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연꽃이라기 보다 난초처럼…”
“법정 스님 연꽃이라기 보다 난초처럼…”
  • 글=변택주 사진=고영배
  • 승인 2012.09.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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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

법정 스님한테 ‘부처님 생애’ 배워
첫 인상 “중이 시시껄렁하게 글 쓰나”
“그때 저는 禪중심 사고 갖고 있었죠”

선방정진 ‘깨달음’ 오지 않아 회의
승가대중단체 ‘선우도량’ 설립
법정 스님은 수련원 열어 불자교육

“똥냄새 없이 꽃피고 향내날 수 없어
성철·법정 스님의 환상 벗어나
냉철한 비판·진지한 존경 함께가야”


“법정 스님이 해인사 강원에서 ‘부처님 생애’를 가르치셨어요. 제가 스무 살 남짓이었으니까. 한 사십이삼 년 지난일이네요. 해인사 강원에 있다가 하루빨리 참선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에 걷어치우고 도망 나와서 선방엘 갔죠. 송광사 선방에서 살 때 법정 스님이 불일암을 짓고 내려오셔서 다시 만났어요. 만남이라고 해봤자 스님은 불일암에 계시고 저는 송광사 선방에 있었으니까 지나면서 인사나 드리는 정도였어요.” 대한불교조계종화쟁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 담담하게 법정 스님과 인연이야기를 꺼낸다.

요즘엔 스님들이 글 쓰는 일이 흔한 일이지만, 오래전 절집에서는 글 쓰는 일이 환영받지 못했다. 도법 스님도 글 쓰는 스님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만은 않았다고 돌아본다. “뭔 중이 시시껄렁하게 글이나 쓰고 있나 생각했어요. 그때 정서로는 용납되지 않았지요. 그즈음 돈점(頓漸)논쟁이 붙으면서 법정 스님도 글로 의사 표시를 한 적이 있는데 기억이 선명하지 않고, 법정 스님이 자리이타 개념과 연결시켜서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것도 못마땅하게 생각했죠. 그때는 제가 선(禪) 중심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참선해 깨닫는 것 말고는 다 시시하게 여겼어요. 그런 생각이 들도록 강하게 불을 지핀 분이 성철 스님이죠. ‘부모가 죽어도 쳐다볼 것 없다. 수좌(首座)는 오로지 참선해서 기어코 깨달음을 얻어야한다’고 했죠. 그때는 주류가 선방수좌였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말석이긴 하지만 어쭙지않게 고무되어 있었어요.” 1981년까지 한국불교는 깨달음과 수행에서 보조국사 지눌 스님 돈오점수 사상을 선불교 핵심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은 당신 책 〈선문정로〉에서 깨친 뒤에도 계속 닦아야 한다는 돈오점수를 비판하면서 깨달은 뒤에는 더 이상 닦을 필요가 없다고 돈오돈수를 주장해 돈점논쟁 불을 지폈다.

도법 스님은 십여 년이 넘도록 선방에서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지만, 뜻대로 깨달음이 오지 않자 회의가 들면서 다른 사람은 어떤가 싶어 곁을 둘러봤다. 그러나 선배들이나 친구들 또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만 그런가? 해서 봤더니만 비슷비슷해요. 오로지 내 문제에만 골몰되어 있다가 바깥을 보게 되었어요. 둘러보니까 경전에서 배우고 법문을 듣고 전통에서 알았던 내용과 달리 이치에 닿지 않는 점이 많고, 도덕 관점으로 봐도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요. 합리는 더욱 아니고. 좌절감과 회의가 밀려들었어요. 이건 아니다. 내 길을 찾아야하겠다고 나오죠.” 그때 송광사 방장 구산 스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도법 수좌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도법 스님이 선원에서 나와 자기 길을 가겠다며 출가한 절인 금산사로 돌아간다고 하자, 도반 하나가 대뜸 “네 본사를 찾아가 불을 싸질러버릴 테다.”하고 거칠게 나왔다. “분위기가 그랬어요. 허튼 짓거리한다는 말이잖아요. 이 길이 으뜸인데, 제법 잘 가고 있다며 기대를 걸었는데 떠난다고 하니까. 변절이랄까 낙오하는 친구에게 애정표현을 그렇게 했어요. 또 제가 지금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대단한 선배 한 분은 ‘너, 인생 갈림길에서 빠이빠이 하는 거다 이제.’ 그랬어요.” 고행을 포기한 싯다르타에게 침을 뱉고 떠나간 다섯 비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모르겠다며 떠났는데, 정리하는데 한 오년 넘게 걸렸어요. 논리로도 정리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판단이 명확히 서지 않는 점도 있고 해서 나름대로 논리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그러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최근 민족사 윤창화 사장이 ‘경허 스님 무애행 후회’란 주제로 논문을 발표해 세상이 떠들썩한데, 법정 스님은 당시 막행막식(莫行莫食)을 하는 일부 몰지각한 승려들은 물론 일반불자들에게도 계정혜 삼학에 따른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겨 교육제도 개혁에 힘을 쓰는 한편 송광사수련원장을 맡아 불자교육을 이끌어 템플스테이 효시를 이뤘다. 당신 또한 엄격하게 계율을 지키면서, 처음 계를 받은 하안거해제 때면 늘 초발심자경문을 읽으며 처음 마음을 돌이켰다.

도법 스님은 모순과 혼란을 거듭하는 한국불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도반들과 머리 맞대고 고민하다가 ‘선우도량’이란 승가대중단체를 만든다. 선우도량은 ‘우리가 한국불교 정체성을 제대로 정립해서 종도들이 자기 사상과 정신으로 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하자.’고 결의하고 교육문제에 매달린다. 그때 선우도량에서 준비한 교육 틀이 94년 조계종단 개혁 때 거의 모두 반영이 되었다. “교육문제를 발제하고 토론하면서 법정 스님을 찾았어요. 기조발제를 부탁드리니까 ‘되도 않는 헛짓거리하지 마라.’고 말씀을 하면서도 편지를 하셨어요. 당신도 관심을 갖고 계시면서도 좌절감을 드러낸 말씀이죠. 그 어른도 좌절감 때문에 바깥으로 나서지 않으셨을 거예요. 오셔서 기조발제를 한다고 하셨는데, 무슨 일이 생겨 못 오시고 글만 보내셨어요. 한국불교를 참신하고 바람직하게 만들려는 취지에서 같이 살고 살지 않고, 멀리 있고 가까이 있고 관계없이, 함께 공감하고 같이 가야 할 분으로 신뢰하고 관심을 이어 왔죠. 돈연 스님이 연결고리였어요. 돈연 스님은 오래도록 법정 스님을 모셨으니까요.” 법정 스님은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 법석에서 가까이 있더라도 뜻이 같지 않으면 십만 팔천 리이지만, 멀리 있어도 뜻을 같이 한다면 늘 함께 한다고 말씀했다.

도법 스님은 최근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을 존경하더라도 비판할 일이 있으면 비판해야 한다. 부처님도 마찬가지다. 참다운 존경을 하려면 건강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이제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이 남긴 무소유 환상에서 벗어나야할 때라고 했다. 무슨 말씀인가? 이 물음에 도법 스님은 그 어른들 뜻과 상관없이 환상은 만들어진다. 그러나 석가모니부처님이 불교를 한 까닭이 환상을 깨자는데 있지 않느냐. 모든 사람은 꿈을 꾸자고 하는데 불교진리는 꿈 깨라는 말씀이다. 부처님은 그런 문제의식으로 불교를 했지만, 정작 사람들은 부처님을 가지고 자기 환상을 만들어내듯이,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처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어른들 환상도 만들어진다며 운을 뗀다. “불교관 문제라고 봐요. 성철 스님이 갖고 있는 불교관이나 실천론에 저도 한때는 공감했죠. 그것이 한국불교 대세였으니까요. 법정 스님은 건전하고 참신한 지성을 갖춘 불교인으로 이치에 닿는 올바른 수행자로 공감되는 점이 많은 분이었어요.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잖아요. 대승불교 세계관과 정신으로 제시된 불교인상이 보살인데, 대승보살 상징이 연꽃입니다. 연꽃은 피고름이 뒤범벅이 된 진흙탕에 뿌리내리고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피어내잖아요. 그러면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외려 둘레를 정화시키죠. 그런데 법정 스님이나 성철 스님 삶은 연꽃보다는 난초에 견줘야하지 않을까요. 고고하고 향기롭죠. 그러나 대승불교가 가리키는 인간상으로는 어떨까요? 물론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 삶도 보살 삶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그러나 탐진치라고 하는 피고름이 들끓는 현장에 두 발을 딛고 서서 꽃을 피우면서 탐진치란 피고름을 정화시켜냈다고 하기에는… 좀 다르죠. 그래서 저는 두 어른은 연꽃이라기보다는 난초꽃처럼 살아간 분들이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어른들은 그대로 너무 훌륭하고 고맙지요. 그러나 한국불교 현실에서는 연꽃에 견주어지는 불교인, 출가수행자가 더 절실하지 않을까요.”

도법 스님은 법정 스님이 대중과 부대끼지 않고 멀찌막이 떨어져 살면서 당신이 본 세상이나 생각을 아름다운 글로 풀어냈기 때문에, 수행자 삶은 마치 똥오줌은 없고 아름다운 꽃과 향기만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를 대중들에게 품게 만들었다고 말씀을 잇는다. “대중들은 수행자란 추한 똥도 역한 똥냄새도 없이 아름답고 향기롭기를 바랍니다. 법정 스님은 그렇게 사셨어요. 글에 드러나는 모습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법정 스님만이 진짜 스님이야. 고결하고 향기로워. 스님은 그래야 해’라는 환상이 만들어졌죠. 그 틀에 맞추면 다른 스님들은 너무 아닌 거죠. 그래서 실망하고 불만을 갖고 화를 내잖아요. 성철 스님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오년 동안 해인사 강원과 선방에서 살았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성철 스님은 별로 매력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 어른이 불교를 보는 안목은 저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떤 논리로도 수긍이 가지 않는 불합리한 점이 많아요. 다만 그 분이 깨달은 어른이고 선지식이니까 비록 제 이성과 사유로 이해되거나 수긍이 가지 않는다하더라도 제 능력으로 볼 수 없는 더 심오한 뜻이 있겠지 하는 차원에서는 모르겠지만, 승복되지 않는 점이 많아요. 그렇지만 그 분은 신화가 되셨잖아요. 세속을 멀리하고 은둔했기 때문에 세상에 오염되지 않아 청정하다는 환상이 만들어졌고, 그 어른이 검정고무신과 누더기로 상징되어지는 무소유도 본의가 어찌되었던 대중들한테 비쳐질 때는 법정 스님처럼 고결하고 담백한 꽃으로서 출가수행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환상을 떠올리게 했죠. 그렇지만 실제 삶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어쨌든 그 어른들도 밥도 먹고 옷도 입고 불도 때고 사셨잖아요. 성철 스님은 해인사, 백련암에 사셨고 법정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 사시다가 길상사에도 계셨는데, 해인사, 송광사, 길상사 이 절들이 돌아가니까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 삶이 가능했죠. 그러면 백련암이나 불일암이 돌아가도록 하는 힘은 뭐겠어요? 들여다보면 돈 백 원 벌려고 땡볕에서 땀 흘리고 추위에 떨고, 이른 새벽에서 늦은 저녁까지 사하촌(寺下村) 거리에서 나무 팔고 감자 판돈이 들어와서 절이 운영된다는 말이에요. 또 절을 운영하려고 기복(祈福)이나 상업 수완을 끌어들이잖아요. 이곳을 저는 혼탁한 연못이라고 봅니다. 이 바탕에서 길상사도 돌아가고 불일암도 돌아가고 해인사도 돌아가고 백련암도 돌아가잖아요. 과연 그 분들 고결함과 향기로움이 혼탁함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현실은 모든 영광은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한테 가고 모든 비난은 상업화되고 기복으로 몰고 가는 절을 운영하는 사람들한테만 쏟아지잖아요.” 침대에 사람을 맞춘답시고 팔다리를 잘라내는 테세우스 침대처럼, 누구라도 환상으로 만들어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멋대로 재단하고 도리질을 치는 세태를 꼬집는다. 똥냄새 없이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고 향기가 풍겨날 수 없는데, 똥냄새 없이도 꽃이 피고 향내가 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지면 결국 실제 삶이 왜곡되고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판 없는 존경은 맹종일 수밖에 없고, 또 존경 없는 비판은 비난과 매도가 될 위험성이 높아 냉철한 비판과 진지한 존경이 늘 함께 가야만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이다.

돈오돈수를 주장해 돈점논쟁을 일으킨 책 〈선문정로〉 윤문을 도왔던 법정 스님은 윤문을 부탁하러 온 원택 스님에게 일점일획이라도 어른 뜻을 놓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겠다고 말씀했다. 그러나 정작 법정 스님은 ‘깨닫고 난 뒤에 계속 닦아야 한다.’는 돈오점수를 주장하는 쪽이었다. 그런데도 윤문을 정성껏 도와드린 까닭은 성철 스님을 존경하기 때문이었다. 법정 스님이 성철 스님과 뜻을 달리한 일이 더 있었다. 1968년 가을, 성철 스님은 해인사 방장이 되고 나서 신도들에게 삼천 배를 시켰다. 한여름 남녀대학생 수백 명이 법당에서 절을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바람에 옷이 젖은 몸에 달라붙어 보기 민망해 하던 법정 스님은 칼럼에 “몇 시간동안 몇 천배를 채우겠다는 기록의식에서인지, 아니면 최면상태에서 그런지는 몰라도 숨 가쁘게 굴신운동(屈伸運動)을 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부처님 앞에서 그토록 경박스런 동작으로 굴신한단 말인가.”라고 썼다. 방장스님은 신심을 가지라고 삼천 배를 시켰는데, 꼭 그랬어야 했느냐는 해인사 삼직(三職) 스님들 항의에 법정 스님은 미안하다. 그러나 신심도 없어 보이고 볼썽사나운데, 방장스님이 시킨 일이라고 입 다물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해 소동이 빚어진 일이 있었다. 그 밑바탕에 성철 스님을 존경한 법정 스님과, 존경했기에 건강한 비판을 한 법정 스님이 함께 자리했으리라.

만남이 ‘부처님 생애’이기 때문이었을까. 법정 스님이나 도법 스님은 석가모니부처님 말씀을 헤아리는 일이 불교 시작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다. 법정 스님은 〈불타 석가모니〉와 〈숫타니파타〉, 〈진리의 말씀〉을 간결한 우리말로 번역했으며, 사람 붓다 일대기를 꼭 써보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끝내 담아내지 못하고 열반에 들었다. 도법 스님은 〈내가 본 부처〉에 더 불행하기도 어려운 처지에서 스스로 평화가 된, 사람 싯다르타를 담백하고 순도 높게 풀어냈다. 부처님이 당신이 쓰던 말을 버리고 천민들 말로 진리를 펼쳤듯이, 법정 스님도 당신이 즐겨 쓰던 말을 내려놓고 한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한글로 세상과 진리를 나눴다. 도법 스님 또한 부처님이 49년 동안 한 발 한 발 걸어서 누구하고라도 말씀으로 진리를 나눴던 뜻을 깊이 헤아려 5년에 걸쳐 생명평화순례를 하면서 삼만 리를 걷고 8만이나 되는 사람들과 만나 말씀을 나눴으며, 오늘도 세상을 두루 오가며 수많은 사람들과 격 없는 말씀으로 세상 멱살을 잡는다.

 

연재를 마치며, 만 2년 결코 짧지 않은 긴 시간동안 소중한 지면을 선뜻 내어주고 보살펴준 현대불교 식구들 그리고 솜씨 없는 글을 읽느라 고생한 독자들께 엎드려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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