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유구덕(茶有九德)

응송스님 승가 다회 전통 계승

한국 차맥 원류 복원 일등 공신

 

다유구덕

며칠 전에 인터넷의 상위검색어로 갑자기 녹차가 떴다. 중국의 한 의대에서 녹차속의 화학물질이 사람의 기억력과 공간지각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발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이미 몇 백년전에 우리 스님들은 다 알고 계셨던 사실들이다. 초의스님의 동다송에 이미 그런 사실이 적혀있어서, 초의-범해 각안스님으로 이어지는 삼대(三代)째 응송(應松)노스님께서 다화(茶畵)에 다유구덕(茶有九德)이라 화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단 두 줄의 선으로 목판으로 된 소박한 찻상을 그리고, 그 위에 찻잔 하나 다관 하나를 그리셨다. 단정한 글씨로 차가 지닌 아홉 가지 덕을 쓰셨는데, 효당 최범술 님의 글은 많이 보았어도 응송노스님(1893~1990) 친필과 그림은 처음 보았다.

실제로는 한국 승가의 정통다도를 익히고 지키셨던 분은 응송스님인데 차 배우는 다인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제다법과 차이론을 제대로 지금까지 잇도록 노력하신 스님이 안 계셨더라면 한국 승가의 다회(茶會)전통은 거의 잊혀질 뻔했다.

응송스님은 불에 타 없어졌던 원래 일지암 위치를 알려줘 복원불사를 무사히 마치게 해서 한국차맥의 원류를 복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시기도 하셨다. 그럼에도 응송노스님을 아는 다인이 많지 않고, 그 친필이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몇 번을 별러서 강릉 능가사에 가서 화가이신 법관(法觀)스님을 뵙고, 그 다실에서 스님의 다화를 보니 감개무량하다.

화제의 내용은 ▷이뇌(利腦, 두뇌활동에 이로움) ▷명이(明耳, 귀가 밝아짐) ▷명안(明眼, 눈이 밝아짐) ▷소화조장(消化助長, 소화를 크게 도움) ▷성주(醒酒, 술취함을 깨움) ▷지갈(止渴, 갈증을 없앰) ▷해로(解勞, 피로를 풀어줌) ▷소면(小眠, 잠을 줄여줌) ▷방한파서(防寒破暑, 추위를 막고 더위를 없앰) 등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박하게 관지(款識)도 없이 대둔사(大芚寺, 지금의 해남 대흥사) 응송승(應松僧)이라 글을 쓰셨는데 은은한 감동이 전해진다.

지금은 거의 없어져서 그 명맥이 끊어졌지만 응송스님의 술회에 의하면 사찰의 다회는 우선 선방의 벽에 달마화상을 걸고, 그 앞에 목판으로 만든 투박한 다상을 놓았다. 그 위 삼베로 만든 다포를 깐 다음 향로, 다기와 쌍촛대에 불을 밝히고 일단 참선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옆에 지필묵(紙筆墨)과 사군자(四君子) 화분을 들여놓는데, 꽃은 너무 화려하다 하여 기피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 후에 다동이 차를 달여서 다반과 다완을 가지고 들어와 올리면 이를 마시며 다선일치의 선경(禪境)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요즘 승가에서는 차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비키니를 입은 서양여인네 같은 커피는 값도 싸고, 향도 좋아서 비싼 녹차가격과 가짜 보이차에 지쳐버린 스님들을 위로하는 중이다.

그러나 불교를 지킨 녹차로 다시 돌아감이 정석인 듯하다.

여말선초 시기의 우리 불교를 대표하셨던 함허 득통(函虛得通, 1376~1433)스님의 다시(茶詩)를 읽으며 글을 마친다.

一椀茶出一片心(일완다출일편심)

한 잔의 차에서 한 조각의 마음이 나오고,

一片心在一椀茶(일편심재일완다)

한 조각 마음은 또한 한 잔의 차 안에 담겼네.

當用一椀茶一嘗(당용일완다일상)

마땅히 이 차 한 잔 맛보시게나

一嘗應生無量樂(일상응생무량낙)

한 번 맛보면 한없는 즐거움이 생겨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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