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하는 남자

▲ 삽화=강병호

어느 나라에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식이 없어 항상 근심이 많았다. 어느 날 집안 하인이 부자에게 새로운 소식을 알려 줬다.

“윗마을에 천신이 사는데, 그에게 소원을 빌면 뭐든지 다 들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 천신을 찾아가 기도를 올린다고 합니다.”

부자는 이 말을 듣고 바로 천신을 찾아갔다.
“자네는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왔는가?”
“저는 자식이 없습니다. 천신님은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만일 저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당신은 평생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제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당신은 죽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천신은 곰곰이 생각했다.
‘저 사람이 하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분명 내가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못된다. 묘책을 세워야겠다.’
천신은 결국 자신이 모시는 마니발다라 신에게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마니발다라 역시 묘책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마니발다라는 다시 바이슈라마나왕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다.

“미안하네. 그가 자식을 갖게 할 수 있는 능력은 나에게도 없네. 대신 제석천왕에게 가서 부탁해 보도록 하겠네.”
바이슈라마나왕은 하늘로 올라가 제석천왕에게 사정을 말했다.
“얼마 전 제 신하 마니발다라가 저를 찾아와 한 남자가 자식을 원하고 있으니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는 이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마니발다라의 신하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부디 저의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그 일은 인연이 닿아야 되는 일이다. 조금만 기다려 보거라.”

제석천왕은 하늘에 사는 사람 중 곧 목숨이 다하는 이를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이제 너의 목숨은 곧 끝나게 된다. 너는 목숨이 다하거든 저 하늘 아래에 사는 부자의 집 아들로 태어나거라.”
“저는 다음 생에 출가해 부처님의 제자로 살고 싶습니다. 제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는 것은 오히려 출가하는데 어려움만 줄 것입니다. 저는 평범한 집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만일 네가 출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내가 반드시 도와주겠다.”

얼마 후 하늘에 살던 사람은 목숨을 마쳤다. 그러자 부자의 아내는 바로 임신을 하게 됐다. 10달이 지나 부자의 아내는 아들을 출산했다. 부부는 그들의 아들을 항하달이라 이름지었다. 성인이 된 항하달은 결국 자신의 뜻대로 출가하기 위해 부모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부처님의 제자로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가 출가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크게 화를 냈다.
“우리에게 자식은 너 하나다. 나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아 편히 살 수 있는데 왜 출가를 하려 한단 말이냐. 정혼자를 알아봐뒀으니 말썽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지내거라.”

아버지가 끝내 허락하지 않자 항하달은 매우 슬퍼했다.
“내가 평범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속세를 떠나기 쉬웠을 텐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평범한 집안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야겠다.”

결국 항하달은 자신의 목숨을 끊고 새로운 생을 살고자 결심했다. 그는 집을 몰래 빠져나와 암벽에 오른 뒤 그 위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어느 곳도 다친데 없이 멀쩡했다. 그는 다시 독약을 구해 마셨다. 하지만 독이 몸 안에 퍼지지 않아 죽지 않았다. 이번에는 강가에 뛰어들었으나 물 밖으로 밀려나와 버렸다.

그는 결국 나라의 법을 어겨 왕의 손에 죽기로 결심했다. 그는 왕비와 궁녀들이 목욕을 하는 연못에 몰래 들어가 그들이 벗어둔 옷을 모두 훔쳐 달아나다, 보초를 서던 경비병들에게 발각돼 왕에게 끌려갔다. 왕은 이 사실을 알고 매우 분노해 그 자리에서 항하달을 죽이려 했다. 왕은 항하달을 향해 활을 쐈다. 하지만 화살이 다시 왕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몇 번을 되풀이해 활을 쐈지만 화살이 되돌아오긴 마찬가지였다. 왕은 깜짝놀라 그에게 물었다.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사람이냐. 귀신이냐.”
항하달은 왕에게 그동안 죽고자 했으나 죽지 못했던 사연을 이야기했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그의 바람을 들어주기로 했다.
“내가 너의 출가를 허락하니 앞으로 거룩한 불도를 닦도록 하여라.”
왕은 항하달을 데리고 부처님을 찾아갔고, 그는 그 자리에서 출가해 이후 아라한의 도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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