이 부끄럽다 그러시는 겁니까?”
“난 남자요. 어찌 나를 여자라고 하시오.”
“이 세상에 남자는 왕 단 한 사람 뿐이오. 왕을 받들지 않으면, 혼인도 하지 못하니 이 세상에는 모두 여자만 남은 것이지 않소.”

여자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쳤다.
“맞소. 평생 혼인도 못하고 이렇게 늙어 죽을 수는 없는 일이오.”
“우리 모두 왕을 몰아냅시다!”

이 말은 온 나라에 순식간에 퍼져, 모두들 왕을 죽이기 위해 궁으로 향했다. 신하들 역시 사람들과 합심해 왕을 몰아내기로 했다. 그때 왕은 연못가에서 한가롭게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신하와 백성들은 연못가에 숨어있다 왕을 덮쳤다.

“너희들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나는 이 나라의 왕이다. 이러고도 너희들이 무사할 것 같으냐?”
“왕은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데, 당신은 음탕하기 짝이 없고 여자밖에 모르오. 그런 사람이 무슨 왕이라 할 수 있겠소. 더 이상 우리는 당신을 왕으로 모실 수 없소.”

왕이 말했다.
“그동안 나의 잘못을 인정한다. 잠시 애욕에 눈이 멀었지만, 이제 부턴 나라를 잘 통치할 터이니 부디 내 목숨만은 살려달라.”
“설사 지금 우리가 당신을 죽이고 죽게 된다 해도, 당신을 용서할 수는 없소.”
“나를 이 나라의 왕으로 앉힌 건 너희다. 분명 나는 산속에서 도만 닦으며 살고 싶어 했다. 억지로 나를 왕으로 만들어 놓고 내가 잘못을 했다고 해서 죽이려 하는 것인가.”

신하들은 왕의 간절한 부탁에도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좋다. 나를 죽이거라. 대신 내가 도를 깨치지 전까지 나는 다음 생에서 너희들을 계속 죽일 것이다.”
결국 왕은 신하들과 백성들의 칼에 맞아 목숨을 다했다. 다음생에 다시 태어난 왕은 결국 살인자가 돼 자신을 죽인 백성과 신하들을 모조리 죽였다. 하지만 훗날 부처님을 찾아가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고, 비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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