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제일 아난다- <중>비구니 출가와 시자로서의 삶

비구니 출가의 최대 조력자
부처님께 세 번 걸쳐 간청
사사로운 인연 배제 약속받고
부처님을 그림자 처럼 모셔

거조암 아난 존자 나한상.
부처님의 아버지 정반왕은 번조증(煩燥症, 열이 높아 손발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증상)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이다. 정반왕은 부처님과 석가족 출가자들을 간절히 찾았다. 전갈을 받은 부처님은 난다를 먼저 보내고, 자신도 뒤이어 정반왕에게 갔다. 자신을 찾아온 부처님에게 정반왕은 간절히 말했다.

“부처님,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저의 수생에 걸친 공덕과 보리수 아래에서 얻은 이익이 아버지를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을 들은 정반왕은 손을 모아 합장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국상이 진행됐고, 부처님도 정성스럽게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국모, 부처님께 출가를 청하다
장례를 마치고 부왕의 유골을 수습해 탑을 세운 후였다. 국모인 마하파자파띠가 부처님을 찾아와 황금가사를 보시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황금가사를 자신이 아닌 승가에 보시할 것을 권했다. 젖을 먹여 키운 이모의 보시를 마다한 것은 뒤에 이어질 요청을 알아서 였다.

“선왕이 세상을 떠나고 의지할 그늘이 사라졌습니다. 이 왕궁에는 혼자 남은 여인들이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불쌍한 여인들을 세존의 그늘에 있게 하소서.”
“이 교단에 여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청하지 마십시오.” 부처님은 단호히 청을 거절했다.

수 차례에 걸쳐 애원을 했지만 부처님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상심한 마하파자파띠는 울며 숲을 떠났다. 여인들의 청을 물린 부처님은 새로 출가한 비구들과 함께 바이살리의 숲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마하파자파띠가 오백 명의 여인을 이끌고 바이살리의 숲으로 왔다. 이들은 모두 화장을 지우고 머리를 깎았다. 거친 베옷을 입었으며, 맨발이었다. 아무런 준비없이 먼 길을 온 이들의 모습은 초췌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 투성이였고, 맨발은 벗겨져 피가 배어나왔다.

여인들의 소리에 놀라 나온 아난다를 붙잡고 마하파자파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인정이 많던 아난다는 여인들을 다독였다.

“제가 부처님께 가서 여쭙겠습니다. 눈물을 거두십시오.”
말을 마친 아난다는 급히 부처님께 마하파자파띠와 오백 여인이 출가를 청하고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번에도 단호히 그들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가사 자락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세존이시여, 마하파자파띠는 젖을 먹여 당신을 키운 어머니이십니다. 그들의 출가를 허락해주십시오.”
“아난다여, 여자들이 교단에 들어오는 것은 청하지 말라.”

그림= 김흥인
여성 출가의 길을 열다
세 번의 청에도 부처님은 단호했다. 아난다는 눈물을 훔쳤다. 옷깃을 바로 잡고 이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여자도 수행하면 남자와 같이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할 수 있다.”

아난다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여자도 수다원과와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 등 4과(果)를 증득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다. 아난다여. 여자도 수행을 하면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
“부처님 만일 여자도 아라한이 될 수 있다면, 이 여인들의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아난다의 거듭되는 간청에 부처님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만약 여인이 사문이 되고자 한다면 여덟 가지 공경하는 법(八敬之法)을 위반하지 않고 목숨이 다하도록 배워야 한다. 마치 물을 막고 제방을 잘 만들어 물이 한 방울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승단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

아난다는 기쁜 소식을 마하파자파띠와 오백 여인들에게 알렸다. 국모의 출가가 알려지자 부처님의 아내 야소다라와 난다의 아내 자나빠다깔라니, 난다의 여동생 순다리난다도 출가했다. 가섭의 아내 밧다까삘리니도 비구니 승단에 귀의했다. 명망 높고 뛰어난 여인들로 구성된 비구니 승단은 이후 당당히 부처님 교단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카스트 제도의 신분사회에서 여인의 출가는 혁신이었다.

하지만, 아난다는 여인의 출가를 간청했다는 이유로 부처님 열반 후 교단의 문책을 당하게 되지만, 이는 훗날의 이야기다.

아난다, 부처님의 시자가 되다
부처님이 성도한지 20년, 이제 부처님도 세수가 60에 가까워졌다. 기원정사에 머물던 여든 명의 장로가 모두 부처님이 계시는 향실에 모였다. 부처님의 새로운 시자를 뽑기 위해서 였다.

사실 부처님의 시자는 이미 여러 명이 있었으나, 제대로 시봉하는 자가 없었다. 심지어는 부처님을 버려두고 가거나 발우를 깨뜨린 자도 있었다. 상수 제자 사리불이 가장 먼저 일어나 합장하고 시자가 되길 청했다.

“제가 세존의 시중을 들겠습니다.”
“안된다. 그대 또한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이다. 그리고 그대의 주위에는 법문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 그대에게 시자는 맞지 않다.”  

장로들이 돌아가며 시자가 되길 청했지만, 부처님은 모두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아난다에게 차례가 돌아왔으나 나서서 시자가 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대는 시자가 되길 청하지 않는가?”
아난다는 부처님이 세 번 질문하고 나서야 합장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말했다.

“부처님께 올려진 의복과 공양을 저에게 주어도 받지 않겠습니다. 신도들의 초대를 받아 가시는 자리에는 함께 가지 않겠습니다. 제가 의심나는 것이 있을 때 언제든 질문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러면 기쁜 마음으로 시중을 들겠습니다.”

아난다는 자신이 부처님의 사촌이었기 때문에 더욱 행실을 조심해야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 같은 조건을 부처님께 제시한 것이다. 부처님도 아난다의 깊은 뜻을 알고 있었다.
“훌륭하다. 아난다. 너의 뜻대로 하라.”

부처님의 정식 시자가 된 아난다는 그림자 같이 따라다니며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부처님을 모셨다.

전생의 도반이 사제 관계로
어느 날 부처님과 아난다는 바라나국에 잠시 들렀다. 한 곳에 이르자 부처님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광명과도 같은 환희를 보이는 부처님께 아난다가 연유를 물었다. 부처님은 오래 전 가섭불 시대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이곳에는 본디 큰 고을이 있었고, 환예(歡豫)라고 하는 옹기장이가 하나 살고 있었다. 그는 사람 됨됨이가 자애로웠고, 자주 부처님께 나아가 맑은 교화를 받았다. 그런 환예에게는 화결이라는 죽마고우가 있었다.
어느 날 둘은 가섭여래가 있는 곳을 지나게 됐고, 평소 불심이 깊은 환예는 친구를 이끌고 설법을 듣기 위해 갔다. 가섭불 앞에 선 환예는 가장 먼저 엎드려 절을 올렸다. 하지만, 화결은 그저 예만 갖추고 물러나 앉았다. 환예가 가섭여래에게 간청했다.
“화결은 제 오랜 벗이지만 아직 미혹해 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어리석음을 없애주소서.”
이내 가섭여래는 화결에게 맞춰 설법을 하니 그의 마음이 열려 삼보를 공경하게 됐고, 출가해 불가에 귀의했다.

이야기를 마친 부처님은 아난다와 동행한 비구들에게 말했다.
“그때의 화결은 지금의 내 몸이요, 환예는 지금의 아난다이다. 아난다는 나의 좋은 친구로서 나를 이끌고 가섭불에게 경을 듣게 해 나를 부처가 되게 했다. 무릇 어진 벗의 충고는 만복(萬福)의 터전이다.”

부처님의 열반을 예지하다
아난다가 부처님의 시자가 된지 27년, 홍안의 청년도 쉰 살을 넘었다. 어느 날 아난다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기묘한 꿈은 모두 일곱 가지나 됐다.

첫 번째 꿈은 큰 바다가 불에 타고 있었고, 두 번째에는 태양이 없어져 세상이 암흑천지가 됐다. 세 번째 꿈은 비구와 비구니가 가사를 입지 않고 재가 신도가 교단을 짖밟고 있었다. 다음은 비구, 비구니들이 법의를 입지 않고 가시밭길에 있었고, 다섯 번째 꿈에는 커다란 멧돼지가 전단나무 뿌리를 파헤쳤다.

여섯 번째 꿈에는 큰 코끼리가 작은 코끼리를 죽이고, 사자의 몸에는 벌레가 생겨 사자의 몸을 파먹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머리위에 수미산이 얹혀 있었지만 전혀 무겁지 않았다.

아난다의 일곱 가지 꿈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이내 한탄했다.
“오랜 세월 뒤에 비구, 비구니들이 법의를 입지 않고 계를 깨뜨리고 속된 짓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처자를 거느릴 것이다. 또한 말법시대가 되면 비구, 비구니가 부처의 법을 빌어 생활의 수단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꿈은 부처의 열반을 의미한다. 나는 90일 안에 열반에 들 것이다.”

아난다는 당황해 부처님의 얼굴을 보았다. 부처님은 일체의 변화도 없었다. 옅은 미소만 지긋이 번질 뿐이었다. 하지만, 아난다는 그때까지는 몰랐다. 자신이 부처님의 수명을 연장시키지 않게 한 장본인이 될 것이라고는.

참고문헌 〈부처님의 생애(조계종 교육원)〉, 〈부처님 십대제자(성각 스님)〉, 〈붓다 입멸에 관한 연구(안양규)〉, 〈경률이상 제15권〉, 〈불모니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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