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솔나무길과 도선사

오르는 길 곳곳 북한산 바위 기상이
도선사 마애불서 절로 고개 숙여져

산 길은 인적이 드물어 길을 걷기를 주저하게 만들지만 일단 길에 들어서면 바람과 새소리, 녹음이 길을 걷게 해준다.

북한산 둘레길 ‘소나무숲길’과 연결된 도선사 오르는 길이다.
9월 11일, 우이동에서부터 소나무숲길을 거쳐 도선사까지 이어진 길에서는 초가을의 정취가 느껴졌다. 북한산 계곡 사이사이에 가을을 알리는 서늘한 기운이 물을 타고 내려왔다. 소나무 숲길 시작점부터 도선사까지는 4km 남짓, 2시간 가량이 걸린다.

소나무숲길은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500m 떨어진 곳에서 시작한다.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는 오후임에도 원색의 등산복 차림의 승객들이 삼삼오오 북한산을 향해 분주히 움직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홀로 산을 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우이동 차고지 입구에서 북한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둘레길 표지판이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소나무숲길은 말 그대로 소나무 천지다. ‘소나무숲길’이라고 쓰인 아치형의 문은 ‘자, 지금부터 시작이다’고 외치는 듯하다.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둘레길 안내소가 나온다. 인근에는 체육시설이 있어 마을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길 안쪽으로 조금 들어서자 소나무가 내뿜는 상쾌한 피톤치드 향이 온몸을 감싼다. 소나무가 무거워진 어깨를 주물러 주는 듯하다.

소나무숲길의 끝은 독립운동가 손병희선생 묘소다.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을 주도하기도 한 그를 기리기 위해 주변 길에는 태극기가 걸려있다.
길은 숲길에서 포장도로로 바뀌는데 아스팔트 부분에 파란색 선으로 둘레길임을 표시해놓았다. 도로 양 옆에는 정성스럽게 가꾸어진 텃밭들이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소나무숲길과 우이령길, 도선사 오르는 길의 갈림 구간이 나온다. 처음 오는 등산객들은 대부분 어떤 구간이 펼쳐질지 모르는 우이령길보다 인수봉 바위가 보이는 도선사 오르는 길을 선택한다. 저 멀리 북한산 인수봉이 손짓하듯 서있다.

500m 쯤 더 걸으면 좌측에 붉은 벽돌로 지은 고풍스러운 2층 건물인 봉황각(鳳凰閣)이 있다. 봉황각은 천도교 중앙총부를 1969년에 옮긴 별관으로 한국 근대사의 역사를 담고 있다. 한옥으로서의 가치도 높아 서울시 유형문화제 2호로 지정돼있다.

도선사 오르는 길은 계속 계곡을 끼고 간다. 조금 더 올라가니 작은 사찰인 지장암이 등산객들을 반긴다. 지장암은 계곡 위에 징검다리를 지나야만 갈 수 있는 사찰인데 등산객들 사이에서 물 맛이 유명하다.
도선사 오르는길은 등산과 참배의 목적이 함께 있기 때문에 마주치는 사람들도 각양각색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노래를 들으며 멋을 한 껏 부린 할아버지부터 법복을 입고 단주를 굴리며 내려오는 불자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지장암에서 500m를 더 오르면 유명한 붙임바위가 길 한가운데 위용을 드러낸다. 아스팔트 도로가 개설되기 오래 전부터 도선사를 찾던 신도 등 많은 사람들이 고갯길 중간에서 잠시 쉬어가던 곳이다. 이 바위에 돌을 붙이고 마음속 간직하고 있던 소원을 빌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내력을 간직하고 있다. 바위 한편에는 ‘나무아미타불’ 글자가 눈에 띄며 바위 곳곳에 돌이 올려져 있다.

붙임바위부터서는 길 곳곳에 스님들의 어록이나 불경이 기록된 나무판이 있어 도선사 인근이라는 것을 알린다. ‘신념무적’ ‘만고광명’ ‘참으로 소중한 인연입니다’ 등 법문들이 많다. 글귀를 보고 나면 풀 하나, 나무 하나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윽고 도착한 도산사는 등산과 기도의 목적으로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도선사 일주문 앞에 로터리에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장사진이다. 혹시 하산하는 길일까, 기자에게도 ‘내려가시는 길이에요?’하고 묻는다.

아스팔트길 옆으로 등산로가 잘 마련돼 있다. 이런 길에는 사연이 있다. 故박정희 前 대통령 내외와의 인연이다. 故육영수 여사는 청담 스님을 따르며 ‘대덕화’라는 불명까지 받고 도선사에 자주 왔다. 이로 인해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경내까지 약 4km의 도로가 말끔히 포장도로로 덮였다. 편리함도 잠시 예전 등산로를 되살리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최근에는 양 옆으로 친환경적인 등산로를 다시금 만들고 있다.

사천왕이 늠름하게 지키고 있는 천왕문을 통과하면 피안의 세계가 펼쳐진다. 천왕문 밖의 북새통에도 사찰 안은 고요하고 한적하다.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불자들이나 나들이 나온 가족들만 작은 새소리가 들릴 만큼 여유로움이 감돈다.

도선사는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간직한 도선사는 대선사인 청담 스님의 영향으로 호국참회 기도도량으로 자리매김했다.

천왕문을 지나니 바로 산 위의 포대화상이 정겹게 맞아준다.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옆집 할아버지도 같은 포대화상은 포대를 들고 다니며 탁발을 했는데, 탁발한 물건들이 포대에 가득차면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한다. 재복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찰 깊숙이 들어가면 또 다른 포대화상이 있는데 사람들의 손길이 자주 닿아 배꼽 부분이 새까맣다. 기자도 배꼽 주변을 시계방향으로 만지며 소원을 빌어본다.
도선사에는 포대화상과 함께 석불암이 유명하다. 북한산 기운을 내려 받았다는 석조마애불이 모셔진 곳이다. 수많은 참배객들이 예불 드리는 광경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석불 가운데 가장 참배객이 많다고 해도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기도를 하고 다시 내려오는 길. 한 불자가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수유동에 사는 이경래 보살이다.
“도선사 취재 오셨어요?”
“네, 날씨가 선선하니 좋네요”
“풍경이 너무 예뻐 기도하러 올라갈 때는 버스를 이용했는데 내려갈 때는 걸어가고 있어요. 기도하고 내려오니 마음이 편하고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것들도 잘 보이네요” 

이 보살은 다음번에는 등산을 겸해 오려 한다고 말했다.
이른 낙엽이 밟힌다. 낙엽 밟는 소리가 가을 바람을 따라간다. 사바세계의 복잡한 번뇌의 소리가 북한산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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