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북한산 도봉옛길 그리고 광륜사, 능원사, 도봉사

청화 스님의 법향 서린 광륜사
한 폭의 황금빛 그림 능원사
고은의 시 한 수 생각나는 도봉사
 

도봉 옛길을 찾은 불자와 등산객들이 부처님 벽화가 그려진 도봉사 담장길을 걷고있다. 담장 안으로 들어가 30m쯤 오르면 작은 마당과 법당이 있는데 경내가 공원같다.
계절이 변하고 있다. 하늘은 하늘 위에 하늘을 쌓고, 바람은 어느새 옷깃을 파고든다. 들어선 숲길의 그늘 위에서 더운 발자국이 식고, 숲을 채우고 있는 푸른 잎들의 대형은 차가운 하늘에 흐르는 철새의 군무를 닮아가고 있다. 북한산 둘레길 18구간 ‘도봉옛길’이다.

도봉1동 340번지 다락원에서 시작해서 도봉동 무수골까지 걷는 길이다. 다락원은 조선시대 여행하는 관원을 위한 원(院)이었는데 원집이 다락으로 되었던 것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무수(無愁)골은 세종이 다녀가면서 붙인 이름으로, 물 좋고 풍광이 좋아 근심이 없는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거리는 3.1km이며, 보통 걸음으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길은 힘들지 않다. 길에는 광륜사(光輪寺)와 능원사(能園寺), 도봉사(道峰寺)가 있다. 이들 절은 둘레길에 바로 문을 대고 있어 쉽게 들를 수 있다. 도봉옛길은 도봉산과 이어지는 구간으로 다락원에서 시작하는 방법이 있고, 다락원에서 700m 지점인 광륜사부터 걷는 방법이 있다.

2002년 청화 스님이 문을 연 광륜사
돌계단과 흙길을 지나면 구불구불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아직은 태양에 힘이 좀 있다. 걷기 시작하자 마자 땀이 흐른다. 소나무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능선들을 바라보면서 700m 정도 걸으면 내리막이 시작되고 자운봉으로 가는 등산로와 만난다. 등산로와 만날 때쯤 작은 절 돌담이 눈에 들어왔다. 돌담 앞에는 밤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여름 내 새들이 노래를 적던 나뭇가지엔 팽팽하게 부푼 밤알들이 걸려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길이 바뀌는 것이었다.
반 쯤 열린 문에 금강역사가 팔을 걷고 서있다. 광륜사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금강역사의 눈을 겨우 피해 절에 들었다. 10년 전에 한 번 온 적이 있다. 광륜사는 673년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당시의 이름은 만장사(萬丈寺)였으며, 천축사, 영국사와 함께 도봉산의 대표적인 가람이 되었으나, 조선 중기에 들어 양주목사 남언경에 의해 영국사(현 도봉서원)가 폐사되었고, 만장사 또한 쇠락해오다 임진왜란 때 거의 대부분 소실됐다. 조선 후기에 조대비 신정(神貞)왕후(1808~1890)가 부친인 풍은 부원군 조만영이 죽자 풍양 조씨 선산과 인접하고 산수가 수려한 도봉산 입구에 새로 만장사라 절을 짓고 만년을 보냈는데, 지금의 광륜사다. 1970년에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고, 2002년 당시 선지식으로 존경받던 곡성 성륜사 조실 무주당 청화 스님(1923~2003)이 광륜사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문을 열었다. 대웅전에는 불자 한 분이 청화 스님 진영 밑에서 독경을 하고 있다. 부처님 말씀 위에 감은 눈을 올려놓고 한 자 한 자 읽어간다. 멀리서 보니 수월관음도가 따로 없다.
10년 전 그날, 청화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극락세계가 저 십만억 국토를 넘어서 있다. 또는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이 우리 마음 밖에 있다고 생각할 때는 참다운 염불도 못되고, 참다운 선도 못됩니다. 부처님께서 극락세계가 밖에 있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마음 밖에서 찾지 마세요.” 법회가 끝나고 법당을 나와 기자의 카메라 안으로 꼿꼿하게 들어오던 스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사하는 이들의 시선을 일일이 시선으로 꼭 쥐어주던 스님의 눈빛은 따뜻하고 넓었다. 선지식의 눈은 밝음으로 빛나기 보다는 따뜻함으로 빛났고, 높음으로 우러러 보이기보다는 넓음으로 우러러 보였다. 방 안에 들어 인사를 드릴 때 스님은 무릎을 꿇고 합장으로 모든 이의 인사를 받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마당을 걸을 때마다 옛날이 떠올랐다. 스님은 이듬해인 2003년 11월에 입적했다. 스님의 따뜻하고 넓은 눈빛은 볼 수 없지만 광륜사 마당엔 스님의 기억이 있었다.

초록 숲길에 걸린 황금빛 그림 같은 능원사
광륜사를 나와 다시 둘레길을 걷는다. 약 200m 쯤 걸으면 능원사다. 미륵존불을 모신 능원사는 경기도 여주에 본사가 있고 서울 도봉산과 부산에 선원을 두고 있다. 마당이 널찍하고 전각들엔 모두 황금단청을 했다. 황금빛 일주문을 지나 도량에 들어서면 웅장한 용화전(龍華殿)이 눈에 들어온다. 초록의 숲 도봉옛길에는 황금색 도량 능원사가 클림트의 황금빛 그림처럼 걸려있다. 황금빛 단청을 감상하고 능원사를 나와 200m 쯤 걸으면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그려진 벽화를 만나게 된다. 도봉사다. 둘레길 한편에 그려진 탱화를 감상하며 도량에 들었다. 경사진 길을 30m쯤 오르면 작은 마당과 법당이 있다. 공원 같다. 도봉사는 고려 때 해거국사(899~974)가 창건했다. 고려 현종은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자 도봉사에서 정사를 봤다. 전쟁과 화재로 여러 번 소실과 중수를 거듭해오던 도봉사는 1961년 벽암 스님이 법당 및 부속 전각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법당에서 스님이 예불을 올리고 있다. 마당엔 까치 한 쌍이 날개를 잊은 듯 거닐고, 법당으로 오르는 돌계단 위에는 개미들이 줄지어 가고 있다. “개미행렬이 / 길을 가로질러 가는 것은 / 결코 / 이 세상이 / 사람만의 것이 아님을 / 오늘도 / 내일도 / 또 내일도 / 조금씩 조금씩 깨닫게 하는 것인지 몰라 // 햇볕이 숯불처럼 뜨거운 한낮 뻐꾸기 소리가 그쳤다” 고은의 시다. 마당을 거닐던 까치 한 쌍이 날개를 찾은 것 같다. 예불이 끝나자 숲으로 날아간다. 예불소리 또한 사람만이 듣는 것은 아니었다.
도봉사를 나와 다시 둘레길에 선다. 걷다보니 곳곳에 안내판이 있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알 낳기’, ‘쪽동백나무’ 등 숲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가을철 탐방로에는 도토리를 매단 채 떨어져 있는 참나무 가지를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과연 누가 그랬을까? 주인공은 도토리거위벌레다. 여물지 않은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은 후 가지를 주둥이로 잘라 땅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도토리를 먹고 자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숲에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숲도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대웅전이 보이는 도봉사 전경.
도봉사를 지나면서 부터는 거의 내리막이다. 쉽다. 갑자기 숲이 시끄러워졌다. 소나기다. 비가 내는 소리인지 숲이 내는 소리인지. 숲은 시끄러웠다. 지나온 길이 비에 젖었고, 남아 있는 길도 젖었다. 젖은 둘레길을 빠져나오자 소나기가 그쳤다. 3km의 둘레길, 도봉옛길을 걸으면 세 곳의 절을 만날 수 있다. 선지식의 기억이 남아 있는 광륜사. 초록빛 숲에 걸린 황금빛 그림 능원사. 그리고 고은의 시가 떠오르는 도봉사다. 3km의 길 위에 그렇게 세간과 출세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북한산 둘레길 18구간 '도봉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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