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북한산 도봉옛길 그리고 광륜사, 능원사, 도봉사
청화 스님의 법향 서린 광륜사
한 폭의 황금빛 그림 능원사
고은의 시 한 수 생각나는 도봉사
도봉1동 340번지 다락원에서 시작해서 도봉동 무수골까지 걷는 길이다. 다락원은 조선시대 여행하는 관원을 위한 원(院)이었는데 원집이 다락으로 되었던 것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무수(無愁)골은 세종이 다녀가면서 붙인 이름으로, 물 좋고 풍광이 좋아 근심이 없는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거리는 3.1km이며, 보통 걸음으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길은 힘들지 않다. 길에는 광륜사(光輪寺)와 능원사(能園寺), 도봉사(道峰寺)가 있다. 이들 절은 둘레길에 바로 문을 대고 있어 쉽게 들를 수 있다. 도봉옛길은 도봉산과 이어지는 구간으로 다락원에서 시작하는 방법이 있고, 다락원에서 700m 지점인 광륜사부터 걷는 방법이 있다.
반 쯤 열린 문에 금강역사가 팔을 걷고 서있다. 광륜사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금강역사의 눈을 겨우 피해 절에 들었다. 10년 전에 한 번 온 적이 있다. 광륜사는 673년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당시의 이름은 만장사(萬丈寺)였으며, 천축사, 영국사와 함께 도봉산의 대표적인 가람이 되었으나, 조선 중기에 들어 양주목사 남언경에 의해 영국사(현 도봉서원)가 폐사되었고, 만장사 또한 쇠락해오다 임진왜란 때 거의 대부분 소실됐다. 조선 후기에 조대비 신정(神貞)왕후(1808~1890)가 부친인 풍은 부원군 조만영이 죽자 풍양 조씨 선산과 인접하고 산수가 수려한 도봉산 입구에 새로 만장사라 절을 짓고 만년을 보냈는데, 지금의 광륜사다. 1970년에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고, 2002년 당시 선지식으로 존경받던 곡성 성륜사 조실 무주당 청화 스님(1923~2003)이 광륜사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문을 열었다. 대웅전에는 불자 한 분이 청화 스님 진영 밑에서 독경을 하고 있다. 부처님 말씀 위에 감은 눈을 올려놓고 한 자 한 자 읽어간다. 멀리서 보니 수월관음도가 따로 없다.
10년 전 그날, 청화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극락세계가 저 십만억 국토를 넘어서 있다. 또는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이 우리 마음 밖에 있다고 생각할 때는 참다운 염불도 못되고, 참다운 선도 못됩니다. 부처님께서 극락세계가 밖에 있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마음 밖에서 찾지 마세요.” 법회가 끝나고 법당을 나와 기자의 카메라 안으로 꼿꼿하게 들어오던 스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사하는 이들의 시선을 일일이 시선으로 꼭 쥐어주던 스님의 눈빛은 따뜻하고 넓었다. 선지식의 눈은 밝음으로 빛나기 보다는 따뜻함으로 빛났고, 높음으로 우러러 보이기보다는 넓음으로 우러러 보였다. 방 안에 들어 인사를 드릴 때 스님은 무릎을 꿇고 합장으로 모든 이의 인사를 받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마당을 걸을 때마다 옛날이 떠올랐다. 스님은 이듬해인 2003년 11월에 입적했다. 스님의 따뜻하고 넓은 눈빛은 볼 수 없지만 광륜사 마당엔 스님의 기억이 있었다.
도봉사를 나와 다시 둘레길에 선다. 걷다보니 곳곳에 안내판이 있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알 낳기’, ‘쪽동백나무’ 등 숲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가을철 탐방로에는 도토리를 매단 채 떨어져 있는 참나무 가지를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과연 누가 그랬을까? 주인공은 도토리거위벌레다. 여물지 않은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은 후 가지를 주둥이로 잘라 땅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도토리를 먹고 자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숲에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숲도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