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5호 9월 12일]

 학승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의 적합한 뜻입니까?”
조주 스님이 침을 뱉었다.
학승이 물었다.
“그 일은 어떠합니까?”
조주 스님은 또 한 번 침을 뱉었다.

問 如何是祖師的的意 師涕唾 云其中事如何 師又唾地

조사의 뜻? 나는 그것에 침을 뱉어 주리라. 침을 뱉는 뜻이 무엇인가 물었는가? 그것에도 나는 침을 뱉어주겠다. 누가 감히 조주 스님의 침 뱉는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하겠는가? 마음이 추악함으로 덕지덕지 때묻어있는 사람은 조주 스님의 이 행동을 보고 추악하다고 몸을 떨어댈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대들이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대의 심성이 깊은 병이 들어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가슴에 손을 대고 자문해보라. 일상사에 흔들리고, 두렵고, 일치되지 않는가를. 그대가 조주 스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라면 일상사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늘 아래 자유로운 사람은 흔치않다. 법당에 올라가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참회하라. 그리고 초지일관 하나의 화두에 몸과 마음을 밀어 넣으라. 7일이 되기 전에 반드시 밝아질 날이 있다.

학승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행(行)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행(行)을 떠난 것이다.”

問 如何是沙門行 師云 離行

무엇이 진정한 사문의 행인가? 그것은 사문의 행을 떠난 것이다. 출가는 자유를 찾는 여행이다. 한 날 한 시도 그 ‘무엇’에도 정착하면 안 된다. 수행자는 떠남의 삶을 인생으로 여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구든지 여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점점 저쪽 죽음의 세계를 향하여 다가가고 있다. 그 과정이 인생이듯, 수행자의 인생도 떠남의 인생이다.
우리는 원래 부처이다. 부처는 그가 그냥 살아가는 길이 부처의 길이다. 부처의 길을 가는 자가 정해진 행에 집착하고 있으면 그것 자체가 이미 때 뭍은 행이 되고 만다. 인생이 한결같지 않듯 부처의 행도 한결 같지 않다. 부처는 그 어떤 행도 행할 수 있다. 그 행이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길이라면 부처는 그 길을 선택하여 간다.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길도 가야한다면 서슴없이 그 길을 간다. 따라서 부처의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학승이 물었다.
“참다운 휴식처를 노스님께서 가리켜 주십시오.”
조주 스님이 말했다.
“가리키면 휴식처가 아니야.”

問 眞休之處請師指 師云 指卽不休

마음이 편안하면 어디에 있든 편안하다. 마음이 불편하면 아무리 좋은 곳에 살아도 편안하지 않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쉴 것인가? 일체를 놓아버리는 것이다. 지식, 지위, 생각, 철학, 종교, 불교, 승려 등 머리에 있는 것을 다 비워버리고 태초의 인간처럼 원시시대로 되돌아가라. 오로지 그대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가족만은 버리지 말라. 무심으로 일하고 또 일을 하라. 정말 그렇게 모든 것을 버렸을 때는 모든 것을 갖게 된다.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상의 최고 부자와 최고 가난한 자이다. 정말 그렇다. 최고 부자는 다 가져서 행복하고, 가난한 자는 가지지 않아서 행복하다. 왜냐하면 철저한 거지는 세상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또 무엇을 가지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편안하고 행복하다. 만일 머릿속을 철저히 비우기만 한다면 그대는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이다.
어떻게 버릴 것인가? 부처는 사자에 비유한다. 백수의 왕이다. 선문(禪門)에는 장부의 기개를 원한다. 부처의 자식은 누구나 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과감하고 용기 있는 자만이 다 버리고 홀로 걸어간다. 진정 부처의 기상을 이어받았다면 그 누구의 평에도 신경 쓸 것 없다. 코끼리처럼 묵묵하게 저돌적으로 부처님처럼 그 누구에도 의지하지 말고 걸어가라.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마치 장벽과 같아야 가히 도에 들어간다[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障壁 可以入道]’고 했다. 수행자들은 명심하라. 남김없이 버려야 한다. 쉰다는 것은 쉽지 않다. 휴식처에 들어가는 것은 대단한 결심으로 스스로 해야 한다. 휴식처는 일체를 떠난 곳이다. 또한 모든 곳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휴식처야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휴식처가 아니다. 휴식처는 정해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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