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동화사 산신의 비애

순복음 교회 목사 침입

산신 눈에 푸른색 낙서

한국 기독교 폐해 보여줘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의 규모를 자랑하는 순복음교회 교단의 목사님 한 분이 동화사를 방문하셔서, 산신각에서 낙서를 하고 조사전의 다기에 오줌을 싸는 행사를 거행하셨다. 전세계적으로 기독교 목회자의 평소 행실이 그러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일이었다.

1816년 9월 영국의 해안 탐사선 알레스트호와 리라호가 충남 서천 마량진에 상륙, 조선인 첨사 조대복에게 영어성경을 전달한 이후로, 선교사인 칼 귀츨라프(Karl Gutzlaffㆍ1803~1851)가 조선에 기독교 전도를 위해 최초로 들어왔다.

그 이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 한국 기독교는 이제 한국 사회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인구로 사회각층에 지도적인 역할을 하는 인사들을 배출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고 기독교의 특성에 있다. 기독교가 전파되는 나라마다 그 나라의 미풍양속이 파괴되고, 가족간의 결속이나 선량한 제도가 파괴되는 일이 빈번하다.

특히 몇백만명에 달하는 미국의 인디언들을 말살한 미국식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한국 기독교의 이교도와 이단에 대한 폭력성과 공격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드디어 사회학자들은 한국기독교의 양대 특성을 배타성과 호전성으로 규정한다.

출가하고 난 후 작은 누이네 집에 서류를 하나 부탁해서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벨을 누르고 현관에 나타난 조카들은 어릴 적에 업어 키운 녀석들이었고, 10년만에 만났어도 내가 누군지 알아보는 눈치였다. 그러나 조카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주일학교 때 목사님이 부처님은 악마고 스님들은 악마의 제자들이라고 했기에 문을 못 연다고 했다.

기독교는 화목한 가족을 파괴하는 성향의 종교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스님들이 출가하는 이유는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가족들을 구제하려는 첫 번째 목적에서 그 출가의 근거를 둔다. 사랑하는 이웃과 가족들이 극락왕생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자신의 가족이 단순히 주님의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심장을 지니고 있다.

팔공산 동화사 산신각은 대웅전을 바라보고, 왼쪽에 대웅전보다 몇 자 이상 높은 위치에 모셔져 있다. 안에는 좌우로 신선들의 벽화가 있고, 정면에 폭포수와 호랑이를 등지고, 복숭아와 같은 과일을 바치는 시자와 차를 달이는 다동(茶童)이 소나무를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붉은 대례복을 입은 산신은 하얀 수염을 거룩하게 하고 정면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데, 목사님이 다녀간 이후로 파란 눈을 가지게 되었다. 왜 파란 눈을 그렸을까? 유대인인 예수님이 파란 눈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다수의 아랍인들이 검은 눈동자이기 때문이다.

파란눈은 기독교가 서구로 전파된 후에 서구의 안목과 자신들을 닮은 예수를 그리면서 생겨난 색깔이다. 파란 눈은 서양인을 대표하는 눈색깔이다. 목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가 파란눈을 지니고 있어서 불가의 산신을 파란눈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파란 눈을 그림으로써 이교도인 산신을 기독교화(化)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어리석고 미개한 이교도인 산신을 드디어 교화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이 파란눈이 아닐 확률이 훨씬 높다. 그는 예수님을 서양인으로 착각한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착각의 종교처럼 보인다. 외국에서는 더 이상 내지 않는 십일조를 열심히 내고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면 모든 죄가 탕감되고, 눈이 파란 이들이 주로 천국 입장이 가능하다고 믿는 착각과 꿈속의 종교이다. 부디 깨어나길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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