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연기설-② 연기의 구분

 부처님이 연기를 설한 이유는 이 세상의 작동원리나 우주의 탄생과 같은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고(苦)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연기설은 개인의 내면적인 작용뿐만 아니라 인간과 관련된 모든 현상에 대한 이해를 포괄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는 무아와 무상을 자각하게 하고 그로 인해 영원불변한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기설은 불교의 모든 교리들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이러한 연기설을 해석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크게 네 가지 관점에서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첫째로 인과율(因果律)에 의한 해석이다. 인과율이란 말 그대로 원인과 결과에 관한 법칙이다. 인간의 어떤 행위나 마음의 작용이 원인이 되어 필연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법칙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중에 원인으로서의 작용을 업(業; karma)이라 하고 결과로서의 과보를 보(報; vipāka)라 하며 이러한 인과관계의 작용을 인과업보(因果業報)라는 말로 설명한다.

두 번째는 인연화합(因緣和合)에 의한 설명이다. 한 개인이 존재하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의 종합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어려서는 부모님께 보살핌을 받고 자라나면서 선생님께 교육받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회에 나아가서는 동료들과 일을 도모하는 등의 모든 연기 작용의 종합이 한 인간의 존재이다. 또 한 공기의 밥을 먹어도 그 밥은 농부, 땅, 비, 햇빛, 농기구 만드는 사람, 운반하는 사람, 소매상,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세 번째는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이다. 인연화합에 의해 어떤 결과가 발생하게 되면 그 결과는 다시 다른 존재에게 직ㆍ간접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작용을 상의상관성이라고 한다. 인연화합에 의해 어떤 결과가 생기게 되면, 그 결과는 또 다른 원인이 되어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게 되는 과정인 것이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언젠가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과정과도 같다. 이러한 이치는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모든 자연법칙 속에서도 상의상관성은 작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떠나 홀로 존재한다든가 인과의 과정 없이 저절로 생겨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법주법계(法住法界)가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것은 무상하지만 무조건 무상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는 인과율ㆍ인연화합ㆍ상의상관성과 같이 일정한 법칙이 있다. 제행이 무상한 가운데 일정한 법칙이 상주하고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것을 법주(法住)라고 한다.

또 이러한 작용에 의해 형성된 세계를 법계(法界)라고 한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건 하지 않으시건, 이 법[dharma]은 항상 머무르니, 법이 머무르는 곳을 법계라고한다”라는 <잡아함경(雜阿含經)>의 유명한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출현과 상관없이 인과율ㆍ인연화합ㆍ상의상관성의 법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며, 이는 다름 아닌 연기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연기라고 불리는 인과의 법칙은 불교도가 아닌 사람이라도 상식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다분히 들어있다. 그래서 보편적인 진리의 가르침인 것이다.
원시 경전에 “모든 강물은 바다로 향한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고(苦)와 고의 소멸로 향한다”라는 말이 있다. 물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는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 순리이듯,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 또한 삶의 순리이기 때문에 고를 소멸하는 길로 자연스럽게 인도한다. 연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서 모든 존재는 인연따라 화합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집착에서 벗어나 고를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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